티스토리 뷰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박태원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활동했던 작가를 말한다.
대표작품으로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 등이 있고,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한 작품을 쓴 바 있다.
그는 역사 소설을 쓴 내력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홍길동전]이다.
본래 홍길동의 작가는 우리나라 사람이 잘 알고 있듯이 허균으로, 광해군 재위 동안에 나온 작품이 [홍길동전]이다.
그리고 그 허균의 [홍길동전]을 박태원이 다시 쓴 것이다.
그래서 두 작품을 언급할 때는 허균의 [홍길동전]을 '경판본 고소설 홍길동전' 이라고 하고 박태원의 [홍길동전]이라고 해서 이 두 작품을 구분한다.
현재 박태원의 [홍길동전]은 서강대학교 로욜라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나는 이 글이 세로로 쓰여 있어서 읽기가 처음엔 힘들어 일일이 그걸 가로로 다시 써가면서 잘 알아보기 어려운 단어들과 한자들을 찾아보고하며, 개인적으로는 공부하기 위해서 썼다.
한글 문서로 작업하다 보니 원문과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당시 사용되면서 쓰여진 단어를 그대로 적었다. 원문에도 가끔 나오는 오타도 왠만해서는 그대로 적었고 한자도 왠만해서는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또한 각 문단은 내가 그냥 읽기 쉬울 정도로만 띄워 놓았다.
로욜라도서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파일을 열어보면, 원전을 스캔한 것 같은데, 글씨가 잘 안보이거나 하는 것들도 가끔 있어서 유추조차 안되는 단어들은 --로 작성했다.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듯 싶어 블로그에 올린다.
홍길동전 (박태원)
<목차>
1. 집을 나간다. / 2. 부정한 시절 / 3. 선산의 홍도령 / 4. 고아음전(孤兒音全)이 / 5.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 / 6. 화적지망(火賊志望) / 7. 산으로 들어간다. / 8. 해인사사건(海印寺事件) / 9. 함경 영사건 / 10. 활빈당(一) / 11. 활빈당(二) / 12. 토포사(討捕使) / 13. 聞慶에서 / 14. 토끼벼루에서 / 15. 종루(鐘樓)의 복문(複文) / 16. 풀을 뽑자면 / 17. 신왕만세! / [책 끝에]
1. 집을 나간다.
봄! 봄! 봄이다.
산과 들에 개나리 진달래가 한창 제철을 자랑하고, 만호장안 성안 성밖에 지금 봄은 짙었다. 장안 사람들이 별명 지어 [화개동대궐]이라 부르는 당대의 세도 홍판서 댁 넓으나 넓은 앞뒤 뜰에도, 버들은 늘어져 실실이 두르고 복사꽃 살구꽃은 피어 만발하며, 나비는 춤추고 새는 노래하여, 봄은 정녕 이 집안에도 무르녹을 대로 무르녹았건만- 유독, 그 후원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초당 안에 있는 길동이는 홀로 그 마음이 어둡고 무거웠다.
“도대체 나라는 놈, 왜 이 세상에는 태어나온 겐가? 아니, 그보다도 장차 나는 어떻게 해야만 좋단 말이냐?”
그 동안 열흘씩 보름씩을 두고도, 오직 제 머리만 괴롭히고 제 가슴만 답답하게 하여 줄뿐. 끝내 풀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길동이는 어제도 오늘도 머언 하늘만 바라본다.
하늘은-
하늘은 남의 속도 모르고. 어제도 오늘도 한결 같이 두어 덩이 흰 구름을 띄운 채 푸를 대로 푸르다. 늘 푸른 하늘. 유유한 저 구름. 이 내 몸이 저 구름처럼 한가로울 수는 없는가? 이 내 마음이 저 하늘처럼 시원할 수는 없는가? 그러나 길동이는 그 즉시
“아하! 이 무슨 부질없는 망상인고?”
스스로 한 번 비웃고, 생각 난 듯 서안을 앞으로 당겨 책장을 폈다. 펴 놓고 되는 대로 아무 대문에서나 내리 읽는다. 손무자 병서 였다. 한 장, 두장, 세장. 그러나, 석장 째를 넘기려다 말고, 길동이는 문득 손을 멈추었다. 눈이 건성 글줄을 더듬었을 뿐. 뜻은 하나도 머리에 들지 않았음을 새삼스러이 깨달은 때문이다.
후유-
저도 모르게 가만한 한숨이 입술을 새어 나왔다. 한숨을 쉬기에는 좀 이른 나이다. 본래 타고나기를 기골이 장대하고 여력이 과인하여, 여간 장정들은 십여 명쯤 능준히 거느리는 길동이었으나, 나이는 이제 열일곱이다. 그렇건만, 근래와서 툭 하면 한숨을 쉬고 하는 것이 저도 모르게 어느 틈엔가 버릇이 된 그였다.
서안을 한편으로 밀쳐놓고 길동이는 그 자리에가 번듯이 누워버렸다. 두 눈을 힘없이 감고, 두 손을 깍지 껴 베개 삼고-
꽃동산에 놀다 지친 꿀벌이 한 마리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들어 와서는 한동안을 나가지 않고 방 속에서 앵앵거린다. 그러나 물론 길동이는 그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도무지 살 재미라고 없는 이 세상!” 그의 입술이 가만히 경련한다.
“살아서 아무 보람 없는 이 내 몸!” 힘없이 감은 그의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그렇다! 살아서 아무 보람 없는 이내몸이었다.
한 열흘 전이었던가 보다. 이틀을 연달아 봄비가 뿌리고, 그 날은 아침부터 눈이 부시게 하늘이 맑은 좋은 날씨였다. 며칠을 그대로 집 속에만 틀어 박혀 있었더니 도무지 마음이 번울하여 견딜 수가 없다. 그래, 길동이는 조반을 치르고 나자 즉시 전립 쓰고 쾌자입고, 미투리에 감발도 가뜬하게, 구종도 안 데리고 홀로 말을 몰아 장의문으로 향하였다.
성 밖의 가히 놀만한 곳으로는 장의사 앞 시내가 가장 좋다더라 하고 용재란 이도 말하였다. 과시 그곳은 흥진번뇌를 멀리 떠난 별건곤 이었다.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峯)이라고, 산 경치는 여름을 치거니와, 경개절승한 북한산이 꼭 여름철이 아니래서 털끝만치나 미울 턱이 있겠느냐? 높푸른 하늘에 기이하고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은 서로 키를 다투어 우뚝하니 솟아 있고, 깊은 산골 여기저기서 졸졸졸 콸콸콸 쏟아져서 내리는 냇물은 장의사절 앞을 지나 무이정사 허무러진 옛 터를 왼손 편에 바라보며 차일암 바위 밑을 감돌아서 멀리 서편으로 서편으로 흘러간다.
물은 맑고 모래는 희고, 돌은 기이하고 산은 아름다운데, 꽃은 붉고 풀 또한 향기로웁다.
길동이는 절 앞 수양버들에다 말을 매어 놓고 차일암 바위 위로 올라갔다. 편평한 바위 위에 두 다리를 쭈욱 뻗고 앉아, 물 소리도 듣고 산과 들도 둘러보니, 집에 있을 때 번울하던 가슴이 어느 덧 활짝 트이고, 아까가지 어지럽던 머리가 금새 쇄락하기 그지없다. 산 빛이란 이렇듯 눈에 곱고, 물 소리란 이렇듯 귀에 즐거운 것이었던가? 길동이의 마음은 산봉우리 위에 떠도는 구름처럼 한가로웠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언제까지나 그렇듯 한가롭고 무심할 수만 없었다. 개울 건너- 바로 장의문에서 나타오는 길쪽이 홀제 떠들썩 하더니 이윽고 솔림 사이에서 기구 있는 행차 하나가 나타났다.
‘누굴까? 어느 대관이 유산을 나오나?’
눈을 들어 그 편을 이윽히 바라 보다가, 길동이는 문득 눈썹을 찡기고 혀를 한번 차고 마치 쫓기기나 하듯 바위에서 뛰어 내려왔다.
초헌 위에다가 가장 거만스러이 올라앉아, 기생을 네명이나 말에 태워 뒤에 딸리고 갸자세를에다 술과 안주와 차일 포진에 장고 등속을 그뜩 싣고 구종제조가 되었다는 풍원위 임숭재였기 때문이었다.
임숭재는 당대의 간신으로 그 이름이 높은 공조참판 임사홍이의 아들이다. 일찍이 선왕 선종의 따님인 휘숙옹주에게 장가들어 그 귀함이 비길 데가 없거니와 타고난 천성의 음흉하고 교활한 품은 오히려 그 아비보다도 갑절이었다. 제 한 몸의 부귀와 영화를 위하여서는 도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다. 대체 무슨 짓을 안하겠느냐? 근자에는 저의 인군을 위하여-
저 만고에 짝을 구하기 힘드는 포학한 군주인 연산을 위하여, 이자는 마침내 남의 아낙과 첩까지 뺏어다 바쳤다. 그리고 그렇듯 크나큰 공노로 하여 연산의 그에 대한 총애도 남유달리 두터운 바가 있어 이 무도한 인군은 그 사이 몇 번인가 임가의 사제로 미행까지 하였다 한다.
인군이 저의 집을 때때로 찾는 것을 기회로 삼아 임가부자(任可父子)가, 요사이 또 무슨 음모를 꾀하고 있는지는 모르거니와 하여튼 풍원위 임숭재는 이 한껏 어지러운 시절에 기생을 너덧씩 데리고 한가로이 유산을 나왔다!
집에도 몇 번인가 판서대감을 찾아 온 일이 있어서 길동이도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임가부자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벌써 비위가 역하여 견딜 수가 없는 길동이다. 그와 얼굴을 대하여 그 앞에서 소인을 개어 올리기란 죽기보다도 싫었다. 그는 한달음에 절앞으로 갔다. 나무에 매여 놓은 고삐를 분주히 끄르고 말에 매어 오르자 그는 임가의 일행과 마주치지 않으려, 절 뒤를 돌아, 서쪽으로 산길을 얼마쯤 올라갔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다시 냇가로 내려와서 냇물을 따라 평탄한 길을 말을 달리어 홍제원으로 나갔다. 큰길로 나서자, 그는 잠깐 그곳에 말을 세웠다.
‘내친 걸음에, 녹번이로- 아니, 아주 구파발까지 나갔다 올까?’
그는 잠깐 망설였다. 그러나 다음에 그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말머리를 돌리어 모래재로 향하였다. 오래간만에 모화관(慕華館) 서호정으로 가서 활을 몇 순 쏘고 싶은 생각이 불현 듯이 난 때문이다.
모래재를 넘어, 모화관을 바라고 얼마쯤 달리다가 바른편 송림 속으로 길을 잡아 돌며 그 조고만 등성이를 넘어서자, 따악-하고 관혁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들어도 통쾌한 음향이었다. 길동이는 말을 좀 빨리 걸텼다. 다시 한번, 따악-하고 관혁이 울었다. 이르러 보니 사정은 딴때 없이 흥성거렸다. 한량들이 근 이십 명이나 둘러선 가운데, 일찍이 본 일이 없는 사나이가 한명, 마악 힘껏 활을 당기어 깍지 손을 뗀 길이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유성처럼 나른다고 보자, 따악- 화살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고, 관혁에 가 들어 박혔다. 궁술이 이곳 사정에 모이는 여느 한량보다도 분명히 월등하다. 그러나 보고 있던 사람들은 아무도 갈채하지 않았다. 갈채하기는세례, 도리어 불쾌하여 하는 빛이 얼굴마다 느껴졌다. 그것을 곁눈으로 보는 듯 마는 듯 그 사나이는 입가에 들어나게 냉소하는 빛을 띄우고,
“혼자만 쏘니 싱겁군!”
반은 혼잣말 같이 한마디 뱉고, 다음에 입을 크게 버려서 선하폄을 한 번 늘어지게 하였다. 조고만 재주를 가지고, 제 위에는 다시 사람이 없는 듯 오만무례한 태도가 남의 반감을 자아내기 꼭 알맞았다. 그러나 길동이가 보기에 이곳 한량패들로는 누구라 나서서 그와 활재주를 겨룰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길동이는 저도 모르는 틈에 말에서 뛰어 나렸다. 둥 뒤에 안기척을 깨닫고 그제야 고개를 돌린 한량들의 입에서 기약하지 않고 환성이 일어났다.
“아, 언제 왔어?” “마침 잘 왔구먼!” “그러지 않어도 홍도령이나 좀 왔으면물 했지!” “마침이로군!” “참 잘왔어!”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디 모두들 진정으로 반색을 하는 중에 한 한량은 그에게서 말고삐를 뺐어 쥐고, 또 한 한량은 그의 팔을 잡아 다러며,
“자- 어서 한 번 쏘라구”
누가 어느 틈에 갔다 주었는지 그의 손에는 활과 살까지 돌려져 있다. 그러나 길동이는 입가에 쓴웃음을 띄운 채 좀처럼 움지기려 안했다. 한량들이 자기를 그처럼 반겨하고, 또 그처럼 열심히 활쏘기를 권하는 심정은 그도 잘 안다. 조고만 재주를 내어세워, 바로 방약무인(傍若無人)인 그자의 태도에는 길동이도 적지 아니 불쾌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자와 궁술을 겨루어 볼 생각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자의 수단은 그만하면 이미 알았다. 새삼스러이 겨루어 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고만한 재주를 가지고 뽐내겠으면 뽐내게 두어 두자’ 구래어 상대할 것이 없지 않으냐? 그렇게 길동이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한량들은 기어코, 그가 한번 쏘기를 원하였고 또 이편에서는 전혀 모르고 있어도 저편에서는 언제 자기를 알고 있었던지,
“아 홍각! 활 재주가 아주 놀랍다더군그래! 어려워말고, 한번 쏘아 보지!”
하고 아니꼬운 수작을 하여 그러지 않아도 길동이의 마음이 적지 아니 움지겼을 때 또 한 한량이
“저 양반이 바루 무령군 대감의 자제시어. 도령도 보아 알겠지만 오중몰기하는 수단을 가지신 어른이야.”하고 일러준다.
길동이는 그 말에 새삼스러이 그자편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자가 바루 유자광이의...’
하고 생각을 하니 격렬한 적개심이 그대로 왈칵! 치밀어 오른다. 그는 다시 더 사양하려 않고, 활을 쏘러 앞으로 나섰다.
무령군 유자광이라면 본래가 술이나 처먹고, 놀음이나 하러 다니고, 또 남의 부녀를 노면 노상에서 욕을 보이기도 일수인 한낱 시정(市井)의 무뢰배였다. 그러던 것이 갑사가 되어 건춘문을 지키던 중에 우연한 일ㄹ 세조에게 이름이 알려져 벼슬이 병조정랑에 이르렀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은 매양 저보다 재주나 지위나 명망이 높은 사람을 보면 반드시 음해할 마음을 품고 말어 앞서는 죄 없는 남이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고, 바로 몇 해 전에는 무오사화(戊午士禍)와 같은 전고에 없는 참혹한 변을 빚어내고야 말았다.
‘저자가 바로 그 유자광이의 자식이라?’ 길동이는 백보 밖의 관혁을 마치 유자광이의 멱통처럼 보고, 풀길 없는 분노를 화살에 붙여서 연달아 두순을 쏘았다. 따-악! 따-악! 따-악! 따-악!
먼저 네 대를 관혁 네 구퉁이에다 박아 놓고, 다음에 또 네 대를 상하좌우로 한중간을 타서 꽂아 놓고, 아홉째 살로 복판을 맞추니, 아홉 개 화살의 늘어선 모양이, 자를 대고 그은 듯한 밭 전(田 )가 분명하다. 모든 한량들이 갈채하기를 마지않을 때 시위를 떠난 열 개째 화살이 유성처럼 허공을 날렀다. 이번에는 또 어데다 꽂아 놓으려나? 호기심 가득한 눈들이 열심히 나르는 화살의 뒤를 지켜 보는 중에 누구의 입에선가, 아차! 소리가 새어 나왔다. 화살이 관혁을 벗어나 왼편으로 한자나 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가장 열광적인 환성이 그곳에 일어났다. 마침, 그곳을 나르던 참새를 한 마리 쏘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빗나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차새를 겨누고 쏘은 것이었다.
“과연, 산기로군!” “모르면 몰랐지, 당대에는 짝이 없을껄!”
길동이의 수단을 처음 보는 터는 아니지만 유가더러 들으라고, 모든 한량들이 제 각기 한 마디씩 지껄일 때 그의 놀라운 재주에 이제까지 혼자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던 그자가 문득, 씹어 뱉듯 한마디 하였다.
“고작 해야 오품을 못 넘을 테니 재주가 아깝구나!”
길동이가 첩첩소생이래서 빈정거리는 수작이다. 이 나라의 사림을 쓰는 제도가, 이품이상 문무관의 양첩자손은 정삼품이 한이오, 첩첩자손은 정오품을 넘지 못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인물이 뛰어나고 재주가 비상하다 하더라도,첩의 자식은 도무지 기를 펴지 못하게 마련된 것이 이 나라 법도였다. 길동이의 얼굴이 왈칵 붉었다. 저절로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 자 앞으로 몇걸음 다가갔다. 모든 사람이 일시에 긴장한다. 그러나 길동이는 그 즉시 생각을 고쳐 먹고, 발길을 돌리어 말이 매어 있는 사정 기둥 앞으로 갔다. 그가 고삐를 끄르고 말에 뛰어 올랐을 때, 등 뒤에서 그자의 드높은 울음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길동이는 못들은 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재쳐 한달음에 등성이를 넘었다.
그 날부터 길동이는 풀이 죽었다. 그의 마음은 한껏 첩첩소생이을 이번에야 처음으로 깨닫기 때문은 아니다. 자기의 출신이 천하므로 하여 남의 멸시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픔은, 길동이가 철들며부터 이미 뼈 아프게 느껴 온 터이다.
자기는 틀림없는 홍판서댁 도령님이면서도 결코 떳떳한 존재가 못되었다. 정녕한 홍판서의 아들이면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부른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정실부인이 아니요, 본래가 한낱 천한 계집종 이었다하여 자기는 아버지가 반드시 대감이라 부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형도 형이라 못 불렀다. 같은 홍판서의 아들이면서도 형은 자기와는 달리 정부인의 몸에서 나왔다. 길동이는 [형님]이라 부르는 대신에 진사님 이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홍판서댁 홍도령]이라 부른다. 문무겸전한 당대기재라고 칭찬이 자자하다. 그러나 뒤로 돌아서서는, ‘첩첩소생이 제가 제주가 있으면 뭘 허구 없으면 뭘 허누?’ 그렇게들 쑥덕거리는 것을 길동이는 잘 안다. 그것은 물론 악의에서들 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도리어 깊은 동정에서 호의로 하는 말일 것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그는 저의 신세를 생각하고 하룻밤을 꼬박이 울어 새운 적도 있었다.
‘허지만 울어 본들 무엇 하랴?’
가엾은 어머니가 언젠가 일러주던 말처럼, 모든 것은 저의 팔자소관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탓을 하고 원망을 한다면 오직 저를 그처럼 점지하여준 삼신할머니에게나 대고 할까?
길동이는 문득 마음을 고쳐먹고, 어느 날 ‘하늘이 내 재목을 내었으니 반드시 쓸 곳이 있으리라.’ 천하문장 이백의 글구를 크게 써서 벽에 붙였다. 그렇다! 하늘이 이미 나를 내었을 제는 반드시 쓸 곳이 있었을께다. 재상가의 첩첩소생이 어디 나 하나냐? 그리고 또 출신이 천한 자는 모두 값없이 살다 죽으란 법이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을 하면, 한껏 무겁던 마음이 얼마쯤 가벼워도 진다. 매우 답답하던 심사가 지으기 티논 듯도 하였다.
그는 구태어 깊이 생각하려 안하였다. 아무리 생각하여 본다더라도 소용없는 일을 가지고 언제까지나 머리를 괴롭히는 것은 첫째, 사내대장부가 아니니라 하고 마음에 작정하였다. 그래. 길동이는 집에 있으면 부즈런히 글도 읽었고 밖에 나가서는 또 말 타기와 활쏘기를 게을리 아니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렀다. 서호정에서 유자광이 아들이 뇌까린 소리는 그로서 좀처럼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얼! 그까짓 소리를 가지고...’ 하고 대수롭지 않게 쳐버리려고도 하였으나, 마음은 언제까지나 어지러웠다. 그 미친 놈이 한 말을 “말인즉 네 말이 옳다!” 하고 아무리 싫어도 시인하지 아니 할 수 없는 저의 처지가 길동이에게는 한 없이 슬펐다.
눈을 들어 벽 위에 붙은 글구를 본다. 다 공연한 소리다. ‘하늘이 내 재목을 내었으니 반드시 쓸 곳이 있으리라.’ 고... 남들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닿지 않은 수작일다. 대체 무엇에다 써 먹을 재주란 말이냐? 기껏 해야 ‘정랑(正郞)’이나 ‘도사(都事)’, 그렇지 않으면 어디 벌지수령이나 하나 얻어 하면 고작인 신세가 아니냐? 그러한 자기에게 비겨 유가와 같은 자는 얼마든지 뻗어 나갈 수 있는 장래였다.
심지야 바르거나 말거나 학덕이야 있거나 없거나 더구나 그까짓 무예 같은 것이야 문제 될 턱이 있겠느냐? 그자는 저의 아비의 덕만 입어도 수얼하게, 정상의 높은 지위까지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럴 자에게 밤낮 압재를 당하고 부림을 받기 위하여 타고 나온 내 재주였더냐?“
딱하고 서글픈 일이었다. 그 뿐이 아니다. 생각이 한번 지금의 나라 형편에 미칠 때 그의 마음은 좀더 어두었다. 전고에 없는 황음무도한 지금 인군이 위에 오른 뒤로, 어진 신하는 혹은 내침을 받고, 혹은 죄로 몰려 죽고, 유자광 임사홍을 비롯한 간신의 무리만 조정 가득 찼다. 정사는 나날이 글러 가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허더기는데, 묘당에 선 자들은 오직 포학간 인군의 뜻을 맞추어 제 한 몸의 부귀 영화만을 도모하기에 바쁘다.
‘아하, 잔악한 무리들!’
거의 입 밖에까지 내어 중얼거리다가, 길동이는 악연히 놀란다. 그 간악한 무리들 가운데는 당연히 그의 아버지 홍판서 대감도 들어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러이, 그는 생각이 미친 까닭이다.
날마다 날마다 사람들은 그들이 화개동대궐이라 부르는 홍판서댁 문전으로, 스무 명씩 설흔 명씩 모여 들었다. 모두가 옳지 않은 생각을 품은 자들뿐이다. 모두가 허욕에 뜬 자들뿐이다. 어떤 자는 벼슬자리를 원하였다. 어떤 자는 이권을 얻어 보려 눈이 벌갰다. 이 아귀들을 상대로 홍판서 대감은 큰 사랑 아랫목 보료 위에가 안석을 의지하여 몸을 비스듬이 누이고, 청지기들을 내세워 장사를 한다. 삼백량이다. 오백량이다. 천량이다. 만량이다...
흥정이 되어 하룻밤 사이에 신세를 고친 자들이 혹은 군수가 되고, 혹은 현령이 되고 혹은 현감이 되어 바로 거드럭거리며 팔도 삼백육십주로 흐터져 나려 간다. 나려가서는 제 각기 들여 놓은 미천을 결곱 스무곱으로 뽑아 내려 세없고 불쌍한 백성들의 피와 기름만 빨았다.
그러나 백성들이야 뼈와 가죽만 남거나 말거나, 나라 정사야 날로 글러 가거나 어쩌거나 대감은 그런 것은 이루 알앙곳 않는다. 오직 내 몸이 귀하고, 내 집이 가멸하고 내 신세가 영화로우니, 그만 좋을 데가 없지 않겠느냐! 곳간마다 쌓였느니 모두가 재물이오, 문갑마다 찾느니 땅문서 논문선데, 일처삼첩에 비복이 수십 명으로 고대광실 좋은 집에 호의호식 날을 보내니, 이만 팔자는 다시 없어야 만 옳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그렇지 못하였다. 누가 무엇이라거나, 길동이는 자기 집처럼 불행하고 가엾은 집안은 다시 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이 집안에는 평화라는 것이 없었다. 이 가족들 사이에는 애정이라는 것이 없었다. 이 집안 식구들은 상하귀천이 없이 모두들 제 한 몸만 생각하였다. 도무지 남을 돌볼 줄을 모른다. ‘대감’은 ‘대감’대로 저 하고 싶은 짓을 하였다. ‘진사님’은 ‘진사님’대로 저 하고 싶은 직을 하였다. ‘대감’이나 ‘진사님’이나 부자가 똑같이 타고난 호색한이다. 집에 부리는 종년들 가운데서도 낮바닥이나 좀 반반한 계집이라면 이들 부자는, 염치도 체면도 없이 서로 다투어 기어코 요정을 내고야 말았다. 이리하여 이들 부자를 중심으로 ‘정부인’이하 무수한 귀하고 천한 여인들이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고, 음모하고, 암루한다.
이들 사이에 무슨 평화가 있겠느냐? 무슨 애정이 있겠느냐? 사내들은 사내들끼리 시새고 미워하고 다투었다. 수십 명의 청직이 겸인, 구종, 별배, 비부, 그리고 문객들까지도, 저의 지위와 소임을 최대한 도로 활용하여 남몰래 사복을 채우기에만 눈들이 벌갰다. 이 집안에는 매일 같이 히극이, 혹은 비극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것들은 비극이고 희극이고를 막론하고, 한결 같이 딱하고 한심하고 추악한 것이었다.
‘나는 웨 하필 골르듸 골라서, 이러한 시절에 이러한 집안에 이러한 신세로 태어났단 말인가?’
몇 번을 생각하여도 살아서 아무 보람이 없는 저의 몸이었다. 도무지가 살 재미라고는 없는 이 세상이었다. 힘없이 감고 누운 길동이의 두눈에 맺혔던 눈물이 마침내 소리 없이 그의 뺨을 흘러 나렀을 때 그는 문득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벌떡 그 자리에가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그는 마치 넋을 잃은 사람처럼 한동안 머언 하늘만 우러러 보았다. 어제도 오늘도 한결 높푸른 하늘. 무심한 저 구름... 이윽히 우러러 보고 있는 중에 문득, 그의 두눈은 빛났다. ‘행운류수! 가는 구름, 흐르는 물... 광활한 이 천지에 설마하니, 내 한몸 부칠 곳이 없으랴? 그렇다! 나는 집을 나가자!
2. 부정한 시절
이리하여 어느 날 밤, 길동이는 마침내 집을 나가버렸거니와- 그가 집을 나간지 며칠 안있어 이 나라에는 또 다시 참혹하기 짝 없는 화란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연산은 왕위에 오른지 십년이 거의 될 때까지도, 자기를 낳어준 정말 어머니가 누구인줄 몰랐다. 그는 부왕 성조의 계비인 정현왕후 윤씨를 자기의 친어머니로만 믿었다. 정작 생모 윤씨가 비명으로 돌아 간 것을 그는 전연 모르고 지내 온 것이다.
그것을 구태어 뚱겨 준 자는 임사홍이다. 그는 안군이 자기 아들의 집에 미행하여 나온 것을 기화로 왕의 생모 윤씨가 폐함을 당한 것은 아무 다른 연고가 아니오, 성종의 숙의, 엄씨, 정씨의 참소로 말미아믄 때문이라, 고하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말을 들은 연산은 대궐로 돌아 오자 그 즉시 엄씨, 정씨를 궁전 뜰로 끌어내어다 제 손으로 개 잡듯 때려죽인 다음에, 그 시체를 조각 조각이 찢어 산과 들에다 내어 버렸다. 그리고 정씨 몸에서 낳은-(그러니까 연산 자기와는 이복형제다)-안양군 형과 봉안군 수를 아울러 죽였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연산이 엄씨와 정씨, 두 숙의를 박살하였을 때, 마침 병이 중하여 자리에 누어 있던 인수대비는 이 놀라운 소식을 듣고 곧, 손자를 불러 들여 그들도 역시 너의 아버지의 후궁인데 천하에 그럴 법이 어데 있겠느냐고 매우 책망하였다 한다. 그러나 악에 바친 연산은 저의 조모를 머리로 받아 자리에 쓰러트렸다. 대비는 “흉악한지고!” 한마디 피탄하고 이내 자리에 누은 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물론 연산의 복수는 그쯤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시정기’를 들이라 하여 보고 당시 윤씨 폐사에 혹은 참론하고, 혹은 봉사한 모든 신하들을 죄 주기로 작정하였다. 이 통에 윤필상, 이극균, 성준, 이세좌, 권주, 김굉필, 이주 등 수십 명이 참혹한 죽임을 당하였다. 그러나 마땅히 그들과 함께 처형되어야 할 한치형, 한명회, 정창손, 이세겸, 심회, 이파, 정여창, 남효은의 무리들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연산은 마침내 그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관을 쪼개 다 썩은 송장을 칼로 버혀 혹은 뼈를 갈아서 바람에도 날리고 혹은 그대로 강 물에로 띄우고 하였다. 그들의 자제와 동족들이 모디 처형당한 것은 다시 말 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이 사건과는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다만 평소에 연산에게 은근히 미움을 받아온 자들이 역시 이 통에 많이 죽었다. 후세에 ‘잡자사화’라 일컷는 것이 바로 이때의 이 사건이다. 그 참혹한 품이 앞서 여섯해 전에 있었던 ‘무오사화’보다도 몇 곱절이나 더 하였다.
그 뒤로, 이 나라 정사는 더욱 말이 아니었다. 연산의 교사와 황음은 날이 갈수록 더 하였다. 그는 각도 대 소읍에 기악을 설치하고, 우선 창기 삼백 명을 뽑아 서울로 데려 오게 하였다. 무엇이고, 새로 이름을 부르기를 좋아하는 연산이다. 악공을 ‘광히’라 하고 창기를 ‘운평’이라 하였다. 운평 가운데서 특히 자색이 있다 하여 서울로 뽑혀 올라 온 자를 ‘가흥청’이라 하고 흥청에서 다시 뽑힌 자를 ‘흥청’이라 불렀다. 운평으로 추후에 들어온 자는 혹은 ‘계평’ 혹은 ‘속홍’ 흥청 속에서 다시 선발 된 자가 ‘지과흥청’이오, 한번 왕의 은총을 입은 자가 ‘천과흥청’이었다.
운평의 수효는 자꾸 불어만 갔다. 그 허다한 창기들의 거처할 곳이 미상불 큰 문제다. 연산은 성종의 부마, 의성위 남치원의 사제를 빼앗어 ‘함방원’이라 하고, 제안대군의 사제를 ‘뢰양원’, 진성군의 사제를 ‘진향원’이라 하여 그곳에다 이들 창기를 수용하였다. 자고로 동서를 물론하고 못된 인군이란, 으레 주색에 빠지고 무용한 토목을 일으키고, 또 사냥질 하기를 좋아한다. 연산은 궁궐 후원에다 ‘응준방’이라는 것을 두어 팔도에서 모아들인 매와 개와, 또 별난 새, 별난 짐승들을 기르게 하였다.
다시 정등에다 ‘운구’, 사복시에다 ‘기구’, 경복궁에다 ‘린구’, 금호문밖에다 ‘용구’를 두어 말을 먹이게 하였다. 말을 먹이는 데 드는 부비만, 달에, 이천량이 넘는다. 밤으로 낮으로, 궁중에서의 연락은 끊일 줄을 몰랐다. 제용감에서 들여 놓은 면포와 정포가, 각 일천필이나 되었으나, 원체 내총이 많은지라, 그도 오이려 부족할 지경이다. 그러나 자연, 수렴만 더욱 심하여 갈 밖에 없다. 똑, 애꿎은 백성들만 죽어났다. 주색으로 일을 삼는 인군이, 강학에 뜻이 있을 턱이 없다. 경연은, 마침내 영폐되고 말았다.
여마구목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복시와 음률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장악원에는 관원을 많이 늘린 대신에, 경적을 맡은 홍문관과, 인군의 잘못을 간하는 사간원은 이를 혁과 하였다. 그리고 선비들을 걷우어 유학을 가르치는 성균관은 어느 틈엔가 연락(宴樂)의 장소로 변하고 말았다. 연산은 또, 단상법이라는 것을 마련하였다.
이 음탕한 인군은 삼년씩 상제가 되어 유락을 삼갈 수가 도저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인수대비-자기의 조모 되는 이다-의 거상을 스무 이레 만에 벗어 버렸다. 그리고 모든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그러기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나라에는 원체 기일이 많다. 연산은 그 때마다 풍악을 못 잡히고 고기를 못먹고 하는 것에 은근히 심화가 끓었다.
그래. 이 황음한 인군은, 마침내 세조와 정히왕후와 성종과 또 제헌, 공혜 두 왕후만 빼어 놓고 그 이외의 모든 국기일을 다 폐하여 버렸다. 그와 동시에 신하와 백성들에게도, 제사는 오직 너의들의 부모와 조부만 지내라 하고 엄명하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연산 자신은 성실히 지키지 못하였다. 곧, 그는 선왕의 휘일에도 곧잘 기악을 베풀고 또 술과 고기를 먹었던 것이다. 그러한 그였던 까닭에 이 무도한 인군은 어느 날 무심히 ‘동국여지승람’을 뒤적거리다가, 평안도 은산현의 효자, 이자화의 사적을 보고 아주 심사가 좋지 못하였다.
이 이자화라는 자는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인간인지, 어렸을 때부터 남 달리 효성이 지극하여 혼정신성을 조곰도 게을리 아니하고, 조석은 반드시 제가 손수 지어서 공궤하였으며 부모가 돌아가자, 애통하여 하기를 마지않고 삼년을 내외가 자리를 가치 아니하며, 꼭 죽만 먹고 지냈다 한다. 그나 그뿐이면 또 모르겠다. 이 고이한 자는 인군이 돌아갔을 때에도, 마치 저의 부모를 여인 듯 삼년을 문을 닫고 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이 술은 물론이오, 소곰과 장과 나물과 실과까지 일체 입에 대지 않았다한다.
“제가 그래서 충신 효자의 이름을 듣는 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되란 말이냐?” 연산은 아주 심사가 좋지 못하였다.
“그럼, 나는 아주 불효막심한- 도저이 천지 간에 용납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 아니냐? 아마도 이 놈이 나를 욕 주려고 그런게다!”
생각하여보니, 괘씸하기가 짝 없는 일이었다. 연산은 이자화의 행적을 괴이하다 하여, 잡아 올려다가 국문하였다. 때에 이자화는 나이 이미 칠십이 넘은 노인이었다. 그는 너무나 시럾은 운명에 대하여 구차스러이 앙탈 하려 하지 않고,
“네 어찌하여, 그런 궤이한 짓을 하였느냐?” 하는 물음에 대하여 오직 한마디,
“소인은 그저, 나랏님은 우리 백성들의 부모님이니라 생각하였습지요. 그래, 나랏님이 돌아가시자, 소인은 아비 어미 죽었을 때처럼 삼년상을 입었던 겝지요. 허지만 그것이 혹시나 나라 법도에 어긋나는 게라면 소인은 죽어야 마땅하겠습지요.”
그리고 그는 태연하게 목을 늘이어 칼을 받았던 것이다. 연산은 그를 죽이는 것 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충신이니 효자니 열녀니 하는 무리들은 모다 교사스런 짓을 하는 자라 하여 사실해 올리라 명하였다. 그 뒤로 남보다 뛰어나게 덕행이 있는 무리들이, 이 무도한 인군의 손에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연산의 음학은 나날이 심하여만 갔다. 천하 만사가 모다 저의 마음대로다. 그는 똑 골르디 골라서, 왼갖 추악한 짓, 무도한 짓만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제 자신의 행동을 옳다고 생각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결코 신하나 백성 앞에 떳떳하였던 것은 아니다. 어찌면 그는 저의 추한 것, 악한 것, 언어도단인 것을 누구보다도 제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매양 바른 말하는 이를 마음에 끄리고, 두려워 하고, 미워 하였다. 미웁고 괘씸하여서도 죽이고, 다른 자들의 본보기로도 죽였다. 그래도 더러, 바른 말을 하려는 자들이 있다. 하고 싶어 못 견디어 하는 자들이 있다. 연산은 마침내, 조관들에게도 ‘신언패’를 차게 하였다.
신언패란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安心處處牢(안심처처뇌)
란 글꾸를 새긴, 조곤만 목패다. 입을 잘못 벌리면 화가 이르고, 혀끝 잘못 놀리면 목이 달아나는 터이니, 부디 말 조심들 각별히 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본래는 연산이 갑자년(甲子年) 삼월에 발명해내어, 환관들에게만 채웠던 것인데, 을축년(乙丑年)정원에는 국내 모든 관원들에게 까지 일제이 이 가소로운 목패를 허리에 차고 매사에 그저 “쉬-” “쉬-” 하는 꼴이 가엽고도 우수었다...
3. 선산의 홍도령
경상도 선산(善山)- 서울서 상거가 오백삼십리인 이 고을은 삼한(三韓)쩍 옛 성(城)으로, 남으로 낙동강이 띠처럼 흘러있고, 북으로 비봉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과시 지방백리(地方百里)에 천년읍(千年邑)이다. 산은 높고, 물은 맑고, 땅 또한 기름지니, 마을 민풍이 심히 순박하다 일렀다. 그러나- 그도 모다 옛 말이다. 연산이 위에 오른 뒤로 ‘춘향전’ 문자 맞다, “내려오는 관장 마닥 개개이 명관(名官)”이라. 옛 말에도 ‘가정(苛政)이 맹어호(猛於虎)’로 가혹한 정사가 범보다도 사나워서 그 틈에 부닦여 나느라니, 아무리 본래는 순박하다고 명토가 박힌 이곳 민심도 자연 험하여질 밖애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남경이라고 하는 자가 부사(府使)가 되어서 나려 온 뒤로, 이곳 선산 백성들은 아주 죽어났다.
이 자는 도임한 이래로, 꼭 주색으로 일을 삼고, 공사는 도무지 돌보지를 않았다. 그리고 심심만 하면, 곧잘, 죄 없는 백성들을 잡아 들여다, 그저 땅-땅 볼기를 첬다.
“이 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동헌(東軒)에 좌기(坐起)한 삿도(使道)는, 혼자 얼굴이 붉으락 풀으락 하여 가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네, 저 놈을 매우 쳐라!”
암만 맞아도 대체 제가 무슨 죄목으로 이렇듯 곤장을 맞아야 하는지, 도무지 까닭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죄 없다 앙탈만 하였다가는, 볼기의 살점커냥, 목숨마저 남아나지를 않을께다. 그래, 그는 빌었다.
“네-이. 소인이 잘못 하였소이다.” 대체 무엇을 어떻게 잘못 하였는지 제 자신 영문을 모르면서 우선, 그렇게 빌 밖에 없다. 그러면 죄목은 삿도 쪽에서 일러 준다.
“이놈-! 네, 어찌 하여 일가 칠척 간에 화목히 지내지를 못하는다?”
알고보니, 깃구녕이 막힐 소리다. 그래, 미련한 백성은 한마디 하였다.
“지당하온 말씀이오이다... 젓사오나. 다만, 소인은 삼대독자로서, 이 고을에는 본래 변변한 친척이라고는 없사옵고, 저- 소인의 외가는 황해도 봉산이옵고, 또 소인의 처가는 충청도 괴산이오라...” 그러나 그따위 발명을 끝까지 들어줄 원님이 아니다.
“여보아라- 저놈이 아마도 덜 맞어서 저러나 보다! 어서 부즈런히 쳐라!”
매만 죽도록 더 맞고 급기야는 큰 칼 쓰고 옥에 가치는 몸이 되고 만다. 옥에 가친 당자도 당자려니와, 뒤에 남은 부모처자-집안은 그 날로 난리가 되었다. 모여들 앉아서 술렁 술렁, 쑥덕 쑥덕, 이러고 저러고... 공론이 분분한 끝에 마침내는 어떻게 어떻게 연줄을 구히여 이방(吏房)에게 말을 들여 본다.
원님믜 부동이 되어, 백성들 울여 먹기에 이골이 난 이방은 “글세-” 하고, 한동안, 바루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고 끙끙 하다가
“일이 무사히 되기는 애저녁에 글른 노릇인데, 그래도 어떻게 한 천량 마련을 해 온다면, 또 모를 일...”한다.
천량이라... 천량을 해 놓으려면 그 전에 떼거지가 나고 말 것이었다. 그래, 백방으로 사정도 하고 빌어도 본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는 노릇이다. 삼대독자에 소생이라고는 딸자식만 삼형제- 떼거지가 나면 났지, 우선 살려 내어 놓고나 볼 일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어떻게 사정을 하여서, 이백량을 깍아, 팔백량에 흥정이 된 것이 천행이라고나 할까?
삿도가 오백량. 이방이 삼백량. 이방은 타고난 수단도 수단이려니와. 원님 덕에 나발 분다고 명판 삿도를 모시고 있는 덕에, 쇠전거리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 짓고 논이 얼마요, 밭이 얼마요... 물론 일가 친척 사이에 불화 하대야만, 꼭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뭇 생 트집을 잡으려는데, 죄목이야 얼마든지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 있는 놈은 있는 대로, 없는 놈은 없는 대로, 이 고을 백성은 너 나 할 것 없이 관장부모 삿도님에게 뜯길만큼 뜯겼다. 이 불행한 시절에 대체 어데를 가면 청백리를 구경하여 보겠느냐? 모두가 탐관이오, 오리(汚吏)뿐-
그러나 이 남경이라 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들어난 자다. 당시 토색질이 가장 흑심한 수령으로, 남도 사람들은 의성현령 이장길이와, 상주목사 신극성이와, 또 이 선산부사 남경이를 손 꼽아 ‘삼맹호’라고-. 곧 세 마리 사나운 호랑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흐르는 세월이 과연 물과도 같다. 길동이가 집을 나간지도 어느 덧에 일년이 넘는다. 그는, 그 사이 이 곳 선산 고을 조고만 농가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온 것이다. 길동이는 어찌 하여, 조선 팔도 삼백육집주에 하필 골르디 골라, 이 선산 고을로 나려 왔던 것인가? 며칠을 두고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행운류! 가는 구름, 흐르는 물... 광활한 이 천지에 설마하니, 내 한몸 부칠 곳이 없으랴? 그렇다! 나는 집을 나가자!’
마음을 굳게 먹고 집을 나선 길동이었으나,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다고는 하여도, 가엾은 어머니에게만은 또한 하직을 아니 고할 수 없다. 단지 아들 하나 낳아서, 그 아들에게 저의 왼 생애를 의지하고 지내는 어머니에게, 그것은 너무나 뜻밖이오, 너무나 놀라운 이야기였다. 처음에 그는 울며 불며 길동이를 붓잡고, 결코 놓으려고 안하였다. 그러나, 아들의 결심은 뜻밖에도 굳세었다. 도저히 그의 뜻을 돌릴 수 없다고 깨달았을 때 어머니는, ‘이도 모다 내 타고 나온 팔자려니...’ 애닳게 단념하고,
“그럼, 길동아. 네 집을 떠나거라. 허지만 어데를 가든 네 있는 곳을 이 어미에게만은 알려다고. 네 꼭, 이 어미에게만은 소식을 전하여 다고.”
몇 번을 다짐을 받고, “어데를 가든 부디 몸 성하거라.” 신신당부를 하고. “참 경상도 선산 땅에 너 길러 준 유모가 사느니라.” 어머니의 그윽한 심사는 내 아들이 그곳에라도 가서 며칠이고, 몇 달이고 지내다가, 어린 마음이 역시 제 집이 그립고, 제 어미가 보고 싶어, 수히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작별은 서러웠다. 울며 보내는 어머니를 역시 눈물로 하직하고, 길동이는 집을 나섰다. 그러나, 막상 나서고 보니 대체 어데로 행하여서 내어 놓아야 옳을지, 갈피를 못차릴 발길 이었다. 그는, 한때 막연히 어느 깊은 산 속의 조고만 절간을 머리 속에 그려도 보았다. 그리다가 절간 보다도 오히려 어데 깊은 드메 구석에가 영영 파묻혀 버릴까 하고도 생각하였다.
그러나, 본래가 서울서 나서 서울서 자라, 집 밖에 나서 보기란, 도무지 이번이 처음인 길동이로서는 드메면 드메고, 절간이면 절간이고, 대체 발을 떼어 놓아야할지 어림이 서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한참을 이리 생각하고, 저리 궁리한 끝에, 어머니가 일러 주던 말을 생각하여 내고,
‘우선, 경상도 서산으로나 나려 가보자! 가 보아서 다음은 또 아무려나...’
그렇듯 마음을 정하고 보니, 유도가 부실한 어머니 ‘별당마마’를 대신 하여, 갖났을 때부터 젖을 먹여주고, 또 여덟살 되던 해 봄까지 참말 애정을 가져 길러준 유모가, 불현 듯이 보고 싶다. 그래, 그는 남문 밖을 썩 나서 노돌강을 건너서, 오백삼십리 길을 선산으로 나려 갔다.
뜻 밖에 찾아 든 이 귀한 손님을, 유모는 진정으로 반색을 하여 맞아 들였다. 의리로 따져서 길동이 ‘도령님’이 저의 상전일 뿐이 아니다. 정리(情理)로 보더라로 남보다 유달른 것이 있었다. 그 어머니 뱃속에서 떨어져부터, 제가 젖을 물려 재웠고, 똥이라 오줌이라, 쥐얌 쥐얌 곤지 곤지, 도리 도리 짝짜꿍,
“하라범이 마당 쓸다 돈 한푼을 얻어서.”, “이 쇠가 어디 쇤가 황하두 재령 쇨세”,
우리 아기 신통도 하지. 어제 아침에 첨으로 따루 따루 하더니 오늘은 거름마 거름마 하고, 내일은 또 문지방을 선뜻 넘어, 홍역 마마 곱게 치르고, 여덟살까지 제 손으로 키워 놓은 터이라. 제 몸에서 낳은 자식이면 어이 이에서 더 하겠느냐? 그는, 뜰 아랫방을 깨끗이 치우고, 그 곳에다 ‘도련님’을 맞어 들여,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매일 같이 조석 공궤를 극진히 한다.
아들 내외도 모다 순직한 사람들이다. 그들도 길동이를 “거북한 손님”으로 내돌리지 않고 성심으로 대하였다. 물론 길동이는 떠나올 때의 어머니 부탁을 저바리지 않았다. 인편을 구하는 길로, 그는 곧 집으로 소식을 전하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유모 집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 듣자, 우선 한 시름 잊었다.
그는, 아들과 유모에게 각각 한통씩 글월을 초하고, 유모에게는 또 따로이 조고만 상자를 보냈다. 몇 번씩 봉하고 또 봉한 상자 속에는, 몇가지 값 나가는 패물이 들어 있었다. 부디 “도련님” 뒤를 잘 보아 달라고, “별당마마”가 “판서대감” 몰래 집안 사람들 몰래, 보내온 것이다. 길동이에게 있어서, 선산에서의 하루하루는, 지극히 평온한 것이었다.
그는 이 곳에 나려 오면서 우선 무엇보다도 힘써 산과 물에 친하려 하였다. 그는 조반만 치르고는 매일같이 표연히 집을 나섰다. 이 고을의 진산인 비봉산에도 올라가 본다. 고려 태조가 백제를 치러 왔을 때 주필 하였다 전하는 태조산에도 올라가 본다. 부래산 · 대황당산에도 몇 번씩 올라갔다. 물은, 남문을 나서 사마장쯤 가면 단내가 좋았다. 성문이 허무러져 이제는 형적만 남았지만, 동문을 나서서 십리 쯤가면, 나뭇가에 옷똑하니 서 있는 월파정(月波亭)이 더욱 좋다. 처음에는 별로히 아는 이도 없고 하여, 그저 혼자서 냇가로 산 속으로 소요하였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동네 젊은이들과도 더러 사귀었다. 그는 곧잘 그들과 얼려서 시내로 천렵도 나갔다. 또 산으로 사냥질도 다녔다. 그의 활 재주가 비상하다는 소문이 퍼진 뒤로는, 젊은이들보다도 동네 아이들이 으레 그의 뒤를 줄줄 따라 나섰다. 자고로, 영웅을 숭배하고 흠앙하는 열정이, 아이들보다 더 열렬할 수 있을까?- 길동이는 그들에게는 곧, 한 개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의 눈에 한번 띄 날짐승 들짐승으로, 일찍이, 그의 화살에서 벗어난 것이 없다. 시위 소리 없이 울리는 곳에 나르던 새는 반드시 날개를 처뜨리며 땅에 떨어졌고, 달리던 짐승은 영락없이 머리를 저키고 모으로 쓸어졌다.
해 질 무렵에 토끼는 손에 들고, 노루는 여럿이서 어깨에 떠 메고 새는 제일이 모가지를 얽어, 길동이 귀를 따라 마을로 들어 올 때, 아이들은 한껏 신이 나고 무던이나 자랑스러웠다. 물론 그는 활에만 능한 것이 아니다. 몸은 표범처럼 날랬고, 힘은 또 황소보다도 세었다.
나려 온지 한달이 미쳐 못되어 벌서 이곳은 선산 일판에, ‘홍도령’의 이름은 높았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 뿐이 아니다. 그는 또 ‘글이 문장’이었다. ‘김승지댁’ 사랑방에서 글방 선생 노릇을 하는, 이 고을에서는 가장 유식하다는 조생원이 그렇게 말하였다 한다. ‘홍도령’의 이름은 더욱 높을 밖에 없다. 거기다 또, 그는 타고 나기를, 풍채가 남에게 뛰어 났다. 고대소설 문자 그대로, ‘문장(文章)은 이백(李白)이오, 풍채는 두목지(杜牧之)’다. 이러므로 하여, 마을의 처녀들은 홍도령이 이웃에 사는 음전이를 은근히 새우고 미워하였다.
4. 고아음전(孤兒音全)이
음전이는 외로운 계집애다. 의지 없는 신세다. 그는 본애 이옷 태생이 아니다. 본 고향은 전라도 녹도- 조고만 섬이었다. 아까까지 삼대째 수군 군관을 지내 오던 집안이, 뜻밖에도 여덟해 전 곧 정사년(丁巳年) 이월에 왜구가 섬을 엄습하기에 미쳐 하루아침에 경복하고 말았다.
이 난리에, 그의 아버지와 또 오빠가 한날 한시에 죽고 만 것이다. 뒤에 남은 어머니는 앞이 캄캄하였다. 그는, 아직 어린 딸 형제 -그 당시 열 살 먹은 음전이에게는 아직 돌도 안지낸 동생이 있었다-를 데리고, 도저히 혼자 살아 간달 도리가 없었다. 누구 말하여 주는 이가 있어서, 그는 낙수역말의 나이 오십이 넘은 역졸에게로 후살이를 들어갔다. 상처를 두 번이나 한 홀아비로, 자식도 없고 부모도 없는 사람이었다. 달리 자국이 없는 터는 아니지만, 전실 자식도 없는, 단지 한 몸이라는데 마음이 솔깃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롷지 않았다. 그들의 생활은 심히 불행하였다. 음전이의 어붓아비란 자는, 그 일판에서, 술이 고래에, 쌈패로 조명이 난 사람이다. 그는 집안 살림은 조곰도 돌보려 안하였다. 그리고 매일 같이 찾아 다니느니 꼭 술자리다. 먹으면 반드시 취하였고, 취하면, 으레 남하고 시비다. 그리고 집에 들어 와서는, 애꿎은 아낙과 어린 것들을 못살게 굴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매도 퍽 맞었다. 얼굴에 생채기 가실 날이 없었다. 팔 다리에는 언제고 멍이 시퍼렇게 들었다.
약한 계집의 손으로 자식 형제와 세식구 입에 풀칠할 도리가 없대서, 다 늘그막에 들어간 후살이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 우에 매만 사서 맞은 폭이다. 어머니는 아침 일즉 부터 밤 늦게 까지 동네집을 찾아 다녔다. 방아를 찌어 주고, 빨래를 하여 주고, 그 밖에 왼갖 품을 팔았다. 음전이도 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종일 어린 동생을 보아 주어야 하였고, 또 어머니 나간 동안, 어붓아비의 시중을 들어야 하였다. 그렇건만 어붓아비는 툭 하면 음전이를 가지고 욕시걸이였다.
“저깐 년을 집에다 붙여 둬, 뭘 허누? 종년으루나 팔아 먹지.”
음전이 동생 갖난이가 백일 해에 걸려서 다 죽게 되었을 때, 이 자는 다른 때처럼 술이 취한 것도 아니언만,
“무슨 년의 새끼가, 뒈질려건 아주 한시 바삐 뒈지질 않구...” 하고, 뇌까렸다.
그리고, 그 말에 어머니가 참다못하여, “어린걸 가지구 그게 무슨 소리람!” 한마디 탓하였다 하여, 이자는 사정 없는 발길질을 들어 아낙의 여윈 가슴을 찼다. 인정 없는 어붓 아비의 말 못할 악담이 있은 뒤, 갖난이는 사흘을 못다 살고, 그에 세상을 버렸다. 아기를 잃은 귀에 어머니도 이내 자리에 몸져 누었다. 원체 약질로 태어난 사람이 팔짜가 또한 너무나 사나웠다. 하늘 같이 믿던 남편을 적변에 여이고, 그와 함께 장성한 아들마저 앞세운 그는, 음전이 형제만 없었다면, 곧 그 때 남편과 아들의 뒤를 짜라 자기도 세상을 버렸을 것이었다.
그러나, 죽지 못하면, 어떻게든 하야 살아야만 하는 세상이다. 그래. 후살이를 들어간 노릇이 명도는 기박도 하였다. 일년 삼백육십육일을, 단 하루라 쉬어 보지 못한 품팔이 생활- 가뜩이나 약질인 그에게는 너무나 벅찬 노동이었다. 거기다 사흘이 멀다고 그의 몸 위에 나리는 사나운 매질... 그리자, 갖난이의 죽엄이다. 워낙이 세찬 일에 삐칠대로 비치고, 허구한 날 사나운 매질에 이미 골병이 깊게 든 몸은, 또 이 새로운 슬픔에, 끝끝내 배겨나지를 못하였다. 어머니는 아기가 죽은지 한이레 되는 날, 마침내, 한 많은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설게 간 어머니를 생각하고, 이제는 참으로 의지 가지 없는 저의 신세를 생각하고, 음전이는 사흘을 밤낮으로 울기만 하였다. 그러나, 나흘째 되는 날- 그는 언제까지 그렇듯 울고만 았어서는 안될 것을 느꼈다. 어머니가 돌아간 뒤로, 저를 보는 어붓아비의 눈이 심상치 않은 것을, 음전이는 분명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지 기색으로만 눈치를 챈 것이 아니다. 음전이는 그 몹쓸 어붓아비가 취중에 한마디 중얼거린 소리로, 위험이 이미 저의 몸에 박두하였음을 알았다.
“음전아. 너 이년! 느 어머니 없다고 서러 말어! 내, 이제 크고 좋은 집에, 잘 입고 잘 먹고 호강하며 지내게 해줄께니...”
불행에 쪼들린 사람은 남 달리 눈치가 빠르다. 음전이는, 어붓아비가 무엇을 음모하고 있는지를 짐작하였다. 전에도 툭하면 뇌까리전 수작- “저깐 년을 집에다 붙여 둬 뭘 허누? 종년으루나 팔어 먹지.”
음전이는 어머니가 임종시에 가만이 일러주던 말을 생각해 내었다.
“에미 죽거든, 네 이모아주머니를 찾어 가거라. 네 이모부가 선산 고을에서 대장쟁이를 한다드라. 대장쟁이 곽서방을 찾ㅈ어 가거라.” 선산 고을이 대체, 어데가 박혔노? 예서 몇리나 되노? 아니 그보다도, 제일에 음전이는 이모되는 사람을 한번이라 본 일이 없다.
‘어떡해야 좋단 말이냐?’ 음전이는 그저 서름만 복바쳤다. 눈물이 샘 솟듯 하였다.
‘허지만...’ 어떠한 어려운 일이고, 두려운 일이고,- 설사 선산까지 못하고 길에서 죽는 한이 있다손 치더라고, 그래도 종년으로 팔려 가는 것 보다는 낳을 것 같았다. 아니 그 무서운 어붓아비의 곁을 떠나는 것만으로도 금시에 살 것 같았다.
‘이모 아주머니는 어떤 사람일까?’ 어머니 동생이니, 응당 어머니를 닮았을 것이다. 어머니를 닮았다면, 마음씨도 곱고 착하겠지. ‘믿을 만한 사람이게, 어머니도 나더러 찾어 가라 안했나?’ 이리하여 이 열한살짜리 계집아이는, 마음을 크게 먹고 마침내, 어느 날 어붓아비의 눈을 기어, 조고만 보퉁이를 꾸렸던 것이다...
유모가 들려준 음전이의 소경력은 가뜩이나 다감한 길동이의 마음을 슬프게 하여 주었다. 유모의 집과 이웃하여 살며 바로 한 집안처럼 왕내하는 대장쟁이집 처녀를, 처음에, 길동이는, ‘ 그 색씨 귀엽다...’ ‘잘도 생겼다...’ 그렇게만 생각하여 왔었던 것이, 마침내 유모의 입으로부터 그렇듯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보니,
‘대체 사람의 팔짜란 그렇게도 기구할 수가 있을까? 저렇듯 아리땁고 마음씨 고운 색씨가 명도는 또 그처럼 악착하여도 좋다는 말인가?’
음전이의 너무나 가여운, 너무나 애처로운 신세에, 길동이의 마음은 아팠다. 애달팠다. 더구나 그로서 팔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음전이는 가끔 어붓아비를 꿈에 본다고 한다. 꿈 속에서 그 흉악한 사나이는, 기어코 음전이를 종년으로 팔아 먹으려 하였다. 그래, 음전이는 생시에도 자기 집 앞을 지나는 낯선 사람을 잘못, 어붓아비로 보고, 혹은 어붓아비가 저를 잡으러 보낸 사람으로 보고, 곧잘, 소스라쳐 놀라는 일이 있다 한다.
‘가엾은 계집애...’ ‘불쌍한 계집애...’ 길동이는 그 흉악한 놈, 그 가증한 놈을, 자기 눈 앞에만 본다면, 곧 박살을 내고 싶었고 음전이는 또 음전이대로, ‘도련님 같은 분을 한평생 모시고 있다면- 그럼,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마음에 든든할까?’
그래서, 길동이 있는 처소로, 자꾸 발길이 잦어지고, 길동이와 눈이 마주치면 얼굴만 붉어지고, 동네서들은 모이면, 곧잘 “음전이가 은근히 도령님을 사모한다지...” “아마 도령님도 음전이를 밉게 보든 않나 보더라...” 어데서 소문은 또 쉽사리 퍼지어, 그러고 보니, 마을의 처녀들은 아무리 싫어도, 음전이를 새우고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5. 채홍사(採紅使), 채청사(採靑使)
연산이 위에 오른지 열한해째 되는 을축년- 이해는 봄에도 변변히 비가 내리지 않았는데, 여름 들어서는, 아주 내내 가믈고 말았다. 본래가 농사로써 근본을 삼는 이 땅의 백성들이다. 이 놈도 저놈도, 시꺼멓게 탄 이마에는, 주름살만 한껏 굵었는데, 이 나라 인군 된 자의 마음은 털 끝만치나 나라를, 정사를, 백성들을 돌보려 안하였다. 그는 밤으로 낮으로 오직 술과 계집과 놀이와, 또 사냥질로 일을 삼았다. 사치스러운 입이 산진해착에도 물리면 연산은 곧잘 별미를 찾았다. 그는 바다 넘어 멀리 왜국으로 사람을 보내어, 비싼 전복 따위도 사들였다.
그는 중국에 보내는 성절사(聖節使)에게는 명하여 용안과 여지를 사고, 또 서과와 감과 같은 과일도 구하여 오게 하였다. 대궐 앞뒷 뜰에는 기화요초도 많다. 철을 따라 제 각기 빛을 다루고 향기를 자랑한다. 그러나 연산은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곧, 장원서와 팔도에 영을 내렸다. 치자, 유자, 석류, 동백, 장미와 같은 화초를 구하여 올리라는 것이다. 뉘 분부라 거역을 하랴?-
팔도 감사가 관하에 영을 전하고, 각 고을의 수령들이 사람을 풀었다. 우러러도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고, 쩍쩍 갈라진 못 자리에는 몬지만 폴삭거리는데, 진상할 꽃나무를 찾아서, 백성들은, 산 속으로 벌판으로 매일 같이 헤매 돈다. 물론, 구하는 꽃나무를 마침 만나기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뿌리 안상하게 조심 조심 캐어서, 곱게 모시어, 삼백리라, 오백리라, 천리도 넘는 길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허위단심 서울까지 날러 올리기란 더구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번히 얻어 먹도 못한 위인들이, 가뜩이나 멀고 또 험한 길을, 기한까지 대어 오느라, 재일이 몸들은 지칠대로 지쳤다. 본래는 힘꼴이나 쓴다는 장정들도, 일수 길에서 픽픽 쓰러졌다. 그리고, 그 중에는 한번 쓰러진채로, 영영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자까지 있었다.
그러나- 연산이 팔도에 구한 것은, 단지 대궐 앞뒷 뜰을 치레할 화초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또, 저의 음욕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말 할 줄 아는 꽃’- 곧, 미녀를 구하여 들이느라고 눈이 벌갰다. 애초에 삼백명을 정액(定額)으로 하였던 ‘운평’이 이 때에는 그 수효가 이미 만으로 헤이게 되었건만, 연산에게는, 그것도 오히려 부족하였다. 창녀들도, 하도 보아 놓니 별 매력이 없다. 그는, 마침내 여염집의 처녀들을 탐내기에 이르었다. 이리하여, 이 나라에는 ‘채홍준사’와 ‘채청사’라는, 전에 없던 임시 벼슬이 생겨났다.
채청사란 어여뿐 소녀를 뽑아 들이는 것이 그 소임이었다. 채홍준사란, 미녀와 그리고 양마(良馬)를 구하여 들이는 것이 그 직책이었다. 민간에는- 특히 딸 둘 집안에는, 또 한 가지 새로운 근심이 생겼다. 채홍사, 채청사가 지나는 고을마다, 곡성은 그대로 땅에 깔렸다...
6. 화적지망(火賊志望)
“대체 이놈의 세상이 언제까지 이럴 모양인구?”
한 손에 술잔을 들고 앉어서, 노상 얾은 선비가 한탄이다.
“각지에는 나날이 느느니 명화적 때 뿐이고...”
“나날이 느느니 명화적데 뿐이라?” 어포쪽을 집어서 입에 넣고 씹으며, 젊은 도령이 대답이다.
“그야 원체 세상이 어지러우니, 도적도 늘 밖에 더 있나?”
선비는 다시, “그래도 나라에서는 도적들을 아주 없애 볼까 하고, 하다못해 좀도적질을 한 놈의 부모처자까지도 모조리 중전(重典)에 처하기로 하였다건만... 그걸 보면, 형벌이라는 것도, 구경, 아무 소용이 없는 게야! 그렇지 않소? 조생원.”
조생원이라 불리운 사십 남즛한 선비는, 그 말에 아무 대꾸 않고, 술잔만 기울인다. 그것은 유월도 그믐이 며칠 안 남은 어느 날이다. 이 날도 하늘에는 구름 한 점 떠 있지 않고 그저 쨍쨍히 내이 쪼이는 또약볕이 사뭇 쇠를 녹였다. 날도 무던히 답답하거니와, 속 또한 그러하다. 도무지 마음이 번울하여 견딜만한 도리가 없다.
그래 길동이는 이 날 조반을 치르고 나자, 벗이 이끄는대로, 같이 동문 밖을 나서, 이 꽃, 월파부로 나온 것이다. 동행은 두명- 한사람은 이 선산 고을에서 양반으로 부자로 첫손을 꼽는 ‘김승지댁’의 당대 주인 김진사의 아들 봉학이다. 올예 갖 스물이니 길동이와는 연상약한 젊은이거니와, 그 역 서출(庶出)인 것도 길동이와 그 경우가 같아고 하겠다. 또 한 사람은 조생원- 이 조생원은 언젠가로 잠깐 이야기를 한 일이 있거니와, 김승지집 사랑에서 글방 선생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도적들이 나날이 늘어도, 그건 하는 수 없는 일인 줄 아네!” 잠깐 말들이 없다가, 길동이가 입을 열었다.
“하는 수 없는 일이라니?” 젊은 선비가 묻는다.
“아 이 사람아, 그래. 이래도 살 수 없어 저래도 살 수 없어. 어차피 살 수 없을 바엔, 차라리 도둑놈으로나 나설 밖에. 달리 무슨 수가 았단 말인가?”
“그래두 도둑질 하는 걸 옳다고는 못하겠지!”
“아-니. 웨 옳다고 못하나? 달리는 살아 갈 도리가 없어서 하는 도둑질은 나는 글르다고 안보네. 제 부모처자가 뻐언히 굶고 헐벗는 것을 눈 앞에 보다 보다 못해서 그래 하는 도둑질이. 웨 글르단 말인가? 그런 도둑질은 그게 실상 도둑질이 아니거든!”
“아, 이 사람 보게! 그래. 그게 도둑질이 아니면 그럼 뭐란 말인가?”
“여보게, 내 정말 흉악한 도둑놈들을 일러 주까?”
“...”
“정말 도둑놈들은 조정에 그득하다네! 팔도 삼백육십주에 그득하다네! 알지? 사모 쓴 도둑놈들... 정작 그 놈들을 말끔 목을 베야만 하느니, 그 놈들만 깡그리 없애 버리면야, 멀쩡한 양민들이 웨, 환장을 했던가? 도둑놈으로 나서게...”
“그야, 지금 나라 정사가 한껏 문란해서, 그래. 탐관오리들의 침학이 너무나 심한 까닭도 있기는 있겠지!”
“있기는 있겠다니..., 원. 전수이 그 때문이지! 양민들까지 견디다 못해 도둑놈으로 나서게 하기는 탐관오리들의 침학이 원체 심한 때문어오, 탐관오리들을 그처럼 발호(跋扈)하게 만들기는 전혀 위에 포학한 인군이 있는 까닭이라...”
길동이의 언성이 점점 높아 가는 것이 마음에 은근히 민망하고 또 불안하여,
“ 자- 우리, 그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어서 술이나 먹세.” 젊은 선비는 한마디 하고 저도 모르게 주의를 둘러 보았다. 집 속이라면 또 모를까, 여기는 야외다. 더구나,
“무리들이 모여서 놀고 이야기하며, 시사를 비의 하는 자는 포고치죄(捕告治罪)하라...” 하는 영(令)이 내린 것은, 바로 최근의 일이다. 도저이, 이렇게 한데 나와서 기탄 없이 지껄여서는 안될 일이었다. 탐관오리니, 포학한 인군이니... 운수만 사나웁고 볼 말이면 영낙없이 목이 달아날 소리다. 그러나 길동이는 그런 것을 조곰도 괘념 않는 듯 그대로 말을 이어
“...하여튼, 전고에 다시 없을 인물이야! 원 제 아무리 일국의 제왕이라 하여, 절대한 권력을 한 손에 쥐고 있다 하기로, 그렇듯 포학하고, 음탕하고, 또 언어도단 일 수가 있단 말인가? 자고로 어두운 인군이라 하면, 언필칭 걸(桀)이니 주(紂)니 하지만, 아마 그들도 이에서 더하지는 않을걸?”
“이제, 그만 알았네! 자- 우리 술이나 들세!”
“술이야 들지만-” 하고, 길동이는 술잔을 받아들며, “자네, 참 ‘거사’라는게 뭔지 알겠나?” 생각 난 듯이 한 마디 물었다.
“‘거사’라니?”
“들거(擧)짜, 집사(舍)짜-”
“‘거사’라... 모르겠는데...”
“그럼 최선달을 아직 못만나본겔세그려. 엊그네 최선달이 내게 찾어 왔는데- 그가 이번에 서울 올라갔다 오지 않었다?- 그래,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거사’라는 망측한 물건이 근자에 생겼다고 일러주데그려!”
“망측스런...”
“응. 말로 옮기기도 더러우이... 원체가 황음무도하여, 예절이니, 염치니, 체모니 하는 것은 애당초에 돌볼줄을 모르는 인물이지만, 그래도 계집들을 데리고 희롱을 하려면 방이 있어야 않겠나?”
“...”
“그래, 궐내에다가도 그 소용으로 여기 저기 숫하게 방을 만들어 놨다네그려! 허지만 그것도 궐내에서 말이지. 밖에 나와서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래 발명해 낸 것이 바로 이 ‘거사’라는 게라...”
“...”
“-----최 ---도 보지는 못하였다데마는, 하여튼 가마처럼 떠메고 다니게 마련된 조고만 방인 모양이라...”
“그래, 그걸...”
“그걸 밖에 나올 때면 반 시 들려 가지고 나온다나? 그래, 음욕만 일면 그지 길가에서고 아무데서고, 곧 마음에 드는 흥청을 데리고서 그 ‘거사’ 속으로 들어가 희롱을 한다네그려! 어떻게든지간에 한다는 짓이 보통 인간은 아니거든.”
“...”
“참, 말이 난 김이니 말이지만, 요새 서울서는 개 문자가 하나 생겼다네.”
“새 문자라니?”
“흥청거린다고...”
“흥청거린다?”
“응, 아주 거드럭거리며 질탕하게 노는 것을, 흥청거린다고 그런다데.”
“흥청거린다?...아하! ‘흥청’을 데리고 논다는 그 말에서 나온겐가?”
“아마, 그런가 보데.” 길동이는 한숨조차 쉬고,
“그래, 한껏 문란한 정사로 하여 민생은 도란에 빠져서 허더기는데, 일국의 군왕된 자는 밤낮 흥청거리며 놀기만 한다?”
“한심한 일일세!”
“예년에 없는 가물로 하여, 만백성은 죽을 곡경을 치르고 있응데, 우리 고을에는 지금, 아리따운 계집을 뽑으러 ‘채홍사’가 나리 와 있다?“
길동이는 문득 말을 끊었다. 그의 눈 앞에, 행여나 남의 눈에 띨세라, 잔뜩 겁을 집어 먹고 방구석에 숨어 있는 음전이의 얼굴이 보이고, 다음에 이번에 채홍사로 나려온 풍원위 임숭재의 그 개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얼굴이 떠올랐다.
풍원위 임숭재에 관하여는 앞서도 잠깐 소개한 바가 있거니와 간신 임사홍의 아들로, 그 음흉하고 교활한 품이, 그 아비보다도 갑절이다. 그는 이를테면 연산의 창귀(倀鬼)였다. 저의 포학한 인군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는 온갖 못된 짓을 다 하는 자다. 앞서, 갑자년 섣달에는 같은 장악원제조인 어계동이란 자와 함께,
“앞으로는 운평을 뽑는데, 그 서방이 있느니 없느니 또 나이가 많으니 적으니 하는 것은 일체 논하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좋을까 보이다...”
하고 건의를 하여, 저 무도한 인군의 총애와 신임을 한층 더 두터웁게 하였거니와 그렇길래, 이번에 채홍사가 된 것도 그 두자로서 이계동이는 전라도를 맡고 임숭재는 경상도와 충청도를 맡은 것이다. 임숭재가 이 선산 고을에 들어와서 이틀 동안에 뽑아 낸 처녀가 모두 세명이다. 다행히 음전이는 그 속에는 끼지 않었다.
그러나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채홍사가 이 고을에서 아주 떠나기까지는 결코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늘쯤 그 자가 떠나리라고는 하지만...’ ‘그저 음전이가 부디 그놈 눈에 띄지를 말아야 할 텐데...’
문득, 지금 자기가 이렇게 밖에 나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순간에도, 음전이의 몸에 어떠한 물행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길동이는 금시에 가슴이 설렌다. 그러나 그 즉시 ‘설마...’하고 그 불길한 생각을 쫓기라고 하듯, 머리를 한번 크게 흔든 다음에, 벗이 방금 큰 잔에 가득 부어 놓은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 안에 양민이라곤 씨가 질께야! 도둑놈 안될 사람 없지! 그렇지 않어요? 조생원!”
하고, 길동이는 나이 먹은 선비를 돌아 보았다. 이제까지 두 젊은 사람들이 두고 받은 수작을 들으며, 자기는 잠자코 술잔만 기울이고 있던 조생원은, 그 말에 비로소, “홍도령 말이 옳으이!” 한번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도, 근자에는 가끔 적굴이나 찾아갈까하고 생각할 때가 있네!” 하고, 서글픈 웃음을 웃었다...
이 조생원을 동네서는 ‘글 잘하는 샌님’이라 부른다. 과연 그는 이러한 시골 구석에서 훈장으로 늙히기에는 아까우리만치 학식이 유여하였다. 길동이는 처음에 남들이 조생원을 ‘이 고을서 첫째 가는 학자님’ 이라기에 찾어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서로 사귀고 보니 길동이는 그의 학식에 보다도 오히려 그 사람됨에 더 큰 흥미와 호감을 느끼었다.
조생원은, 그 날 ‘글 잘하는 샌님’ 이라 불러서는 안될 사람이다. 그는 결코 종일을 책상 앞에가 도사리고 앉어서 그저 글장이나 찾고 글구나 따고 하는 류의 세상에 흔하디 흔한 그런 썩은 선비가 아니었다. 그는 실로 통쾌한 인물이었다. 기걸한 남아였다. 아니 기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 할지 모르겠다.
조생원은 본래 이 고장 사람이 아니다. 그는 원래는 당당한 서울 양반이었다. 그의 조부는 일찍이 성천부사를 하였다. 그의 부친은 평안감사를 지냈다. 집안은 요부하였다. 그것은 전혀, 그의 부친의 공로다. 그 조부의 대까지도, 볏 뱃쯤 하는 추수로, 그저 근근히 계량이나 하여 오던 집안이 아버지 한 대에 붓쩍 늘었다. 어찌나 수단이 영통하였는지, 평안감사 이년하고 석달 동안에, 그의 아버지는 실로, 삼천여석의 토지를 작만하여 놓은 것이다. 그래, 사람들은 모두 조생원의 아버지를 가지고,
“난 사람이지! 아-무렴 난 사람이야!” 하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조부에 대하여는,
“원, 내 그렇게 무능한 사람도 처음 보아!”
하고 비웃었다. 아들은 평안감사 이년에 그렇듯 삼천여석 토지를 장만하여 놓았는데, 아비는 성천부사 삼년에, 돈을 모기는 고사라고, 사백쉬흔량이라던가 예순량이라던가, 빚만 잔뜩 짊어지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생원은 남들이 그렇듯, 무능하다, 변변치 못하다 하고 비웃는 자기 조부의 사람됨을 속으로 은근히 흠모하였다.
그리고, ‘남 달리 영통한’ 자기 아버지의 수단이라는 것을, 마음에 심히 부끄러웁게 생각하였다. 그는 아버지가 하고 권하는 통에, 소과는 치렀다. 그래. 생원 칭호는 하나 얻었던 것이나, 다시는 과거에 응하려 하지 않었다. 도무지 ‘벼슬’이라는 것에 뜻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돌아간 것은, 그가 갖설흔 되던 해 봄이다.
“얘- 너도 부디 현달하여, 더욱 우리 가문을 빛내거라-!”
이것은 아버지가 그 임종시에 아들을 보고 지재지삼 당부한 말이다. 그러나, 조생원은 그 아버지에게 있어서 정녕코 불초한-, 불효막심한 자식이었다.
그는 결코 아버지의 원하는 바를 쫓으려고는 안하였다. 도리어 그는 뒤쪽으로만 나갔다. 그는 단지 벼슬을 하여서 가문을 빛내려 안하였을 뿐이 아니다. 그는 실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재물을 남기지 않고 흐터 버리리라 결심한 것이다. 조생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자, 곧, 그 사업에 착수하였다. 그는 증겨 장안의 건달 한량들과 추축하였다. 그의 집 사랑에는 손이 끊일때가 없었다. 연일 벌려지는 술 자리었다.
“좌상(座上)에 객상만(客常滿)이오. 준중(樽中)에 주불공(酒不空)”이라더니, 그를 두고 이른 말이었다.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에, 일일수경삼백배(一日須傾三百盃)라”,
연일장취(連日長醉)하여, 그는 다만 잠시라 깨는 적이 없었다.
그러나 물론 그러한 생활이 백년씩 지탱 되지는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 재물을 긁어 모느라, 가진 악착한 짓을 다 하였었다. 그리고 그것은 실로, 수십년간의 공력이었다. 그러나 조생원이 그것을 흩어버리기 위하여는 결코 장구한 시일이 필요하지는 않었다. 조생원은 단지 삼년 동안에 그 사업을 성취한 것이다. 그래도 그의 처자는 그 날로 거리에 나앉지 않어도 좋았다. 조생원이 술로 먹어 없앤 것은, 오직, 그 부친에게서 물려받은 부정한 재물뿐이다. 그의 조부의 대부터 있던 포천 땅의 볏백하는 농토는 고스란히 남겨 두었던 것이다.
‘그만하면 처자식들이 굶지는 않겠지...’ 조생원은 그렇게 생각하고, 마누라를 앞에 불러 앉히고 말하였다.
“여보, 마누라. 그간 마누라 속을 아마 내가 썩힐 만큼 썩혔나 보오. 허지만 우리가 그 부정한 재물을 가지고 편히 지낸대서야 될 일이겠오? 이제, 나는 집이 있서 소용없는 사람이라, 멀리 가오. 한가지 당부는 이 세상에서 벼슬을 하면 아무래도 사람을 버리게 되는 게니, 부디 자식들 공부시킬 생각 말고, 공부를 시키더라도 아예 과거 보일 생각 말고, 포천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 잘 지내도록 하오. 나는 그저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강산이나 유람하다 죽겠오.”
그것은 생이별이자, 곧, 사이별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한번 말을 내면 누가 무어라거나 막무가내인 조생원이다. 울며 붓잡는 처자의 손길을 떨쳐 버리고, 죽장 망혜 단표자로 그는 표연히 집을 나섰다.
그 뒤로 십년- 이 나라의 이른바 명산대천이라 하는 곳으로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데가 없거니와, 그 오랜 방랑생활 끝에, 그는 우연히 들른 이 선산 고을에가, 또 무슨 생각으로인지, 그대로 주저 물러 앉어서, 고을의 수부 김승지의 식객이 되어 가지고, 동리 아이들에게 글을 가리키며, 그 사이 어언간 이태나 가까웁게 지내오는 조생원이었다.
“여보, 조생원!” 길동이는 정색을 하고 이 기이한 인물을 똑바로 치어다 보며,
“그게, 진정으로 하시는 말씀이오?” 한마디 물었다.
“무엇이 진정이냐고?” 조생원은 잔을 들려다 말고 되물었다.
“적굴이나 찾어 가 볼까 하고, 생각한다는 게...”
“아암, 진정이지! 사실 내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네. 누구 동지만 나선다면 어데 마땅한 적굴을 하나 점거하여 놓고, 천하의 불평객들을 규합하여, 한번 대사를 도모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어 있네.”
그 말에, 이제까지 곁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김진사의 아들이 나서서,
“대사를 도모한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도적질을 한번 크게 해 볼까 하는 말일세. 하, 하, 하.”
“원, 참... 그래. 도적질 하는 게 대사란 말씀이오?”
“그럼, 그게, 조옴 큰일인가? 도적질도 잘만 하면, 곧, 천하를 바로잡느니...”
“원, 참, 도적질을 잘 해서 나라를 바로잡다니...”
“내 말하는 도적질이란, 곧, 역적질일세.”
“아무리 취중이라도 그런 말씀은 아예 마십쇼.”
“아닐세, 내 결코 술이 취해 하는 말이 아닐세.”
“아, 그럼 조생원! 그게 진정으로 하시는 말씀이오?”
“진정으로 하는 말이다마다..., 내 동지만 있다면 오늘이라고 양산박(梁山泊)을 꾸며 볼 마음이 단단히 있네.”
“원, 그게 진정으로 하시는 말씀이라면 더군다나...”
젊은이가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며 자못 어이 없어 하는 것을, 조생원은 도리어 못내 고이 하다는 듯이
“그럼 자넨 어떻게 해야 옳을 상 싶은가? 인군은 저렇듯 황음무도하여-, 탐관오리는 국내에 충만하여- 우리 백성된 자는 도탄에 빠져서 허더기어- 그래,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그저 시절 잘못 만난 탓이나 하고, 멀거니 누어 있어야 옳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그걸-” 젊은이는, 또 무슨 의견이 있는 모양이었으나, 조생원은
“이 때야 말로, 나는 녹림에 호걸들이 모여서 체천행도(替天行道)-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할 시기라 생각하네.”
한마디로 무질러뜨리고, 길동이를 돌아보며,
“홍도령! 자네, 대장으로 한번 나서 보겠나? 자네가 나선다면 일등 모사는 내 되지!” 하고, 진담 같기도 하고 농담 같기도 한 말을 한마디 한 다음에, 한바탕 깔깔 웃는다. 길동이는 아무 대꾸 않고 한번 빙그레 웃었다.
7. 산으로 들어간다.
뜻이 같은 친구와 더부러 술을 먹어도, 취하여 마음이 쾌(快)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하룻날 놀이를 파하고 세사람이 함께 마을로 들어 온 것은, 거의 땅검의 질 무렵이다. 그들이 가름길까지 와서, 두사람은 바른편으로 가야하고, 한사람은 왼편으로 가야 할 때, 문 듯 왼편 길로부터 사오명 사령에게 좌우로 옹위를 받은 채교 하나가 나와, 바른 편길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체교- 또 어느 불운한 처녀가 채홍사에게 걸린 것이다. 세 사람은, 잠깐 그 곳에 걸음을 멈추고 멀리 관가를 향하여 들어가는 그 일행의 뒷 모양을 바라보았다.
“흥! 누가 또 걸렸누?” 한 것은 김진사의 아들이다.
“자고로 미인박명이라더니, 남 달리 예쁘게 태어나기도 죄로구나!”
하고 한숨을 쉰 것은 조생원이다. 두 사람이 그렇듯 한마디씩 하여도 유독, 길동이만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어인 까닭도 없이 혼자 가름이 울렁거렸다. 어인 까닭도 없이?- 아니, 까닭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채교가 온 방향에는 자기가 현재 유하고 있는 유모의 집이 있는 것이오, 유모의 집 이웃은 바로 음전이의 집이다.
‘저 채교 속에 혹시나 음전이가...’ 숨이 탁! 막히는 불안이었다. 채교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건만, 길동이는 흡사 얼 빠진 사람처럼 잠깐 그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게, 홍도령! 괘씸은 하지만 어쩌는 수 없느니...”
조생원이 한마디 한다. 그 말에 길동이는, 이번에는 또 조생원의 얼굴을 잠깐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는 잠깐 동안 조생원도 자기처럼, 지금 지내 간 채교 속에 들어 있을 처녀가 음전이를 짐작하고 그러한 말을 하는 것 같이 느꼈던 것이다. ‘허지만, 설마 음전이가...’ 길동이는 그렇게 생각하므로써 제 마음의 불안을 떨어 버리려 하였다.
그러나, 대체 무엇 때문에 “설마 음전이가...”냐? 채홍사가 각도 각읍으로 돌며 눈이 벌개서 찾는 것은 미색이다. 어여뿐 처녀다. 음전이는, 그럼 채홍사가 탐낼만한 인물은 아니란 말인가? 길동이의 입에서 저 모르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음전이는 정녕 이 고을에서는 인물이 잘나기로 첫손에 꼽히는 처녀다. 길동이 자기만이 혼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음전이는 도저히 무사할 길이 없는 신세다.
길동이는 갑자기 당황하였다. “그럼 난 가우.”
불숙 한마디를 남겨 놓고 그대로 황황히 자기 처소로 향하여 발길을 옮겨 놓는 그의 뒷모양을, 두 사람은 잠깐 어이 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무엇을 생각하였는지 조생원이,
“자네는 먼저 돌아가게. 난 잠깐 들러보고 갈테니...” 하고, 길동이의 뒤를 쫓았다.
불행한 일이다. 길동이의 그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 맞었다. __을 들어 서자, 저편 음전이집 삽작 안팎에다가, 동네 사람들이 수십명이나 모여서 있는 것을 보이고, ‘그러면 정말...’ 하고, 길동이가 저의 가슴이 더욱 뛰노는 것을 느끼며 좀더 걸음을 빨리 하여 그 앞까지 갔을 때, 집안으로서 여인들의 곡성이 들려 나왔다.
그 곳에 모여 섰던 사람들은 문득, 고개를 돌려 그곳에 길동이가 창백한 얼굴을 하여 가지고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약속이나 한 듯, 좌우로 물러서서 삽작 앞의 길을 티여 놓았다. 길동이는 이제까지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음전이의 집을 이날 처음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소리를 내어 섧게 우는 것은 음전이의 이모와 이종동생 모녀요,
“여보 울면 뭘 허우?... 얘애. 그만 울어라!”
연해 달려가며, 자기들은 또 자기들 대로 연방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는 것은 길동이의 유모와 건너집의 마당개 할머니다. 이제 새삼스러이 물어 볼 것도 없는 일이었다. 방금 길에서 본 채교가 그렇다. 음전이는 정년 간 것이다- 길동이는 순간에, 눈앞이 캄캄하여지는 것을 깨달었다. 정신이 앗질하여, 금방 그 자리에가 쓸어질 것만 같애, 그는 간신히 마루 기둥을 집고서 몸을 가누었다.
“에구! 도련님!” 유모가 그제야 길동이가 온 것을 알고, 고꾸라질 듯, 마루 앞으로 나 앉었다.
“도련님! 이를 어째우?” 유모는 목이 메어 잠깐 말을 끊을 밖애 없었다.
“도련님”을 보니 음전이 생각이 더욱 새롭고, 음전이 신세를 생각하니 “도련님”까지 가여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음전이가 그-예 걸려들어 갔구료. 우리 불상한 음전이가...”
유모는 마침내 소리를 내어 울었다. 느껴 우는 우모를 나려다 보는 길동이의 얼굴이 무서웁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은 희다 못해 푸르고, 등잔만하게 부릅뜬 두 눈에서는 불이 철철 흘렀다.
“불상한 음전이가...” 그의 꽉 다물린 입술이 경련하듯 움지기며, 그 사이를 새어 나온 말소리가, 한번 그렇게 유모가 한 말을 되 받었다. 불상한 음전이-, 그렇다. 불상한 음전이었다. 아버지와 오빠를 한날 한시에 왜적의 손에 잃고, 어붓아비에게 가진 구박 다 받다가 오직 한분 의지 삼던 어머니마자 섧게 여이고...
그래, 혈혈단신 어린 몸이 한번 본 일도 없는 이모아주머니 하나를 바라고 산 넘고 물 건너 이 고을에 온 뒤에도, ‘혹시나 고 무서운 어붓아비가 저를 잡으러 오지나 않을까?’ ‘기어코 저를 찾어 내어 팔어 먹으러 들지나 않을까?’ 밤마다 꿈자리는 눌 사나웁고, 생시에도 마음은 늘 불안하여, 문전을 지내는 얼토당토 않은 사람의, 그림자에도 곧잘 소스라쳐 놀라고 놀라고 하던 음전이... 이제까지 열여덟해를 오직 불행 속에서만 지내 온 음전이가 끝끝내는 이렇듯, 만고에 짝이 없는 황음무도한 인군의 한때 노리개로 몸을 바쳐야 옳단 말이냐?
“아니다!” 길동이는 마치, 깊은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저모르게 소리를 내어 한마디 중얼거리고, 홱! 몸을 돌리자, 밖을 향하여 급히 나갔다. 집 안에 있는 사람이나, 집 밖에 섰는 사람이나 모두들 어리둥절 하여 멀거니 보고만 있는 중에, 때마침 그의 뒤를 쫓아 그곳에 이른 조생원이, 마악 삽작을 나서는 길동이의 앞을 가로 막었다.
“어델 가나?”
조생원은 엄숙한 표정으로 한마디 물었다. 그러나 길동이는 아무런 대답을 않고, 몸을 비켜 그의 옆을 지나치려 하였다. 조생원은 그의 팔을 덥썩 잡고,
“어델 가나?” 또 한번 물었다.
“노슈!”
“글세 어델 가나 말을 하게”
“음전이 찾으러 가우!”
“음전이를?...채홍사에게 걸려든 음전이를, 대체 자네가 무슨 수로 찾아 오겠단 말인가?”
“고분 고분 안내어 놓으면, 그까짓놈 때려 죽이고라고 찾아 오겠오!”
그 말에, 미처 조생원이 무어라기 전에, 유모가 맨발로 뛰어 나와 길동이의 팔에가 매어 달볐다.
“도련님. 안돼요!”
“......”
“제발이지 참으슈! 도련님!”
“참어라?” 눈은 허공을 향한채, 길동이는 한마디 뇌었다.
“네. 참으슈. 제발 참어요, 도련님!”
“참어라?... 음전인 그대루 버려 두구?”
“그럼 어떻 거우? 도련님! 그 애땜에 도련님께 무슨 변이라두 있구 보면, 쇤네가 대체 마마님을 무슨 낯으루 뵙는단 말이요.”
그래도 길동이는 얼빠진 사람처럼,
“참어라?...”하고, 다시 한번 뇐다.
“도련님. 제발 고정 합시오.”
방안에서 세상 모르고 울기만 하던 음전이의 이모가, 어느틈엔가 맨발로 뛰어나와,
“도련님. 그 년두 불상은 합죠. 불상은 합죠마는 모두가 저 타구난 팔짠걸 어쩝니까?”
그 말을 듣는 길동이의 표정이 처창하였다. “그 년두 불상하지만...” 길동이는 또 외었다.
그리고, 음전이 이모의 얼굴을 잠깐 나려다 보았다. ‘아- 모두들 제 생각만 하고 있고나!’ 불상하다고 울고, 가여웁다고 한숨 쉬면서도, 진정 음전이 생각을 하여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저 가여웁다는 것이다. 건성으로 불상하다는 것이다. 그 불상하고 가엾은 음전이를 어떻게 구하여 낼 생각은 안하고, 오직 뒤에 자기들 몸 위에 큰 화가 미칠 것만을 염려한다. 뒤 탈이 없다면 혹 모르겠다.
그러나 그를 구하여 내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자기들 몸위에 화가 미치는 것이라 하면, 하는 수 없이 불상한채로, 가엾은 채로, 음전이는 내어버려두자는 것이다. ‘그 년두 불상하지만 그 년두 불상하지만, 어쨋단 말이냐?’ 길동이의 두 눈에 이슬이 맺혔다. ‘어머니라면 만약 음전이의 친어머니라면 설마하니, 그런 말이야 않겠지...’ 음전이는 저의 이모를 마치 친어머니처럼 섬겼고, 이모는 또 음전이를 바루 친딸처럼 사랑하여 왔었다.-지만, 구경, 이모는 이모요, 결코 어머니는 아니었다.
길동이 두 눈에 맺혔던 눈물이 줄을 지어 그의 뺨 위를 흘러 나렸을 때,
“여보게 홍도령!”
조생원은 그의 어깨에다 손을 얹고,
“나하고 단둘이 얘기를 좀 하세.”
하고, 자기가 먼저 앞을 서서, 길동이의 처소로 향하였다. 길동이는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섰다. 유모도 함께 그들을 따라 와 방 앞에가 서서 기웃거리는 것을
“자네는 잠깐 저리 가게.”
조생원은 그를 물리치고, 길동이와 단 둘이 마주 앉었다.
“여보게. 자네 그래, 기어코 음전이를 뺏어 올 작정인가?”
“...”
길동이는 그가 그겋게 묻는 뜻을 몰라, 잠깐 멀거니 조생원의 얼굴만 바라다 보았다.
“일이 쉽지가 않느니... 웬만하면, 그도 당자의 팔짜소관으루 돌리구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어떤가?”
“그 말씀하자구 따라 오셨우?”
“...”
“난, 죽어두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우!”
“흐으음...”
조생원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이 그의 진정인가 아닌가, 그 마음 속을 꿰뚫고라도 보려는 긋이, 길동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 보다가,
“그러면 해보게. 허지만 일을 하더라도, 지금에서는 못하느니...”
“웨요?”
“채홍사가 어데 여염집에다 사처를 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동헌 뒤 책실에 가 들어 앉었다데. 뽑아 들인 계집애들은, 말끔, 내아(內衙)에다 들여 앉치구...”
“그러니 어떻단 말이요?”
“어떻단 말이냐니...관가를 들이치는게 쉬운 일일상싶은가?”
“어려울 거야 또 뭐 있소?”
“이 사람 보게. 그야 관가로 들어가서 한 바탕 싸우기만 허는게 장사가 아니거든. 싸우며, 또 한 편 음전이를 구해내야 않나?”
“구해내지요.”
“구해내어? 그래, 구해 냈다손 치구, 다음에는 어쩔텐가? 연약한 계집애를 데리구, 대체 어데루 어떻게 도망을 하겠단 말인가? 일도 안되고, 욕만 보느니...”
“...”
“예 일해 안될 까닭이 또 하나 있지.”
“예서 일을 하고 봄ㄴ, 일이 되고 안되고 간에, 자네 유모네식구와 음전이네식구는 모조리 벼락을 맞고 마느니... 그두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니겠나?”
“그럼 어떻거면 좋단 말이오?”
“그중 좋기는 아까 말한 것처럼, 그저, 모든걸 단념하구 내버려두는겐데...”
“그 말씀은 두 번두 마오.”
길동이는 못마땅한 듯 볼 멘 소리를 하였다. 조생원은 그의 얼굴을 빠안히 바라 보았다. 길동이의 두 눈에 가득한 것은 활활 일른 정열의 불길이다.
“그렇다면 어데 좀 생각 해 보세.”
조생원은 손을 들어 턱 아래 수염을 어루만지며, 고개를 치켜, 한 동안, 법국만 치어다 보다가
“일이 아무래도 어려운데...” 하고, 길동이를 건너다 보며,
“하여튼 이 고을서는 절대 안되고, 일을 하자면 난데 가서 해야만 하는데, 그것두 한두 사람 힘으룬 못하네. 남의 힘을 빌어야지.”
“힘 빌릴 사람이 어데 있소! 나 혼자 넉넉히 할 테니, 어데 가서 어떻게 하는 게라고 계책만 일러주오.”
“내 생각에는, 세재 같은, 서울 올라가는 길몫을 지키고 있다가 채홍사 일행이 지나 갈 때, 내달아서 음전이를 빼앗어 가지고 산 속으로 몸을 피하는 게 그 중 좋을상 싶은 데, 채홍사 행차를 들이치고 음전이를 빼내오는 것도 자네 혼자로선 어려우려니와, 그래 가지고 함께 몸을 피하기란 애초에 문제가 안되네. 아무래도 여러사람의 힘을 빌어야지.”
“그러니 그런 일에 나서 줄을 설 사람이 어데 있소.”
“재재에 적당이 있느니, 풀고개패라구..., 근 이십명 되나본데, 그 놈들 힘을 빌어 보기루 하세.”
“조생원, 그 자들 허구 잘 아슈?”
“이 사람아, 그 놈들의 힘을 무슨 수루 빌어 보겠단 말이요.”
“그야 하러만 들면 어렵진 않지. 자네가 당대 영웅인줄만 알고 보면, 저이들이 말을 아니 듣군 못배기네.”
“글세요...”
“아니야. 그건 염녀 없네. 헌데, 다만 그리고 보면 자네두 다시 세상에는 나와서 못사느니...대적놈 소리 듣구, 그래, 한평생을 지내 볼텐가?”
역시 길동이는 곧 대답은 못하였다. 그러나 조생원이,
“아주 그 작정 없이는 음전이 빼내올 생각, 아예 말게!” 하고 다짐 두듯 말하였을 때,
“잘 알았오!” 길동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생원, 나하고 고락을 가치 해주시겠오?”
조생원은 “고락을 가치하자니, 날더러 일등모사가 되란 그 말일세그려!” 하고 껄껄 웃었다.
그러나 그것도 모두 부지럾은 일이었다. 구 사람 사이에는 이미 그렇듯이 작정이 되었는데, 정작 음전이편에서는 그것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울고 몸부림치며 채교에 올라, 관가에까지는 끌려 들어갔으나, 그는 구차스러이 목숨을 더 살려 하지 않았다. 음전이는 채교에 실려 그곳까지 이르는 동안에, 이미 마음에 굳게 결단한 바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채교에서 나올 때, 그는 이미 울고 있지 않었고, 또 대도도 천연하였다. 그 모양을 본 교군꾼들은,
“금방 죽기라도 할 것 같이 날 뛰던 년이...”
“아, 저두 서울 올라가, 상감님 앞에서 만판 호강헐 생각하니까 마음이 동허든게지...”
돌아서서 입을 삐쭉거리며 욕들을 하였다. 그러나 소동이 일어난 것은, 그로서 오래지 않았다. 뒤깐에 잠깐 다녀 오겠단 사람이 오래도록 돌아 오지를 않아 가 보니, 음전이는 들보에다 띠를 걸고, 목을 매어 죽은 뒤다. 내아가 벌컥! 뒤집혔다. 급히 끌러 나려 방으로 옯겨다 뉘고, 만반으로 구호하여 보았으나, 음전이는 한 많은 이세상으로 다시 돌아오지는 않었다...
그러면 내일 새벽 일즉이 가치 떠나자고, 두 사람 사이에 의논이 완정히 되어, 조생원이 자리를 일어나려 하였을 때, 그 슬픈 소문은 이 동네에도 전하여졌다.
“무엇이야?”
소리를 벽력 같이 지르고, 길동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그 즉시 쓸어지듯 그 자리에는 털버덕 주저않고 말었다. ‘음전이가 죽었다. 음전이가 죽었단다...’ 너무나 뜻밖의 이레 길동이는 눈물로 나오지 않었다. 대체, 앞으로 어찌 하여야 좋을지도 몰랐다. 오직 기가 막힐 뿐이었다.
그리자, 그는 문득 옆집에서 곡성이 낭자하게 들려 옴을 깨달었다. ‘모두들 음전이의 죽임을 서러워 한다...’ 길동이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생원은 그대로 앉은채, 그의 동정만 살폈다. 그러나, 길동이가 황황히 방을 나서려 할 때, 그는 한마디 하였다.
“홍도령! 도루 자리에 앉게!”
목소리는 크지 않었으나, 어덴지 모르게 남을 위압하는 힘이 있었다. 길동이는 그대로 떨치고 나가지를 못하였다. 그는 주춤하고 서서 말하였다.
“아니요. 난 가겠오!”
조생원이 묻는다. “가다니, 어데로?”
“음전이의 원수를 안갚아 줄 수 있소?”
“원수를 갚다니?”
“막지마오. 내 가서 채홍사 임숭재와 선산부사 남경이를 때려 죽일 작정이오.”
“허, 허, 허...” 조생원은 기가 막히는 듯, 어처구니가 없는 듯 크게 웃고,
“용렬한 생각..., 그깐 놈 몇놈 때려 죽인다구 속이 시원헌가? 또 그깐 놈 허구, 귀헌 목숨을 바꿔?”
책망하듯, 비웃듯 그렇게 말한 다음에
“아무리 아깝지 않은 목숨이래도 우리 이왕이면 더 큰 일을 --------” 그리고 허, 허, 허,... 한바탕을 서글프게 웃었다.
8. 해인사사건(海印寺事件)
불행한 시절이었다. 한껏 어둡고 또 괴로운 세상이었다. 나라 정사가 그렇듯 문란하니, 도적인들 아니 알겠느냐? 당시 조선 팔도 삼백육십주는 간 곳마다 도적의 소굴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거니와, 그 중에서도 가장 성세가 큰 적당을 시험 삼아 한 도(道)에서 하나씩만 골라 볼 말이면,
경기도에는 양근(楊根)땅의 용문산(龍門山)패요, 충청도에는 공주(公州)땅의 계룡산(鷄龍山)패요, 전라도에는 익산(益山)땅의 용화산(龍華山)패요, 경상도에는 진주(晋州)땅의 비봉산(飛鳳山)패요, 강원도에는 이천(伊川)땅의 광복산(廣福山)패요, 함경도에는 영흥(永興)땅의 태박산(太博山)패요, 황해도에는 재령(載寧)땅의 장수산(長壽山)패요, 평안도에는 귀성(龜城)땅의 굴암산(窟菴山)패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위세가 장한 굴암산패와 용화산패는 도적의 수효가 실로 이백명이 가까운 대당이오, 가장 적다는 계룡산패와 장수산패도 모두 오륙십명을 내리지 않었다. 이 밖에, 오륙명 내지 일이십명 되는 좀도적의 무리들은 실로 도처에 있었으니 이들이 모두 관가의 위엄을 우숩게 알고서 임의로 각처에 출몰 횡행하여 각도 수령방백이 제일이 머리를 앓던 중에 을축년 가을 이후로는, 경상도 문경(聞慶)땅에 난데 없이 ‘토끼벼루’패라는 것이 붓썩 일어서서, 불과 얼마 사이에, 다만 그 경내에서만이 아니라 실로 왼 국내에 그 이름이 뚜렷이 들어났다.
경상도 문경 고을, 남쪽으로 이십리 남즛한 곳에 용연이라 하는 데가 있다. 이곳이 곧, 속리산(俗離山)에서 흘러 나리는 가온천(加恩川)과, 계립령(鷄立嶺)에다 근원을 둔 소야천(所耶川)과-, 이 두 냇물이 합류하는 곳이오, 이 용연의 동녘 깎아질린 언덕이 바로 ‘토끼벼루’다. 드물게 보는 험한 산이었다. 산짐승이나 간혹 다니는 험한 산길이, 바위를 뚫고 돌을 깨트려, 위태 위태하니 이리 돌고 저리 곱는다. 허위단심 더듬어 들어가기를 육칠리.
그 안에 허무러진 옛 성이 터만 앙상하니 남어 옛고, 그 북쪽은 곧 깍아 세운 듯한 산봉오리다. 항간에 전하는 말이 예전에 고려 태조가 남정하여 이곳까지 이르러서, 마침내 길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헤매이다가, 마침, 토끼 한 마리가 위태로운 산비탈을 타고 달리는 것을 보고서, 그 곳에다 길을 열고, 군사를 이끌어 나아갔다 한다. 이리하여 이곳 지명도 ‘토끼벼루’라 한다던가? 하여튼 이곳에 옛 성 터가 남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일이다.
이곳은 예전에는 방수(防戍)하던 험요처(險要處)이었다. 그러나, 과시 험요처는 험요처로되, 오직 그뿐이다. 오랜 동안을 우리 인간과는 아무런 인연도 없이 지내 온 곳이다. 수자리 사는 군사들이 물러간 뒤로, 봄 바람 가을 비에 허무러질대로 허무러진 빈 성 안에는 도무지 인가라 없었고, 잡초 우거진 가파른 산길에는 나무하는 아이놈과 사냥꾼의 발자취도 미치지 않었다. 오랜 동안을 아무 찾는 이란 없었고, 또 아무도 찾을 필요가 없는 산 속이었다.
그러던 것이 연산이 위에 오른지 열한해째 되는 을축년- 이해 가을부터 이 곳이 하루 아침에 크나큰 적굴로 화하고 또 불과 수삼개월에 ‘토끼벼루패’의 성세는 평안도의 굴암산패와 전라도의 용화산패를 능가하기에 이른 것이다. 웬 난데 없는 도적 떼가 이 곳을 소굴로 잡었던 것인가? 누구는, 선산 오을고개원(吾乙古介院)패가 그리로 자리를 옮긴 것이라 하였다. 누구는 본래, 금산(金山)의 --고개패가 그리로 들어 간 것이라 하였다.
또 누구는, 아니, 정녕 풀고개 패가 새로이 소굴을 그 곳에 정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풀고개란, 새재(鳥嶺)의 딴이름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은, 절반씩만 옳았다. 이 토끼벼루 적굴에 모인 도적 가운데는, 과연 풀고개패도 있었다. 떡고개패도 있었다. 또 올고개원패도 있었다.
그러나, 그 패들이 모두가, 아주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아니다. 아주 옮긴 것이라면, 오랜 뒤에는 또 모를 일-, 우선 당장만이라도, 먼저 그들이 출몰하던 자리에는 도적이 나지 않어야만 옳을 일이다. 그러나, 올고개원에도 떡고개에도 또 풀고개에도 여전히 적환(賊患)은 끊이지 않었다. 누구는 또 말한다. 그 세패가, 각기 두패로 나뉘어 절반은 본래의 저희들의 버릿자리인 풀고개와 떡고개와 올고개원에 남어 있고, 나머지 절반들만 그렇듯 토끼벼루로 들어 가서 합세한 것이라고- 그것은 아는 사람의 말이었다.
그러나 듣는 사람들은 그 말을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었다. 그것에는 또 그러할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올고개월패로 말하거나, 또 떡고개패나 풀고개패로 말하거나 모두가 고작 십여명에 불과한 좀도적떼다. 이 자들은 이제까지 ‘집뒤짐’을 나가는 일도 드물고, 한용 하는 일이란 것이, 그저 뜨내기 행인들의 보따리를 빼앗기와 근촌인읍의 장꾼들을 털어 먹기였다. 그 자들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어떠한 필요가 있어서 그처럼 난데로 나가 한데 모엿다란 말이냐? 또 모일만한 까닭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 자들이 언제 서로 알었다고 합심하기란 좀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있다. 그 자들이 전부 한 곳에 모였다 하더라도, 고작 사오십명에 불과할 것이니 만약 그 절반 이라하면 많어도 삼십명을 넘지는 못할 것이다. 고작 삼십명을 넘지 못하는 좀도적들의 경륜하는 사업으로 보아서 이 토끼벼루패라는 저당의 하는 일은 너무나 규모가 컸다. 이 패들은 그 사이, 문경에도 나타났다. 상주에도 나타났다. 또 함창에도 나타났다. 그리고 부명을 듣는 집을, 그것도 꼭 양반들만 골라서, 전후 일곱 집을 떨었다.
그들의 하는 짓은 자못 대담무쌍하고, 또 방약무도하였다. 그것은 아무리 하여도 어제까지 행인의 보따리나 빼앗고 장꾼이나 털어 먹고 그러던 좀도적들의 솜씨가 아니었다. 삼십명으로는 못하고 오십명이면 한다든가하는 수효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배짱이 다르다. 금도(金途)가 엄청났다.
‘이게 필시 좀도적들 때가 아니지! 필연코 어데서든 대적때가 굴러 들어 온게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그러면, 먼저 주장하던 이는 또 이렇게 말한다. 올고개원패 이하로 세 패가 모인 것은 아무래도 사실인데, 그 자들이 그냥 모인 것이 아니라, 필시 어데서 유명짜한 괴수라도 맞어 들인 것이 분명하리라고- 그것은 근리한 말이었다.
그러고, 또 사실 옳았다. 토끼벼루패가 한번 합천 해인사를 들이치기에 미쳐, 이 적당은 과연 천하에 드믄 장사를 괴수로 바뜰고 있다는 것이 판명 되었다. 그리고 그 천하에 드믄 장사는 뜻밖에도 아직 이십이 채 못된 소년이라는 것이다. 이 소문이 한번 전하여지자, 선산 사람들은 짐작 가는 것이 있었다.
‘천하에 드믄 소년장자라... 이는, 혹시 그간 우리 고을에 한 일년이나 와서 머무르던 홍도령 홍길동이나 아닐까?...’
그들은 채홍사에게 뽑힌 음전이가 자결하여 죽은 일을 생각해 내고 또, 그날 밤에 -임서에 자취를 감추어 버린 홍도령과 조생원을 기억에서 찾어 내고, 은근히 고개를 끄덕인 이가 많었다. ‘만약에 홍도령이 적괴가 되었다면 여간 금도군관 따위를 가지고는 도무지 상대가 안될께야! 더구나 조생원까지 곁에 있어서 일을 거들어 주는 게라면...’
그러나, 그들은 오직 속으로만 그렇게들 생각할 뿐이다. 아무도 그것을 입밖에 내어 말하는 이는 없었다. 공연스리 그러한 일에 서뿔리 입을 놀리어, 바로 무슨 적당과 관련이나 있는 긋이 혐의를 바들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들의 추측은 옳았다. 새로 일어난 적당 ‘토끼벼루패’의 과수는 음전이 죽던 날 밤에 조생원과 함께 선산 고을에서 다최를 감추어 버린 홍길동이가 틀림 없었다. 그가 해인사를 들이친 전후곡절에 관하여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저술된 ‘홍길동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로 길동이 여러 사람으로 더부러 무예를 연습하여 수월지내에 군법이 정제한지라. 일일은 여러 사람이 이르되, ‘우리들이 발서부터 합천 해인사를 처 그 재물을 탈취코져 하나 지략이 부족하여 거조를 내지 못하였더니 이제 장군의 의향이 어떠하시니있고.’ 길동이 웃어 가로되 ‘내 장차 발군하리니, 그대 둥은 지휘대로 하라.’ 하고 청포흑대에 나귀를 타고 종자 두에명을 다리고 가며 가로뒈 ‘내 그 절에 가 동정을 보고 오리라.’ 하고 가니 완연한 재상가 자제러라. 그 절로 들어가며 먼저 주장승을 불러 이르되, ‘나는 서울 홍판사댁 자제라. 이 절에 와 글공부를 하려 하거니와, 명일 백미 이십석을 보낼 것이니 음식을 정히 차리면 너이들도 한가지 먹으리라.’ 하고, 사중을 두루 살펴 보며 후일을 기약하고 동구를 나오니 모든 중이 기꺼하더라. 길동이 돌아와 백미 이십 석을 보내고, 여러 사람들을 불러 가로되, “내 아모날 그 절에 가 이리 이리 하리니 그대등은 뒤를 쫓아와 이리이리 하라.” 하고, 그 날을 기다려 종자 수십명을 다리고 해인사에 이르니, 모든 중이 맞아 들어 가니 길동이 노승을 불러 물어 가로되, “내, 보낸 쌀로 음식이 부족지 아니 하드뇨.” 노승이 가로되, “어찌 부족하리있가. 너무 황강하여이다.” 길동이 상좌에 앉고 모든 중을 일제이 청하여 각기 상을 받게 하고, 먼저 술을 마시며 차례로 권하니, 모든 중이 황감하여 하더라. 길동이 상을 받고 먹더니, 문득 모래를 가만히 입에 넣고 깨무니 그 소래 큰지라. 여러 승이 듣고 놀라 사죄하거능 길동이 거짓 대로하여 꾸짖어 가로되 “너이등이 어찌 음식을 아다지 부정케 하느뇨. 이는 반드시 능멸함이라.” 하고, 종자에게 분부하여 여러 승을 다 한줄에 결박하여 앉치니, 사중이 황겁하여 아모리 할 줄 모르는지라. 이윽고 도적 수백여명이 일시에 달아둘어 모든 재물을 제것 가져 가듯하니, 여러 숭이 보고, 다만 입으로 소리만 지를 따음이라. 이 때 불목한이 마침 나갔다가 이런 일을 보고 즉시 관가에 고하니, 합천 원이 듣고, 관군을 풀어, ‘도적을 잡으라’ 하니, 수백명 장교가 도적의 뒤를 쫓을 새. 문득 보니 한 중이 송낙을 쓰고 장삼을 입고 뫼에 올라 외어 가로되. “도적이 북편 소로로 가니, 빨리 가 잡으소서.” 하거늘, 관군이 그 절 중인가 하며 풍우 같이 북편 쇼로로 찾어 가다가 날이 저믄 후, 잡지 못하고 돌아 가니라. 길동이 여러 도적을 남편 대로로 보내고 제 홀로 중의 복색으로 관군을 소겨 무사히 굴혈로 돌아오니, 모든 사람이 발서 재물을 수탐하여 왔는지라. 일시에 나와 사례하거늘, 길동이 웃어 가로되 “장부 이만 재조 없으면, 어찌 중인의 괴수 되리오.” 하더라.
...고본 ‘홍길동전’은 단순히 소설로 볼 때에는 흥미가 아주 없지도 않으나 문헌으로서의 가치는 별로히 없는 저술이다. ‘얘기책’ 고대소설이라는 것이 흔히 그렇듯 이 ‘홍길동전’도 사실에 없는 허황맹랑한 수작이 너무나 많다. 길동이가 둔갑법을 쓰고, 축지법을 쓰고, 구름을 타고서 하늘을 달리고, 초인으로 저와 똑같은 길동이 여덟을 만들어 팔도에 배척하고... 나종에 율도국으로 가서 왕이 되는 것은 그만 두고라도 애초에 집을 나가는 동기부터 사실과는 모두 틀리는 수작이다.
그러한 중에 이 ‘해인사사건’ 하나만은 대체로 사실과 부합한다. 대개, 이대로 믿어도 좋다. 그러나 그 때 길동이가 거느린 도적의 수효는 옳지 않다. “이윽고 도적 구백여명이 일시에 달아 들어...” 하고, 이 책에 씨어 있어 또 실상 그 때 세상 사람들도 모두 그런 줄로 믿고 있었던 모양이나, 당시 토끼벼루패는 아직 그렇게 큰 적당이 아니었다. 길동이의 지휘 아래, 실제로 해인사를 습격한 인수는 불과 삽십여명이다...
9. 함경 영사건
거듭 말하거니와, 당시의 이 나라 정사는 극도로 어지러웠다. 대체 국내에 도적 없는 방화, 강도, 절도, 따위의 크고 적은 사건이, 도처에서 매일 같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러나 나라에 원체 힘이 없어서 능히 이를 금하지 못한다. 지방의 관원들은 오직, 애꿎은 백성들의 등곬을 뽑기에만 눈들이 벌갰다. 도적 잡을 생각은 꿈에도 않는다. 물론 힘도 부쳤다. 그러나 그보다보 애당초에 마음이 없다. 자기 관하에 일이 생겼다 하여도 대개는 모른체 덮어 둔다.
저엉 그대로 덮어 주기 어려운 경우에는 그저 눈가림으로 포교들을 몇 명 풀어 본다. 그러면 영을 받은 포교들은, 도적들이 다 물러 갔을 무렵에 어슬렁 어슬렁 현장으로 나가서 저희들도 말막음으로 한바퀴 건성 휘돌아 보고는 그대로 돌아온다. 아무리 얼뜬 도적이라 하더라도 좀체 잡힐 턱이 없는 노릇이었다.
‘해인사사건’도 역시 그러하다. 합천 군수는, 서울 포청과 경상감영에 보장을 띠웠다. 그러나 그뿐이다. 경상감사는 위에다 이 일을 장계(狀啓)하였다. 오직 그뿐이다. 수속상 밟어야 할 일이니까 하였을 그 뿐이다. 도적은 구대어 애써 가며 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래, 경상감사는 그것이 토끼벼루패의 짓인 줄까지 번연히 알면서도, 아무 조치도 강구 하려 들지 않았다. 위에서도 물론 이 일에 관하여는 종시 아무런 분부가 없었다.
그러한 따위의 반갑지 않은 장계는 애당초에 인군에게다는 구경시키지 않기로 은연중에 약속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연산은, 그러한 사건,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는 도무지 흥미를, 아니 관심을 갖지 않은 인군이다. 눈치속도 없이, 그러한 결코 유쾌하지 않은 소문을 들려 주기라도 한다면, 남이 한창 술이야, 계집이야 하고 흥청거리며 노는 판에 똑 이 고현놈이 시켜 주었다고 죄책을 당하기 첩경 쉬운 일이다.
그러나, 조정으로서나, 지방 관원으로서나 언제까지 그렇게 모른체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해인사사건이 있은지 미처 십여일이 못되어 이번에는 좀 더 큰 사건이-. 함경감영이 화적떼에게 습격을 당하였다는 실로 전고에 없는 크나큰 변이 생긴 것이다.
다시 한번 고본 ‘홍길동전’에서 함경감영사건을 인용하여 보기로 한다.
...일일은 길동이 여러 사람을 모으고 의논하여 가로되, ‘이제 함경감사 탐관오리로 백성의 고혈을 빨아 먹어 백성이 견디지 못하는 지라. 우리등이 그저 두지 못하리니, 그대등은 나의지휘대로 하라.’ 하고, 하나씩 흘려 들어가 아모날은 밤으로 기약을 정하고, 남문 밖에 불을 지르니, 감사 크게 놀라, ‘불을 구하라.’ 하니, 관속이며 백성들이 일시에 내달아, 그 불을 구할 새 길동이의 수백명 적당이 일시에 성중에 달아 들어, 창고를 열고 전곡과 군기를 수탐하여 북문으로 달아나니, 성중이 요란하여 물 끓듯 하는지라. 감사 불의지변을 망하여 어찌 할 줄 모르더니 날이 밝은 후 살펴보니 창고의 군기와 전곡이 비엇거늘, 감사 대경실색하여 그 도적 잡기를 힘 쓰더니 홀연, 북문에 방을 붙였으되,
‘아모날 전곡 도적한 자는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하였거늘, 감사 군사를 풀어, 그 도적 잡으려 하더라. 차설, 길동이 모든 도적과 한가지로 전곡을 많이 도적하였으나, 행여 길에서 잡힐까 염려 하여, 둔갑법과 축지법을 행하여 처소로 돌아오니 날이 새고저 하였더라. 예기에는 길동이가 함경감영을 드리치는데 토끼벼루패를 데리고 가서 한 것처럼 되어 있으나 그것을 옳지 않다.
그는 조생원과 단 둘이서만 함경도로 갔던 것이다. 물론 사람은 썼디. 다만 수백명이 아니다, 칠십여명이었거니와 태박산(太博山)패다. 길동이는 조생원의 말을 쫓아서, 차례로 팔도를 돌아, 수령방백 가운데 가장 탐학한 자들을 응징하며, 불상한 백성들을 구휼하기로 결심하고 우선 제일착으로 함경도로 갔던 것이다.
그는 그렇거니와 대체 태박산패들은 언제 길동이나 조생원을 알었다고 그들의 지휘를 달갑게 받어서, 그처럼 큰일을 한 것일까? 그들은 첫째, 홍도령 홍길동이의 위용과 무예에 고개가 숙었고, 둘 째, 조생원의 지모와 담략에 혀를 내어 둘렀다. 자기들 태박산패는 ‘관북(關北)의 대당(大黨)’이란 칭호를 받고 있기는 하나, 하는 짓은 구경, 살인과 약탈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거기에 비겨 그들은 같은 도적질을 하더라도 그 배포가 컸다. 그것은 해인사사건을 보더라도 알 일이다. 자기들은 이제까지 몇섬의 쌀, 고작 한두바리의 재물을 위하여 수많은 양민들을, 혹은 죽이고 혹은 상하여 왔다.
그러나, 홍도령과 조생원의 주장하는 바는 자기들과는 크게 달렀다. 가뜩이나 사모 쓴 도적놈들에게 뜯기고 쪼들리는 불상한 양민들은, 일체로 범하지 말자는 것이다. 우리들은 다 같이 불상한 이 나라의 백성이다. 어떻게 똑같이 불상한 백성들의 원수가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이왕 도적질을 할 바에는 백성들의 기름과 피를 빨어서 배가 부를대로 부른탐관오리들의 재물을 빼앗자는 것이었다. 그것은 본래 그 자들의 것이 아니다. 모두가 불상한 백성들의 재물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그것은 빼앗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부당하게 빼앗겼던 것을 모두 찾는 것이다. 그래 가지고는, 그것을 본래의 주인인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자는 것이다. 가난한 자 의자 없는 자들을 넓리 구휼하여 주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적질도 그냥 심상한 도적질이 아니었다. 과연 그것도, 도적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그것부터 문제다. 다만 그 수단과 방법이 비상하달 따름이지 그것은 한편 탐학한 관원들을 징계하고, 또 한편 불상한 백성들을 건지는 한 개의 의거요, 쾌거요 장거이었다. 길동이는 스스로 이름 지어 ‘활빈당’, ‘가난한 이를 살리는 무리’라 하였거니와 하여튼 태박산패는 이리 하여 기꺼이 활빈당에 가맹하고, 도, 언제나 충실하게 홍도령의 지휘를 받을 것을 약속하였던 것이다.
10. 활빈당(一)
함경감영사건이 있은지 또 불과 십여일에 이번에는 평안도 귀성부중(歸城府中)이 같은 환난을 겪었다. 원체 경내에 관서대적(關西大賊), ‘굴암산패’가 있는지라, 적환은 끊일 사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피해는 매양 민가에만 있었는데, 이번처럼 백여명 대당이 일시에 부중으로 몰려들어 와서 창고를 깨트리고 전곡과 군기를 빼앗어 가기는 처음이다. 본래 귀성도호부는 정주목과 더부러 고려때의 귀주군이니, 실로 관서의 요해처다.
멀리는 고려 고종때, 서북면병마사 박서가 이곳에서 원수 살례탑이 거느린 몽고 군사를 맞어서 싸왔고 가까이는 성종 십삼년에 평장사 서히가 지경을 넘어 들어온 여진군을 물리친 곳이다. 그래, 이 고을 풍속이 활 쏘고 말 달리기를 힘쓰거니와, 따라서 군비(軍備)외 엄정(嚴整)하기도, 물론, 여느 고을과는 달렀다. 그러하건만 대담하다 할지, 무모하다 할지, 화적떼는 성내로 들어와서, 그것도 민가가 아니라, 바로 부중의 창고를 깨트린 것이다...
그날 밤- 북문 밖 큰동네에 백여명 화적떼가 들었다는 급보를 받고, 부사는 병마첨절제사의 기구로 동헌에 좌기하여 좌우병방에게 각각 군사를 주어 현장으로 급히 보냈다. 그러나 어데서 길이 어긋났는지 군사들이 큰동네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적당은 부중으로 들어와서 창고를 깨트리고 있었다.
다시 급보를 받고 좌우병방은 군사를 휘몰아 가지고 허둥지둥 성내로 들어왔다. 그리고 유유히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적당과 중로에서 마주쳤다. 잠깐 서로 어울어져 접전이 있었으나 싸움은 오래 끌지 않고 끝났다. 도적들은 수효도 관군보다는 월등히 적었고, 또 칼이며 창이며 병장기들을 손에 들었다고는 하여도 법수 없이 마구 휘두르는 것이라, 도무지 문제가 아니었으나, 그들의 괴수인듯한 젊은 병사 하나이 영웅무쌍하였다.
“나는 다은 사람이 아니라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다! 너희들 손에 잡힐 사람이 아니니, 어서 헛수고 말고 곱게 돌아들 가거라!”
소리가 문자 그대로 쇠북을 울리는 것 같었다. 군사들은 은근히 집어 먹고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좌병방은,
“이놈아! 힌소리 말고 내 칼을 받어라!”
소리를 벽력 같이 지르며 앞으로 나섰다. 홍길동이의 수단은 과연 어떠한지 아직 모르겠으나 그 수하 졸개들 솜씨가 도무지 보잘 것이 없고, 겸하여 관군의 수효 많은 것을 든든히 믿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가 믿기는 그보다도, 오히려 저의 무예였다. 그는 검술이 출중하기로 고을 안에서 이름 난 사람이다. 길동이는 그러나 냉소한다.
“그냥 말로 일러서는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이놈! 네깐놈이...”
좌병방은 다시 한 번 소리를 벽력 같이 지르며 칼을 번쩍 들고 길동이에게로 달려 들었다. 그러나 단 한번 칼을 어울어 보지도 못하고 그는 ‘악!’ 소리를 치며 길가에가 쓰러졌다. 길동이의 정수리를 바라고 내리친 저의 칼은 부질없이 허공에 흐르고, 그 대신 저의 바른 팔에다 길동이의 칼을 받은 것이다.
곁에서 이 모양을 보고 있던 우병방이 번개 같이 내당었다. 그러나 길동이의 칼이 다시 한번 번뜻 하며, 그도마저 ‘악!’소리를 치고, 그 자리에 쓰러진다. 좌우병방이 그처럼 허무하게 나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군사들은 그대로 와- 소리를 지르며 도망질을 쳤다. 길동이는 그 꼴이 우숩던지 한번 껄껄 웃고 쓰러진 좌우병방은 그대로 내버려 둔채, 수하의 무리들을 재촉하여 거침없이 성밖으로 나가서 어둠 속에 자최를 감추고 말었다.
한마디 덧붙일 것은, 정녕 바른 팔에 정통으로 칼을 맞었으면서도 좌우병방이 모두 아무 상처도 입지 않은 사실이다. 길동이는 구태어 그들을 해치고 싶지 않었다. 그래, 오직 그들로 하여금 칼을 떨어트리게 하기 위하여 칼등으로 내리쳤던 것이다.
다음은 황해도로, 재령군수가 봉변을 당하였다. 쳐 들어 간 것은 장수산패다. 또 다음은 강원도로, 이천현감이 욕을 단단히 보았다. 여기에 출동한 것은 광복산패. 강원도에서 일을 마치자, 길동이는 곧 경기도로 들어와 용문산패를 이끌고서 지평현을 드리치고, 다시 다음에는 충청도로 나려가서 계룡산패를 이끌고서 지평현을 드리치고, 다시 다음에는 충청도로 나려 가서 계룡산패를 데리고 공주읍으로 들어가 목사(牧使)가 이태동안에 긇어 모은 재물을 송두리째 빼앗었고 전라도에서는 호남의 대당인 용화산패가, 군수가 내일쯤 서울로 올려 보내려 마침 꾸려 놓았던 봉물짐을 그대로 고스란히 가로차 버렸다.
이상 일곱도에서 이렇듯 각각한 고을씩을 드리치되, 빼앗은 물건의 많거 적은 것이 서로 다르고, 또 그 수단 방법이 반드시 일매지지는 않었으나, 다만 일을 마치고 돌아 올 때 성문이나 혹은 장수거리 같은 데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을 붙이기는 한결 같었다.
〔부정한 재물이기로 거두어 가노라. 활빈당 행수 홍길동〕
그는 그렇거니와 대체 길동이가 한번 이르는 곳마다 도적들이 두말 않고 그의 지휘에 복종한 것은 어인 까닭인가?
앞서 함경감영을 칠 때 태백산패가 그러했듯이, 모두 그의 용맹과 조생원의 지모에 깊이 경복하였기 때문이오, 함경도와 평안도, 두 곳에서 일을 하여, 한번 ‘활빈당’의 이름이 국내 방방곡곡에 알려진 뒤로는 어제를 가든, ‘홍길동’ 삼자만 이르면 무슨 말이고 뜻대로 움지겨 주었던 까닭이다. 그러면 길동이가 팔도를 골고루 돈 목적은 어디 있는가? 독자는 얼른 생각에, 그것은 각도에 있는 탐관오리들을 징계하고, 그들의 부정한 재물을 배앗기 위함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탐관오리를 찾자면, 경상도에만도, 소위 ‘삼맹호(三猛虎)’라는 조명을 받고 있는 선산부사와 의성현령과 상주목사를 위시하여, 허다한 무리가 있다. 가까운뎃 것을 그대로 버려두고, 구태어 그처럼 먼길을 나설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그는 활빈당의 사업을 전국적으로 급속하게 전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선, 각도에 있는 대당들을 활빈당에다 가맹시키고, 그들에게 이 거대한 사업의 참된 의의를 이해시켜야만 하였던 것이다.
그로서 각도 각읍이 크게 술렁거렸다. 이 시대에는 청백리(淸白吏)라고는 약에 쓰려도 없었다. 좀 더하고, 좀 덜하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지, 모두가 그놈이 그놈인 부정한 관원들 뿐이다. 활빈당이 함경도에 만 일을 하였다면, 충청도 각읍 수령들은, 과노히 근심을 하지 않어도 좋을 것이었다. 황해도에서만 일이 일어났다면, 전라도에 앉어서는 다리를 쭈욱 뻗고 누었어도 무방한 것이었다. 그러나, 활빈당은 그저 강원도거나 평안도거나, 함부로 돌아다니며, 그 행동이 실로 방약무인하다.
참으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적당이었다. 그들이 한번 노린 재물은 마치 저의 주머니 속에 든 것을 끄집어내듯, 어렵지 않게 빼앗어기지 않었다. 마침 깊은 밤이라 재령군수는 수천기생을 품에 끼고 한참 잠이 깊이 들었었는데 그것을 밉게 보았든저, 활빈당의 무리는, 그를 벌거 벗긴채 동헌 섬돌 아래로 상루 잡아 끌어 내어다, 보기 좋게 곤정을 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그냥 볼기를 친 것이 아니라, 죄인 다르듯, 법대로 형틀에 올려 매고,
“네 죄를 네가 알렸다!” 하고 수죄(數罪)를 하여 가며, 곤장질을 하였다는 것이다. 다만 다행하다 할 것은, 아직 인명이 하낳도 상하지 않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읍의 수령으로서, 그처럼 도적에게 볼기를 맞었다면 대체, 그런 욕이 어제 있단 말이냐? 그런 욕을 보느니, 오히려 도적의 칼에 썩 죽어 버리는것이 얼마나 나을지 모르겠다.
탐관오리들은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싸이고 말었다. 먹어도 도무지 음식이 달지 않었고, 자도 언제나 자리가 편안치 않었다. 그들은 관속을 엄히 단속하여 안팎의 방비를 엄히 하고, 장교와 사령들에게는 각각 병장기를 내어 주어 매일 부즈런히 야순을 돌게 하였다.
그러나 불안과 공포 속에 떠는 것은, 오직 그들, 탐관오리 뿐이다. 백성들은-백성들은 털끝만이라도 활빈당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그냥 화적떼라 하면 내남직 할 것없이 겁도 날 것이었다.
그러나, 활빈당은 그냥 도적이 아니다. 설사 도적은 도적이라 하더라도, 그는 결코 백성을 해치는 도적이 아니다. 활빈당은 백성의 원수가 아니라, 실로 백성들에게는 좋은 벗이었다. 활빈당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그것은 가난한 사람을 구훌하는 단체었다. 어둔 밤에 가난한 사람의 집 삽작 밖에 와서
“이서방! 보리 들여 가우!”
“복순어머니! 돈 들여 가우!” 하는 것은 활빈당이다. 처음에는
‘우리, 돈 갖다 줄 사람이 없는데...’ ‘우리, 곡식 갖다 줄 사람이 없는데...’ 대체 아닌 밤중에 홍두께도 분수가 있지, 이게 수슨 수작인가하고, ‘혹시 도적놈이 그런 말로 꼬여서 삽작을 열게 하고,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이나 아닐까?...’ 당치 않은 의심도 잠깐 하여 보는 것이나, 그 즉시, 픽! 웃고 ‘원, 도적놈이 환장이나 했다면 모를까? 대체 우리 집에는 뭘 찾으러 온담! ...또 설사 도적놈이 눈깔이 멀어서 우리게를 왔다더라도, 그까짓 삽작이야 부시고도 들어오고, 넘어서도 들어오지..., 아니 뒷곁 울타리 밑을 판들, 들어올 데가 없어 걱정일까?’
그렇게 생각을 하고 보면, 아무래도 도적이란 당치 않을 것 같애서, 그래, 식구들이 부산하니 일어나서 불을 켜 들고 나와서 보면 삽작 밖에 놓여 있는 것은 ‘대체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과연 돈을 들여 가라더니 돈꾸러미요, 곡식을 들여가라더니 곡식섬이 분명하다. 분주히 둘러 보아야 이미, 길가에는 사람의 모양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는데, 문득, 개울 건너서 갑자기 개가 컹컹 짖어. ‘혹시나...’ 하고 그편으로 귀를 기울이느라면,
“칠성아! 돈 들여 가라!” 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은은히 들려 온다. 칠성이라면, 유복자로 태어나서, 과부 어머니와 단둘이 외롭게 지내는 신세다. 활빈당의 혜택을 입는 것은, 반드시 가난한 사람이나 의미 없는 사람에만 한하였다.
그러나 어느 고을에서든 다 같이 이 혜택을 입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판명된 바에 의하면, 전라도는 익산, 충청도는 공주, 경기도는 지평, 강원도는 이천, 황해도는 재령, 평안도는 귀성, 그리고 함경도는 영흥이었다. 이것을 보면, 활빈당의 혜택을 입는 것은 반드시 활빈당의 피해를 받은 고을이 분명하였다. 그 고을 원에게서 빼앗은 부정한 재물을 가지고 그 고을의 가난한 사람,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훌하는 것이 적실하였다.
그것은 이미 다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이것을 알었을 때, 이 나라 백성들은, 활빈당의 활동에 대하여 크나큰 관심을 가졌다. 많은 흥미와 호의를 느꼈다. 고을 원님은 잠을 달게 못자고, 입맛이 떨어져 가지고, ‘제발 내겔랑 오지 마소서!’ 마음으로 은근히 축순데, 백성들은 그와는 반대로 ‘대체 우리 고을에는 언제나 오려누? 우리 원님이 곡경을 한번 치러야만, 똑, 우리두 수가 날텐데...’ 하고, 은근히 활빈당이 쳐 들어오기만 고대고대 한다...
11. 활빈당(二)
활빈당이 그렇듯 차례로 각도를 돌며, 한 도에서 한 고을씩 드리치는데, 아직 겪어 보지 않은 곳이 오직 경상도 한 도라. 만약 저들이 이번에 또 작난을 한다면, 응당 우리 경내일 것이라 하여, 경상감사가 관하 육십육관에 행관하여 경계를 엄히 하여 적변을 방비하는 중에, 어느 날, 선산 고을에는 전고에 듣도 보도 못하던 기이한 일이 생겨났다.
“돈 타 가란다우.”
“양식 타 가란다우.”
“남들 다 갔는데 어서 우리두 가 봐야지.” 이 동네서도 북적 북적.
“아-니, 뭐라구?”
“돈 타 가래요. 양식두 준대요.”
“대체 돈은 누가 타 가라구 그러며 양식은 누가 준다구 그러는 거야?”
“남들이 모두 그럽띄다. 뭐 장거리에 방이 붙었다나?”
“방이 붙었대? 그럼, 옳지, 우리 고을에두 활빈당이 들어 온게로구먼, 허지만 활빈당은 밤중에 몰래 집집이 찾어 다니며 준다든데...”
“활빈당이라나 그런게 아니라, 바로 우리 고을 원님이 내다 붙인거랍띄다.”
“뭐? 원님이? 원님이 돈 주구 양식 준대? 미친 소리 좀 작작 허지. 돈 바치고 양식바치라는 방을 잘못 보고들 허는 말이지. 주길 누가 줘?...”
“글세 말이야, 그럼 잘못 보고들 그러는 걸까? 나두 듣기에 이상허긴 허드구면.”
“제길헐. 무슨 돈이 있어 또 바치구. 무슨 양식이 있어 또 바치누? 아주 생으루 잡아 먹으래라!”
방이 붙었다는 소문만 듣고는, 백성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고이치 않은 일이다. 본관사또는 ‘삼맹호’의 한명이다. 그 길은 먹통이 백성들에게 돈을 내어 주고, 양식을 나누어 주겠다니, 그게 도무지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말이다. 그러나, 그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사실 있었으니 참으로 깃구녕이 막힐 노릇이었다. 장거리에는 사실로 다음과 같은 방이 붙어 있었다.
"본관이 이 고을에 도임한 이래로, 착한 정사로써 백성을 다스리려고는 아니하고, 오직 밤으로 날을 이어 주색에 빠지며, 또 심악한 토색질로 백성의 고혈을 빨었으니 이는 실로, 귀신과 사람이 한가지로 노할 일이라, 스스로 천벌의 두려울 것을 느끼는 도다. 비록 이제 와서 뉘우친다 한들 어이 미츠리오 마는 옛 성인의 말씀에도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라 하였기로, 이제 그간 부정히 모은 약간의 전곡을 호터서 오늘날까지 지은 죄의 만분의 일이나마 갚고, 앞으로는 신명께 맹세하여, 반드시 착하고 어즌 정시를 베프러, 써 전날의 잘못을 천하에 사례코자 하노라. 원 고을의 백성은, 부디 본관의이 간절한 뜻을 살피어 오늘 돈과 양식을 받으러 관가로 나오라. 을축년 십월 -일 선산부사 남경"
바로 대문짝만이나 하게 써다 붙인 방은 정녕 이러한 내용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처음에 아무래도 꼭 믿어지지가 않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람이 변하였다 하더라도 대체 분수가 있는 것이다. 일에는 무엇이고, 있을 수 있는 일이 있고, 아무리 하여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그야 탐관오리가 개과천선을 하여 청백리가 되는 것은 그 전례가 반드시 없는 바는 아니로되, 이것은 너무나 일이 갑작스러웠다. 너무나 일이 허황되었다.
“여보. 아무래도 이것은 누가 작난으로 한게요.”
“누가?”
“그야 낸들 아오마는, 글쎄-, 혹, 활빈당이라고 써다 붙였는지 아오?”
“활빈당이? 활빈당이 이런 방은 웨 서다 붙인단 말이오? 우리 고을 원님을 농락하느라 그랬는지...”
“여보, 당치 않소. 자- 저것 좀 보오. 돈 타러 간다구. 양식 타러 간다구, 저렇게 사람들이 몰려 가는데 활빈당의 농락을 받는다면, 그건 오히려 우리 백성이지. 어디 원님이오.”
“글세-. 그럼 정말 우리 원님이 개과천선을 했을까? 그래도 원 나는 도무지 곧이 들리지가 않는걸...”
그러는 사이에 먼저 갔던 사람들은 벌서들 돌아 오는데, 자세히 살펴 볼 것도 없이 허리에는 돈꾸러미들을 차고, 어깨에는 양식자루를 메고, 제일이 얼굴들은 싱글벙글이다.
“여보, 이거 짜장 정말인가 보오.”
“글세- 오늘이라 해가 서쪽에서 뜨지도 않었는데...”
“이러고 있을게 아니라, 우리두 어서 가 봅시다.”
“아-니, 김서방은 아까 아주먼네가 가시지 않었오?”
“글세- 그렇게 식구마닥이야 줄라구?”
“아니야. 저걸봐. 저기, 나두 어서 집으루 가서 식구마다 다 데리구 나서야겠다, 헌데, 웬 자루가 그렇게 있어야지.”
“아따, 거저 주는 곡식, 받을데 없어서 못받을라구...”
식구가 다 끌어 나와서 불야 불야 관가를 바라고 들어가니, 홍살문 앞이 문자 그대로 송곳 하나 꽃을 틈이 없게 사람으로 꽉 찼다.
“어휴- 원 이 많은 사람들이 언제 모두 타 가누?”
비비적 비비적 사람틈을 비집고 앞으로 나가느랴면, 이 사람, 저 사람,
“여보, 웨 이리 밀구 들어오! 저뒤루 가 스시우.”
“여보. 차례차례 섭시다.”
“여보. 앞에 선 이들. 나중 온 사람 새치기 시키지 마시우.”
워낙들 그악스러운 통에 다시 뒤로 물러 나와 맨 끝에 사 서서
“원, 이렇게 뒤에사 서서두 차례가 올까?”
원체 늘어 선 사람이 많으니까 미상불 마음에 불안하여, 앞에 선 사람의 옆얼굴에다 대고 반은 혼잣말 같이 지껄이니,
“아마, 그건 염려 없다나 봅띠다.”
“염려 없다니 고맙소. 누가 그럽띠까?”
“바루 지금 이방이 나와서 말하는데 오늘 온 사람만큼은 한사람 빼 놓지 않구 일매지게 줄테니 함부루 댐비지 말구 차례를 기다리라구 그럽띠다. 염례 없을께유.”
“고마운 말이요. 허지만 이렇게 뒤에가 서 있고야, 차례가 올려면 날이 저믈고 말께니 또 한번 타보기는 틀리지 않었다.?”
“아따 이 양반, 욕심은 되우 많우.”
“그런데 줄이 어떻게 되었기에 사람들이 여기 말구 저기두 일짜루 스구, 또 저기두 일짜루 스구 했우?”
“굴이 모두 다섯이라우.”
“그럼, 대체 어느 줄이 돈이구, 어느 줄이 곡식이우?”
“어느 줄이구, 똑 같이 돈두 주구 곡식두 준다우.”
“그럼, 내 잘못 서지 않었나? 저기 저 아주먼네는 나버덤 나중 왔는데 벌써 저만큼 앞서갔으니, 나두 저 줄에가 슬걸 그러지 않었나? 우리 줄은 웨 이리 꾸물거뎌?”
사람들이 원체 많이 모렸는지라, 모두가 이 사나이처럼 수다스럽다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이 사람 저사람, 잔소리깨나 늘어들 놓는데, 오히려 타러 온 사람들은 한가로웁게 잡담지껄이 하며 제 차례나 기다리면 그만이지만, 내어 주는 사람들은 참말 눈 코 뜰 사이 없이 바뻤다.
홍살문 안, 그 넓은 뜰에가 산 같이 쌓인 것이 모두가 돈꾸러미요, 곡식섬인데, 육방관속이 들끓어 나와, 장교와 사령들을 지휘하여 매인당 돈 댓량에 쌀 한말씩 내어 준다. 원님이 하로밤 사이에 개과천선을 하여 이런 좋은 일을 하니까 수하 관속들도 자연 사또님의 뜻을 받어 그런지, 오늘은 전처럼 사납고 거만하고 아니꼽지 않다. 다른 때 같으면, 사령 따위들도, 으레 반말 지껄이로,
“웨 이리 떠다 밀구 지랄이야? 난리가 쳐 들어오나?...입들 닥쳐! 귀청 떨어지겠네”
욕설을 늘어 놓을 것인데, 오늘은 이 고을에서 탐심 많고 거만하기로 원님 다음 가는 이방이란 위인까지도.
“여러분도 모두 보시다시피 곡식이나 돈이나 이렇게 많이 있으니까 저 맨 끝에 선 분이라고 못 타갈 염례는 없소이다. 공연히 서로 먼저 타갈려다가는 도리어 혼잡만 일으키고 더딜께니, 꼭 차례를 따라서 앞으로 나오시우.”
하고, 일러 주는 말도 고맙거니와, 태도도 지나치게 공손하다. 어제까지의 이방과는 사람이 판이 달렀다. 말과 태도만이 다른 것이 아니다. 아주 얼굴하며, 몸집하며, 나이까지도 백판 달른 딴 이방이었다. 사람들 입이란, 원래 종작이 없는 것이어서, 그러면 그런가 보다 하는게 아니라 예서 제서 수근 수근 공론이 분분하다. 그 가운데서도 아까 맨 끝줄에 서서, 차례가 못올까 염려하던 사나이가 이 때에는 한 중간쯤에나 다가 들어 서서 역시 앞에 선 사람을 보고,
“여보 저 사람이 누구요?”
“그게 이방이라나 봅띄다.”
“이방이 언제 갈렸오?”
“이방 갈렸단 소리, 난 못 들었오.”
“그래도 갈린게오. 원래 이방이 쇠전거리 사는 최씨 아니오? 최이방은 나두 얼굴을 잘 아는데...”
사나이는 이번에는 옆줄에 선 사람을 보고,
“저, 이방 옆에 선 사람은 누구요?”
“누가 그러는데 공방이라나 봅띠다.”
“공방? 그럼 공방두 갈렸나? 도무지 처음 보는 사람이니...”
“노형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나도 말이오마는, 장교나 사령이나 나 아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를 아니하니 고이하오.”
“가만 있소. 어디 내 한번 물어 보지.”
마침 곁을 지나는 사령 하나를 붓잡고
“여보, 말 좀 물어봅시다.”
“무슨 말이오?”
“저- 수만이 오늘 안나왔오?”
“수만이가 대체 누구란 말이오?”
“사령 다니는 김수만이오.”
“사령 다니는?... 아마 그 사람은 지금 고깐 속에 있나 보오.”
“그럼 돌석이는 어디 있소?”
“돌석이는 또 누구요?”
“신돌석이를 모르슈? 역시 사령 다니는...”
“ 그 사람도 아마 고깐 속에 있을께오.”
“그럼 강자근동이두 고깐 속에 있소?”
“아따 이 양반이 사령 점구 하러 왔나? 잔말 말구 어서 앞으로나 바짝 다가서우.”
사령이 저편으로 사라진 뒤에, 수다스런 사나이는 앞의 사람과 곁의 사람을 번갈아 보며, 가장 은근한 소리로,
“여보. 고깐 속에 들어 잇다는 게 수상하지 않소?”
“수상하긴. 무에 수상하단 말이오?”
“고깐 속에 있다는게 말이오.”
“아마 게서들 곡식을 내고 있는게지.”
“여보, 알만한 사람은 모두 고깐에가 있다구 허구, 모를 사람들만 밖에서 떠도는 게 그래 이상치 않소? 난 아무래도 무슨 곡절이 있는 것만 같소그려.”
“앗따. 이 양반. 곡절이 있거나 말거나 우리 타갈거나 타가면 그만 아니오?”
“그야 그렇지... 헌데, 이처럼 내어 주신다구 그냥 덥썩 덥썩 받어만 가기가 너무나 황송하니 백성된 도리에, 우리가 사또님 뵙구 인사라도 한번 드리는게 옳지 않겠오?”
“여보. 객쩍은 수짝 좀 그만 허우.”
“남, 정당한 말 하는데 웨 객쩍은 수작이라오... 가만 있소. 내 또 한번 알아보지.”
이번에는 한 두어간통 앞에가 사람 틈에 서서, 누가 혹서 새치기나 하지 않나?- 크고 둥근 눈을 연해 두리번거리며 있는 키가 후리후리 큰 장교를 보고 말을 건넨다.
“여보. 말좀 물읍시다.” “무슨 말이오?”
“안전(案前)께선 지금 어디 계씨오?”
“그건 웨 묻소?”
“이렇게 괸 고을 백성들이 모두 모여서 사또님 은택을 톡톡히 입는 터에 만약 이리두 납신다면 우려가 치하 인사래두 드려야 사리에 옳지 않겠오?”
“쓸데 없는 수작 말고, 어서 받을거나 받어 가지고 돌아 가오.”
“어디 내 차례 왔오?... 저- 한마디만 더 물읍시다. 사또님두 고깐 속에 계시우?”
그 소리에, 생기기도 원체 우탁부탁한 그 장교가.
“저 자식이 웬 잔소리가 저리 많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팩 지르는 것을 저편에서 곡식섬 푸는 것을 보고 섰던 나이 지긋이 먹은 장교가,
“여게 뭘 그러나? 오늘 같이 좋은 날, 객쩍게 시비 말게.”
하고 한마디 타이른다. 수다스러운 사나이는 곁에 섰는 사람을 돌아보고 눈을 한번 찡긋하며.
“여보, 원님두 고깐 속에 계실게 분명하지 않소?”
하고 속사거렸다. 그는, 정녕코, 활빈당이 쥐도 새도 모르게 고을에 들어 와서, 부자 이하로 사령 관노에 이르기까지 깡그리 잡어서 고깐 속에다 가두어 놓고, 이렇게 전곡을 풀어 백성들을 구휼하는 것이다 믿고 하는 수자이었다.
그것은 사실, 옳게 맞춘 추측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영악하게 알아 맞춘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이번 일의 배후에는 정녕코 활빈당이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었다.
'우리 고을 원님이라는게 원래, 이맛백이에다 송곳을 박으면 이크! 쇠로구나 하고 빨어 들일 위인이다. 그 먹통이 무슨 보살핌으로 이런 일을 하겠느냐? 필시 이리 이리 안하면 넌 목숨이 없을 줄로 알라든지 하고 활빈당이 얼음짱이라도 놓은게지...'
그래, 아무러한 사또님도 그만 간담이 서늘하여 이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쯤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 집에서 대체 몇 식구가 나오든 나온 사람만큼은 골고루 돈과 곡식을 준대서, 약석바른 사람들은 늙은이 어린이까지 번갈아 나와서 자리를 맡아 가며, 저의 집과 홍살문 사이를 몇 고팽이를 친 사람까지 있었다. 하여튼 그곳에 쌓였던 그 많은 돈꾸러미와 곡식섬이 승석때는 하여서 다 없어졌는데 일을 마치자, 활빈당은 그제야 고깐 문을 열고 부사 이하로 그 안에 있던 무리들을 끌어 내었다. 우선 부사부터 묶은 것을 풀어 놓고서 괴수인듯싶은 나이 한 사십 된 텁석부리가
“그만하면 버릇은 단단히 배웠을상싶으니, 이만 용서하여 주거니와, 네 이름으로 방에다가도 써 붙이다시피 아모쪼록 앞으로는 착하고 어즌 정사를 베풀도록 하거라.”
젊잖게 한마디 훈계한 다음에, 빌려 입은 복색들을 벗어 주고 일제이 물러가 버렸다. 원래 오거는 사십여명이었었는데, 갈 때는 육십명이 넘는 일행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옥문을 열고, 그 안에 가치었던 이십여명 죄수를 끌어 내어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활빈당이 이 선산 관가를 드리친 것은, 바로 그날 새벽 일이었다.
간밤에 늦도록 술관을 버리고 앉어서 닭을 두어 홰나 울린 다음에, 비로소 자리에 든 부사는 엄습을 당할 때 아직도 꿈 속에 있었다. 꿈 속에 있던 사람이 된 발길에 채여 잠을 깨자, 활빈당이 라는 소리에 벌써 혼이 반이나 나갔는데, 자리웃 바람에 잔뜩 뒷결박을 당하고, 입에 재갈까지 물리어 어두운 곳깐 속에가 종일을 꼬박이 굶었던 터이라, 묶인 것이 풀렸을 때는 다죽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 다 죽은 사람이 한번 활빈당이 물러 가자, 저와 함께 곡경을 치른 통인들에게 부축을 받어 동헌으로 올러 가며부터 우선 옷이라도 갈아 입으러 내아로 들어 갈 생각은 않고 맨상루에 자리웃 바람으로 길길이 뛰며, 애꿎은 부하들만 가지고 호령호령 하였다.
“이 놈들아! 이 쓸개 빠진 놈들아! 그래, 나는 혼몽하게 자다가나 일을 당하였지만 너 이놈들은 대체 명색이 무엇이란 말이냐? 그래, 눈 멀겋게 뜨고 찍 소리 한번 못지르고 그대로 순순히 묶어드란 말이냐? 설사 강약이 부동하기로 너 이놈들이 그저 죽자꾸나 달려 들어 소리 소리 질렀다면 제놈들이 제 아무리 대담하기로 도망질은 아니 치지 못하였을께다. 그걸 이놈! 번(番) 아닌 놈까지 속고 불려 들어 와, 활빈당 삼자에 그 말 등신처럼 묶겨야 옳단 말이냐? 오-라. 네놈들이 항거만 안하면 죽이지 않는단 그 소리에 자청을 허다시피 해서 묶겼지? 이놈들아! 그래. 그 도적놈들만 무섭구, 나는 안무서우냐? 어디 이놈들! 내 손에 한번 당해봐라!”
안절 부절 못하고 펄펄 뛰며 부사는 옆에 서 있는 통인을 돌아보고 “형틀을 드리래라!”
통인 하나가 어슬렁 어슬렁 대청마루 끝으로 나가 서서
“급장아-” 하고 불렀다. 급장이가 어델 갔는지 대답이 없다.
“급장아-” “급장아-”
두세번을 겊어 불러도 도무지 대답이 어뵤는 통에 부사는 금시에 분통이 터지겠다. ‘대체 이 놈의 급장이는 어데를 갔단 말이냐?...’ 그 놈을 보기만 하면 그 놈부터 우선 대매에 쳐 죽여야겠는데
“급장아-” “급장아-”
하고 그래도 연해 급장이를 찾고 있는 통인놈을 보니까, 이번에는 이렇듯 아무 경향이 없는 터에 ‘대체 무슨 절차를 밟는답시고, 저렇게 급장이만 외고 있나?’ 하여,
“이 놈아! 없는 급장이를 밤중까지 부르고 있을 테냐?”
죄 없는 통인에게 화를 벌컥 내고, 섬돌 아래를 향하여,
“이놈! 사령아!”
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종일 판판이 굵은 놈들이 등신들만 만어 가지고, 원 이거 죽을 수를 때려구 이러나? 대체 또 무슨 벼락이 내리려누?...’ 죽이려건 죽이슈- 하고 맋이 하나 없이 주욱 -- 늘어서 있는 가운데서 사령 두엇이
“네-이.”
“이놈들아! 듣지두 못했느냐? 어서 형틀을 드려라!”
“네-이.”
연해 연방 긴 대답 소리는 들려도 누구 하나 움지기려 들지를 않는다. 형틀을 드려 오래다가, 대체 누구부터 치려는 것인지, 죄가 있다면 이방 이하로 모조리 죄가 있고, 없다면 다 같이 없어야만 옳을 경계인데, 지금 원님의 화난 품이, 아마도 한놈 빠지지 않고 모조리 돌려가며 볼기가 터져야만 될 모양이라. ‘이 껄에다 또 곤장 맞자고 형틀 들여 올 생각도 아니 났지만 그보다도 제일에, 눈이 하가마에 왼몸에 맧이 확 풀려서 꼼짝을 못하겠기 때문이었다. 이 꼴을 보고 부사는 정말 부아가 터질 지경이다.
“이 놈들! 이 놈들! 너이놈이 그래, 인젠 분부 거행두 않는다? 저놈들이 아마도 화적놈들 허구 한테 부동이 됐나 보다! 저놈들을 어쩔구? 저놈들을 대체 어떻게 헌담!..”
사뭇 모주 먹은 돼지 벼르듯 하는 통에 설은게 매양 아랫사람이라, 짜장 별반 거조가 있으려나 보다 하여, 모두들 혼이 다 나갔는데, 이러한 경우에 사또님을 다룰 사람은 그래도 이방 하나라. 이방이 출반주하여
“이번 일로 만씀 하오면, 과연 안전깨옵서 소인네를 모조리 장하에 물고를 내신다 하더라도 시언치 않으시게 되었소이다. 그러나 아뢰옵기는 황송하오나 활빈당이 그간 칠도로 돌아 다니며 그렇듯 행패가 무쌍하였으되, 적당을 단 한 놈이라 근표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소이다. 남이라 다 변변치 못하여 그러하오리까? 이는 원체 그 놈들이 여느 적당과는 달러서 지모외 담략이 비상하옵고 또 그 행동이 신출귀몰한 까닭이오이다. 안전께옵서 오늘 그놈들에게 욕을 보신 것은 미친 개한테 물리신 셈으로만 치시어 부디 고정하시고, 이 일은 그대로 덮어 두시는 것이 마땅할까 보이다.”
그리고 꼭 그대로 덮어 둘 밖에 없는 까닭을 들어서 말한다. 이번 일은 그냥 강적떼에게 전곡을 도적 맞은 것과도 다르다. 부사가 그렇듯 참혹한 욕을 보았고, 육방관속이 모조리 곡경을 치렀다. 거기다가 또 강적들이 일읍 수령의 이름을 빌어 백주에 공공연히 관곡을 풀어서 백성들에게 내어 주었으니, 대체 그런 변이 천고에 어데 있겠느냐? 만약에 이 일이 한번 감영에 알려지고, 마침내 위에까지 입문하고 볼 말이면, 부사가 여간 관직을 삭탈 당하는 것쯤으로 일이 낙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펄펄 뛰던 사또가, 이방의 하는 말을 듣는 중에, 차차 풀이 죽더니, 이에 이르러,
“그러니 이 일을 대체 어껗게 하면 좋단 말이냐?”
관장된 위엄도 체모도 없이 바로 하소 하듯 말하는 데 그 말소리가 흡사 중병 앓튼 사람 신음하는 소리와 같었다.
“글세 올시다. 이제는 어떻게든 일을 엄적하여 볼 밖에 없는 노릇이온데, 이번 일에 강적들이 저의 활빈당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마치 관가에서 나서서 휼민 하듯이 한 것이 가히 불행중 다행이라 하겠오이다. 심히 구차스러웁기는 하오나, 이렇게 된 이상에는, 역시 정말 안전께옵서 하신줄로 세상에서 믿도록 합시는 것이 좋지나 않사올지...”
말이 미쳐 끝나기 전에 부사는 증을 벌컥 내었다.
“이 놈아! 대체 눈 감고 아옹도 분수가 있는게지. 어린아이면 그따위 수작을 곧이 들을상 싶으냐?”
“그는 그러하오나, 그 밖에는 도무지 달리 묘한 도리가 있을 상 싶지 않으니 어쩌오리까?”
듣고 보니 따는 그러하였다. 무슨 그것이 똑 따놓은 묘책이래서 해보자는 것이 아니다. 달리는 아무 도리가 없으니까, 궁한 나머지에 구차스러우나마 그렇게라도 하여 볼까 하는 수작이다.
“그러면 그렇게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만들 물러 가되 어떠한 일이 있든, 오늘 이 일만은, 일체 발설을 말렀다! 만약 이 일을 입 밖에 내어 세상에 소문을 퍼뜨리는 자가 있다면, 그 때는 --말 장하에 물고를 내고 말 것이니 그리 알아라!”
그러나 부사 자신이 그렇듯, 그것은 눈 감고 아웅이었다. 한 사람의 손으로 천하의 이목을 어이 가릴 수가 있느냐? 설혹 또 그것이 능히 세상을 속힐 수 있는 일이라손 치더라도 어데 선산고을에만 있었던 일일셰야 말이다. 활빈당의 장난은 한날 한시에 이 선산 발고 상주와 의성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였다. 그들은, 세 고을에서 한날 한시에 똑같은 방법으로 탐관오리를 욕 주고, 똑같은 방법으로 불상한 백성들에게 전곡을 흐터준 것이다.
누가 특히 나서서 일러 주지 않었어도, 백성들은, 모다, 이 사건의 진상을 환 하니 알고들 있었다. 환하니 진상을 알고 있었던 까닭에, 그들은 그처럼 주리고 헐벗은 백성 다웁지 않게, 그 뒤, 오랜 동안을 두고, 서로 모이면 웃고 떠들고, 또 통쾌하여 하였다. 물론 선산부사와 의성현령과 또 상주목사와-, 이 ‘삼맹호(三猛虎)’는 며칠을 못가서 원ㅅ자리가 떨어지고 말았다. 백성들 사이에, 홍도령 홍길동과 그가 거느리는 활빈당의 이름은 날로 높아만 갔다...
12. 토포사(討捕使)
그간 각지에서 그처럼 연달아 활빈당사건이 일어났건만, 나라에서는 이에 대하여 별로이 대책을 강구한 것이 없었다. 각도 감사에게서 장계는 빗발 치듯 올라 오나 그때마다 삼공육경은 오직 눈살을 찌푸리고 혀를 차고 할뿐이다. 그리고, 전에 잠깐 말한 바와 같은 이유로 하여, 이 일을 정작 인군에게는 알리지도 않고 지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은 사정이 달렀다. 이번에 선산·상주·의성, 세 고을에서 한날 한시에 일어난 사건은, 그냥 버려 두기에는 너무나 일이 크고 또 맹랑하였다. 도적들이 그냥 관가를 그리치고, 단순히 재물을 빼앗어 가고 한 것이 아니다.
앞서는 재령군수가 도적들에게 곤장을 맞은 변고가 있었거니와, 이번은 그보다도 더 하여 활빈당은 지방의 수령과 육방관속을 모조리 쥐 잡듯 잡아 가두고, 백주에 공공연히 백성들을 모아 놓고, 함부루 관곡을 그터 버린 것이다. 그것도 한곳만이 아니오, 세 고을이 한날 한시에 똑같이 당하였다.
너무나 대담하고 맹랑한 행위에 새삼스러이 놀라고 어이가 없어 조정에 공론이 분분할 때 황해도로부터 장계가 올라 왔다. 황해감사가 올리는 장계가 아니라 황해감사가 탐도불법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에 맺혔기로 봉고파직 하였노라는 암행어사의 장계였다. 조정에서 내어 보낸 일도 없는 암행어사의 장계가 웬 일일까?
어사의 이름은 ‘홍길동’이었다. 조정은 마침내 발끈 뒤집혔다.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활빈당의 하는 일이 과연 어떠한 지경에까지 이를지 모르겠다. 이리하여 활빈당과 그 행수 홍길동이의 이름은, 마침내 연산의 귀에까지 들어간 바 되고, 좌우포장(左右捕將)은 그 날로 명초(命招)를 받았다.때의 좌변포도대장은 김숭호요. 우변포도대장은 이홉이라는 사람이다. 이홉은 무예와 용력이 무리에 뛰어나고, 지모와 담략이 사람에게 지나는 당대의 인걸이었다. 각각 군사를 거느리고 즉일 기행하여 요사스러운 도적 홍길동이를 잡아 들이되 한달 기한을 어기지 말라는 인군의 분부를 받고, 좌우포장은 그 앞을 물러 나왔다. 물러 나오며, 곧, 이롭은 김승호를 돌아 보고 물었다.
“영감. 이제 어떻게 하시려오?”
“어떻게 하다니 왕명이 지엄한데 즉일 기행할 밖에 더 있소?”
좌포장 김승호는 연로무능한 사람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종적이 황홀한 길동이를 대체, 한달 기한에 어데 가서 어떻게 잡아야 옳단 말이냐? 생각만 하여도 기가 죽었다.
“영감. 잠깐 내 집으로 가십시다.” 이홉이 다시 말하였다.
“웨요?”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우선 상의할 일이 있지 않겠오!”
“그럼, 영감댁보다 내집이 예서 가까우니 내게로 가십시다.”
때에, 우포장의 집은 저동(苧洞)에 있고, 좌포장의 집은 교동 어구에 있었다. 교동 김포장집 큰 사랑에가 주객이 자리를 청하고 앉자 사람을 물리치고, 먼저 우포장 이홉이 입을 열었다.
“영감. 기병을 하여 어데로 가시려오?”
좌포장 김승호가 대답한다.
“황해도로 나려 가지 어데로 가겠오?”
“황해도?”
“네. 아, 이번에는 홍길동이가 또 가어사(假御史)가 되어 황해감사를 골리지 않았오?”
이홉은 잠깐 말 없이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홍길동이란 놈이 분신술을 할 줄 안다는 말이 있는데 영감, 들어 계시오?”
“나도 들은 법 하오이다.”
“길동이가 분신술을 하여 여덟 길동이가 되어 가지고, 체 각기 한도씩 맡아 가지고 장난을 한다는 소문이 항간에 자자한데, 영감은 이 소리를 어떻게 들으시오?”
“그야 물론 당토 않는 말이지오. 그놈이 원체 신출귀몰 하여 각처로 출몰하며 연달아 작폐를 하는 통에 어리석은 백성들이 그런 말까지 지어 낸게 아니겠오? 분신술이란 다무어고, 여덟 길동이란 다 무어요.”
“나도 그리 생각하오. 그러나 길동이란 눔이 그처럼 각도로 돌아다니며 장난을 할까요?”
“아, 그 간 팔도로 돌아 다니며 장난을 아니 하였오? 이번에는 또 황해도로 가서 그러고--”
“글세요... 허지만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 이름이 나왔다고 꼭 홍길동이 장난이라고는 믿기 어려우리다. 길동이는 과연 하나지만, 활빈당은 왼 국내에 펼쳐 있는 모양이라... 내 생각에는 각처에 있는 도적떼들이, 모두 홍길동이와 기맥을 통하여, 제각기 활빈당 명효를 가지고, 그 지휘대로 움지기는 것 같소.”
“글쎄요...” “저번에 영남 세 고을에서 한날 한시에 활빈당이 장난을 한 것만 보더라도 알 일이 아니오? 분신술 한다는게 과연 당치 않은 수작이라면, 그 눔이 한날 한시에 어떻게 세 고을에 나타나겠오?”
“영감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러하오.”
“그러니까, 길동이가 황해감영에서 또 장난을 하였다 하여, 곧 그눔이 황해도에 있는줄 믿으시는 것은 옳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게 정말 길동이 짓인지. 또는 그 수하의 있는 눔이 길동이 이름을 가지고 한 짓인지...”
김승호는 잠깐 입을 다물고 말이 없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이홉을 건너다 보았다.
“그럼, 영감은 길동이란 눔이 지금 어데 있는 줄로 요량 하시오!”
“그건 나도 모르지요.”
“영감도 모른다? 그래도, 영감. 오늘 안으로 기병은 하세야 않겠오?”
“그야 해야지오.”
“그럼 기병을 하여 가지고 어데로 가시려오?”
“나는 영남으로 나려 가 볼까 하오.”
“네.”
“그럼 영감은 황해감사를 농락한 가어사 홍길동이는 다른 눔이 이름을 빌린게구 정말 길동이는 그저 영남에 있는 것으로 믿으시는 모양이오그려.”
“꼭 그런 것은 아니외다마는 좀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오.”
“아무래도 생각은 영감이 나보다 깊으니 그럼 나도 함께 영남으로 가기로 하리까?”
“동행을 하셔도 좋지만 따루 따루 종적을 수탐하여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럼, 나는 내 생각대로 황해도로 가보겠오.”
이리하여 이들 두 토포사는 각기 군사를 일으키어, 한사람은 황해도로 또 한사람은 경상도로 나려 가기로 되었다...
13. 聞慶에서
그로부터 한 열흘쯤 지난 어느 날, 한낮이 기울어서다. 문경(聞慶) 장터에서 조곰 떨어져 있는 주막, 어둠컴컴한 방에서 장사꾼처럼 보이는 나이 사십 남즛한 사나이가 혼자 술잔을 기울기고 있었다. 그가 바로 홍길동이를 잡으러 서울서 나려온 토포사 이홉이다. 대체 그가 토포사 이홉이면, 그 차린 모양이 웬 일이며 데리고 나려 온 군사는 다 어찌한 것일까? 그는 애초에 군사를 거느리고 서울을 떠나지는 않았던 것이다. 바로
“길동이 잡으러 나왔습네-”
하고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섰다가는 한달은 말도 말고, 백년을 가더라도 도저히 못잡을 것이었다. ‘설사 군사를 풀어서 길동이를 능히 잡을 수 있다손 치더라도 병력은 천명으로도 부족하고 만명을 가져도 어려울 것이다. 국내 어데를 가든지 곳곳이 길동이의 수족이 있고 활빈당의 이목이 있다고 믿는게 옳을 것이다...’ 가뜩이나 종적이 황홀한 길동이를 군사를 거느리고 나서서, 대체 어떻게 잡아 보겠단 말이냐?
그것이 당초부터의 그의 주장이었거니와 그 생각은 역시 옳았다. 그것은 그가 이곳 문경으로 나여 와 있는 중에 전하여 들은 소식이거니와, 자기와 헤여져, 군사를 거느리고 황해도로 나려간 좌포장은 길동이가 장수산 적굴에 들어있는 줄로 믿고, 군사를 나아가 적굴을 들이치다가 참혹하게도 패를 보고야 말았다 한다. 하여튼 이홉은 그러한 주견이 있었던 까닭에 좌포장처럼 군사를 일으키어 깃빨을 휘날리며 북 치고 나려 오지는 않았다.
그는 수하 군관들 가운데서, 가장 사람이 똑똑하고, 또 건장한 자 열명만을 뽑아 내었다. 그리고, 자기자신부터 그렇듯 장사꾼으로 변장을 하였거니와 그들에게도 모다 복색들을 고치고, 여러 패로 나뉘어서 각기 활빈당과 홍길동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여, 문경으로 긴밀한 연락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문경- 그는 어찌하여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피차의 연락장소로 이곳 문영을 택하였던 것인가 그것에는 또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는 길동이가 지금 꼭 그곳에다 들어 있으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래의 길동이의 소굴은 아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오, 틀림 없이 경상도에-. 경상도도 바로 문경고을 토끼벼루에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 사이 활빈당은 팔도에서 각각 한차례씩 작난을 하였다. 그것만 가지고는 물론 길동이의 정말 소굴이 어느 도 어느 고을에 있음을 알아 낸달 수가 없다. 그러나 이홉은 해인사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활빈당이 비로소 그 이름을 걸고 나선 함경감영사건 직전의 해인사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해인사를 들이친 도적의 무리는 물론 활빈당이라는 이름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범행의 교묘한 점, 대담한 점 또 규모가 엄청나게 큰 점 등은, 그 뒤에 연달아 일어난 모든 활빈당사건과 분명히 일맥상통한 점이 있다. 그 때, 해인사를 엄습한 것은, 전하는 말에 문경의 토끼벼루패라고 한다.
이홉은 이리하여 활빈당이 대체 어느 때 어느 곳에 나타나든, 그 행수되는 홍길동이의 본래의 소굴은 토끼벼루에 틀림 없으리라하였다. 설사, 그 뒤에 다른 곳으로 처소를 옯겼다하더라도, 문경에를 오면, 그 종적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하고, 그는 굳게 믿은 것이다.
그 간, 자기가 실지로 수탐하고 또 부하들에게서 들어 온 정보를 종합하여 볼 말이면, 길동이는 역시 자기가 당초에 추측하였던 바와 같이, 토끼벼루를 근거 삼아, 각도에 흐터져 있는 활빈당들에게 지시와 명령을 내려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처음에는 토끼벼루패를 거느리고 합천 해인사를 들이 친 것은 틀림없이 길동이었다. 그리고, 함경 감영과 귀성도호부와 또 그 밖에 여러 군데에도, 길동이는 제가 직접 진두에 나서서 일을 지휘 하였던 듯 싶다. 그러나, 그 뒤로, 활빈당과 그 행수 홍길동이의 이름이 세상에 떨칠마큼 떨치게 되자, 길동이는 그 모사되는 조생원과 더부러 소굴에 들어 앉아 지휘만 하는 모양이다. 직접 진두에 나서는 일은 드믄 것 같았다. 우선 저번에 선산·상주·의성 세 고을에 한날 한시에 일어난 사건을 가지고 보자.
그 때도 분명히 길동이는 그 어느 한 곳에도 나타나지 않았었다. 곧, 선산에는 본래의 떡고개패가 그 두목의 지휘 아래 일을 하였고, 상주에는 본래의 풀고개패가, 또 의성에는 본래의 을고개원패가 각각 저의 두목의 지휘 아래 일을 한 것이라고 믿을 충분한 근거가 있다. 이번에 가어사가 되어 황해감사의 혼을 빼어 놓고, 조정을 농락한 것도 모르면 몰랐지, 정말 길동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여튼, 그가 이번에 영남으로 나려 온 것은, 아무래도 큰 성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는 이곳에서 홍길동에 관하여 실로 많은 지식을 얻었던 것이다. 길동이가 도적이 되기 전에 일년 넘어나 선산 고을에 두류하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는 곧, 가장 영리한 부하를 그곳으로 보냈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자세한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자신 한번 선산까지 갔다 왔다. 그가 가장 끗밖이었던 것은, 길동이가 시임이조판서 홍모의 서출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홉은 자기도 서울서, 홍판서의 자제 하나가 인물이 참으로 뛰어났는데, 다만 천비소생이라 아깝다는 소문을 들은 법 하였다.
길동이는 실로 무예에 통달하였다 한다. 칼 쓰기나 창 쓰기가나 어느 것이든 모다 능하되, 특히 활 재주에 이르러서는 당대에 짝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는 힘도 세었다. 그의 힘 센 것을 증거 세우는 일화가 한둘이 아니나, 그중에 하나를 들면, 일찍이 장ㅅ거리에서 큰 황소 한 마리가 무엇엔지 놀라서 미친 듯 이리 뛰고 저리 달리어, 사람이 두엇이나 상한 일이 있었는데 마침 길동이가 그곳을 지나다 이 광경을 보고 곧 달려 들어서 그 꼬리를 붓잡고 늘어지니까, 그렇게 미쳐 날뛰던 황소도, 다시는 꼼짝을 못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는 혹은 어느 정도의 풍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를 줄잡아 듣는다 하더라도 길동이가 하여튼간에 힘이 장사인 것만은 사실인 듯 싶다. 또 그 뿐이 아니다. 그는 무(武)에 만이 아니라 문(文)에도 능하였다. 고을 사람들은 모다 말하기를, 그는 노사숙유(老士宿儒)도 따르기 어려웁게 학식이 유여하다 한다. 하여간, 정녕코 범상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한 사람이 대적패의 괴수가 되었으니, 하는 것도 그렇듯 교묘하고 대답하고, 또 엄청날 밖에 없을 것이었다.
이홉은 선산에서 또 조생원에 관하여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길동이가 선산 나려 와 있는 동안에 가장 가까이 지냈었고 또 그와 한날 한시에 종적을 감추었다는 조생원도 들어보니 가장 만만치 않은 위인이었다. 그 조생원이 바로 활빈당의 버금가는 괴수요, 또 모사인 것이다.
‘그러나 조생원이고, 홍길동이고, 내손에는 영낙 없이 잡혔다!...’ 토표사 이홉은 입가에 가만한 웃음조차 띠우고, 몇 번인가 가장 자신 있이 고개를 끄덕렸다.
그에게는 그간, 고심참담한 보람이 있어, 오늘 길동이를 잡을 모든 계획이 서 있었던 것이다. 부하에게서 들어 온 정보도 그러하였거니와, 이홉 자신이 수탐하여 본 결과는 토끼벼루패가 이번에 서울로 올라 가는 경상감사의 봄물ㅅ짐을 중도에서 가로차려 한다는 사실이다. 봄물ㅅ짐은 지난 열아흐렛날 감영을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로서 닷세째 되는 날, 곧 오늘 밤의 숙소참이 바로 이곳 문경이다. 경상감사의 봄물ㅅ짐은 어마 어마하게 많았다. 짐짝이 무두 열둘, 따라서 짐꾼도 열두명인데, 이를 경호하는 군사는 그 삼갑절 되는 설흔여섰명이오, 영거하는 사람은, 감사의 식임이 가장 두터운 예방비장이다. 그것을 토끼벼루패는, 이 곳 문경에서 기어코 요정을 내--는 것이다. 그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이번 일을 위하여 길동이는 수하 졸개들을 거의 다 내다시피 하리라 한다.
지금쯤은 이 골을 안에 도적떼가 몇패로 나뉘어 들어 와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전례에 의하면, 그들의 소굴에는 홍길동이 와 조생원과 또 십여명의 졸개만이 남아 있어야만 옳았다. 이홉은 이 기회를 노린 것이다. 그래, 그는 오늘 미시까지 수하 군관들을 이곳 문경으로 모이라 하였다. 미시에 모여 다시 약속을 분명히 하고, 유시에 밥 먹고, 밤이 이슥하여 달 나오기를 기다리어 토끼벼루 적굴을 들이칠 작정이다.
그러나, 소문만 가지고 본다면, 길동이는 이홉 자기보다도 용력이 월등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과연 어떨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동안의 비상한 활동으로 하여, 길동이는 어느 틈엔가 전설 가운데의 인물이 되어 버렸다. 항간에 떠 도는 많은 이야기는 듣는 이 대중하여 들을 일이다. 정작 부닥드려 보면 실상은 그닥지도 않을지 모른다 더구나, 야반에 출기불의로 엄습한다면, 십중팔구는 공을 이루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홉은, 자기가 길동이만 맡고 보면, 조생원과 십여명 졸개쯤은 자기 수하의 열명 군관으로 능준히 해낼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믿고 어쩌고 부하들을 우선 모아 놓고나 볼 일이다. 미시는 말도 말고, 신시도 이미 지나고, 어림에는 아마도 유시가 가까운 모양인데 --을 사람들은 도무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대체 웬일이냐?...’ 사람은 못기다릴 것이다. 더구나 이것은 경우가 다르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만 초조하던 것이 ‘아니 이 자식들이 일을 낭패 시키지 않나?...’ 이제는 사뭇 울화가 치밀었다.
‘만약에 오늘 한번 때를 놓치고 보면, 다시 이런 기회를 만나기는 졸연치 않을 텐데...’
그의 이마에 내천ㅅ자가 한창 굵을 때, 밖에 여러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애들이 이제야 오나?...’ 이홉은 얼른 문 틈으로 밖을 내어다 보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웬, 나그네가 세명- 아마 지나다 술이라도 사 먹으러 들어 온 듯 싶다. 그는 실망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으나
“오서방 있나?”
하고, 주인을 찾는 소리에 응하여, 방문을 열고 내어다 본 이집 주인이
“어이구, 송두령이십니까?”
하고 허둥지둥 밖으로 나와서 맞아 들이는 눈치에, 이홉은 다시 문 틈에다 눈을 대었다. 셋 중에 그 중 나이 들어 보이는 자가 아마 송두령이라 불리운 인물인 것 같은데, 이 자가 쪽마루 앞에 앉아서 감발을 주르며, 가치 온 자 중에 나이 좀 젊은 것을 보고,
“너, 조막손이한테 가서, 포두령이 와 계시거든, 이따 가실 때 기별 좀 해 주십사구 그래라.”
분부를 한 다음에, 그제야 생각 난 듯이, 집안을 둘러 보다가 아렛방 퇴 앞에 신발이 놓인 것을 보고,
“누구 손님 있나?” 하고 주인을 돌아본다.
“네.”
“하나?”
“네.”
이홉은 혹시 저자들이 나려 와 보지나 않을까 하여 한 옆으로 밀처 놓았던 술상을 도루 앞으로 끌어 당기기까지 하였으나, 그자들은 소리없이 그대로 방으로 들어 가 버렸다. 송두령이라, 표두령이라... 두령 칭호가 있을 쩍에는 적당이 분명한데, 그 놈들을 이 집 주인 녀석은, 또 그렇듯 반색을 하여 맞아 들인다... ‘원, 저런 죽일 눔이 있나?...’ 아직 어둡도 않았는데, 이렇듯 주막에를 네활개치고 드나드는 도적도 도적이려니와, 듣는 사람이나 없으면 또 모를까, 아랫방에다 모르는 손을 들여놓고,
“어이구, 송두령이십니까?” 하고, 깍듯이 인사를 하는 주인놈이 더 죽일 놈이라고. 이홉이 혼자 방 속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을 때, 또 밖에서 발 소리가 들렸다. 다시 문 틈으로 내어다 보니, 키가 구척 같은 놈 다섯이 들어오는데,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목자들이 제일이 불량한 것이 갈데 없는 도적떼였다. “어서들 오슈. 추우시겠수.” 주인이 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방에 누구 있나?” 하나이 묻는 말에, 주인이 엄지손을 내어 보인다.
“저 방에는?” 또 하나이 아랫방을 턱으로 가르치고 묻는데, 그 말에 미처 대답하기 전에, 방안에서
“누가 아마 술 사먹으러 왔나부다. 내버려 두고 추운데 어서 들어들 오너라.”
하고 송두령이라는 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그들이 방으로 들어 간 뒤에 심부름 갔던 젊은 것이 돌아오고, 또 조곰 있다가 두명 다시 좀 동안이 떠 가지고 네명- 방안에 있는 자가 지금 도합 열네명인데, 주막 주인은 건넌방에서 나온 젊은 계집과 부엌에서 술상을 보느라고 한창 부산한 눈치다. 이홉은 도루 자리로 와 앉아서 혼자 생각이다. ‘저눔들이 적당인 것은 틀림 없는데, 그럼 오늘 밤에 일을 하러 나온 토끼벼루팬가?...송두령이라 송두령. 옳지, 옳지! 본래 풀고개패의 괴수 송가라드니, 그눔인게로구나’ 그는 연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아까, 표두령이라나 하는 자에게로 사람을 보내던 것을 보면, 이놈들이 여러패로 나뉘어 나온게 분명한데... 대체 몇눔이나 풀려 나왔누? 그야 지금 여기 앉아서 알아 낸달 도리는 없는게지만, 어찌면 지금쯤 주막마다 웅시글 득시글하는게 모두가 토끼벼루팰지두 모른다.’
이홉은 자기가 생각하였던 바 보다도, 엄청나게 그들이 대담한데 놀랐다. 번연히 아렛방에 사람이 있는줄 알면서도 대평으로들 주고 받는 수작을 좀 보자. 도적들도 도적이려니와, 주인놈은 또 어찌나?- 본래, 적굴 가까이서 사는 사람들이란, 으레 도적놈들에게 쥐어 지내는 것이지만, 이집주인의 태도를 보면, 단순히 쥐어 지내느라 마지 못해서 그런게 아니다. 그것은 정녕, 반가운 손님을 접대하는 태도였다.
‘이집 주인눔 두, 다아 한동아린지 모르겠다...’ 허지만 이집 주인이 적당과 한패고 아닌 것은 당장,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일반 양민들 사이에서의 활빈당의 인끼였다. 원래가 활빈당은 심상한 도적이 아니다. 이 도적은 결코 백성들의 물건을 뺏지 않는다. 뺏기는세레, 도리어 갖다주었다. 이 까닭으로 하여, 일반 양민들은, 활빈당을 결코, 대적떼라 하여 끄리거나 두려워 하지 않는다. 도리어 자기들이 그의 덕을 보고 있다 하여 고마워 하고 긴히 아는 마음이 많은 모양이다.
‘그래, 저놈들도 구태어 본색을 감추려 않고ㅡ 이렇게 네활개를 치고 주막에를 드나드는게다...’ 그들이 거리로 나와 돌아 다녀도, 누구라 한 사람 이를 관가에 고해 바치는 자가 없다는 말은, 그도 일찍이 들은 적이 있거니와, 그것은 정녕 사실이었다. 관가에 고해 바치는 것이 다 무엇이냐?- 그들은 도적들의 동정을 결코 관가에 고하지 않는 대신에 관가의 소식이라면 무엇이고 이것을 적굴에 알려 주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하여, 이제까지, 아주 하잘것없는 졸개하나, 관차(官差)의 손에 걸려들지 않은 것이다.
또 그뿐이 아니다. 고을의 장교나 사령, 군노의 무리들도, 도적 잡는데는 꼬물 만큼도 마음이 없었다. 정말 그들이, 꼭 잡으려고만 든다 하면 아무러기로 졸개 몇 명쯤이야 잡지 못할 것이겠느냐?- 그러나 그들은 잡으러 들지 않었다. 당장 잡는 것은 좋다. 허지만 뒤가 겁이 난다. 서뿌른 딧을 하여, 한번 활빈당의 노여움을 사고 볼 말이면, 자기는 이 세상에서는 다 산 사람으로 쳐 버릴 밖에 없는 것이다.
설사 죽기까지는 않더라도, 백성들에게 이웃사람들에게 미움은 흠빡 받고 말 것이었다. ‘그럼, 나도 길동이를 만약 잡고 보면, 왼 백성들의 미움은 혼자 도맡아 받을지 모르겠다...’하고 생각하니, 이롭은 절로 쓴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아니다! 무지한 백성들이야 무어라 하든 길동이로 말하면 나라의 법도를 어지러이 하는 도적이니 역시, 잡아 없애서 천하를 편안히 하여야 옳을 일이다...’ 활빈당, 이름은 좋다. 그러나 역시 도적떼임에는 아무 다름이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활빈당을 가리쳐 의적이라고 말하는 이가 많은 모양이나, 대체 의적이란 무엇이냐 말이다. 도적적(賊)자와 같은 흉악한 글자 위에다 어떻게 의로울 의(義)자와 같은 아름다운 글자를 붙일 수가 있다는 말인가?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더러, 저이들도 활빈당의 덕을 본다 해서, 이 도적떼를 좋게 고맙게 알고 있나 보다마는 그것은 어림도 없는 수작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길동이는, 토끼벼루 저의 소굴에다, 규모는 적으나 바로 아방궁(阿房宮)을 꾸며 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좌우에 거느리고 있는 미녀가 수십명, 매일 연락(宴樂)은 끊일 길 없고..., 그 생활이 실로 왕자가 부러웁지 않으리라 한다. ‘대체 무엇이 의적이고, 무엇이 활빈당이란 말이냐? 남의 재물, 나라의 재물을 도적질하여, 제 마음것 제 욕심것 쓸만큼 다 쓰고, 약간 남는 것을 그저 말막음으로 백성들에게 훝어 주어 헛된 이름과 헛된 생색만 몇곱절을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어떻게든 길동이는 잡아 없애야만 하느니라고, 이홉이 혼자 연방 고개를 끄덕이고 앉었는데 문득 밖에서 고기를 구는 냄새가 코에 마치어 다시 문 틈으로 내어다 보니, ‘원 저런 죽일 놈이 세상에 있나?...’ 자기가 아까 술 달랄 때에는
“안주가 아무 것두 없어서...”
하고 깍두기 한보지기에 콩나물 한접시만 상에 놓아 들여 보내더니, 없다던 안주가 갑자기 어대서 생겼는지 주인은 봉당 앞에다 화로를 내어다 놓고 연해 고기 굽는 냄새에 아랫방 손님 비위를 뒤집어 놓는다. 허지만 지금, 그게 문제겠느냐?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좋을꼬?...’ 이홉은 눈을 감고 그리였다. ‘눈 앞에 대적떼를 버언히 보고 앉었으며 그걸 그대로 버려 둔다?...’ 물론, 애초의 그의 작정은 그러 하였다. 활빈당의 몇 명 두령이나 또는 여간 몇십명의 두목 졸개 따위는 그의 안중에 없었다.
그것들은 다 내버려 두고 그의 욕심은 바로 소굴을 찾아 들어 가서, 정작 길동이를 잡아 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도 이제는 십상팔구는 틀어졌다고 할 밖에 없다. 맞추어 놓은 부하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를 않는다. ‘정녕 무슨 일이 생겼지. 무슨 일이 생겼어...’ 대체 무슨 일이 생겨서 오지들을 않는 것인지, 또는 오지들을 못하는 것인지는 알길 없으나 하여튼 부하 한명 데리지 않고, 자기 단신으로는 적굴을 잦아 들어 갈 엄두가 나지 않었다.
‘만약, 좀 더 기다려도 종내 이놈들이 오지 않는다면 어쩐다?...’ 이홉이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앉었는데, 문득 밖에 인기척이 났다. 곧 문 틈으로 내어다 보니, 뜻밖에도 장교 세명이 앞장을 서고, 뒤를 따라 사령 군노 육칠명이 제일이 몽치를 들고 꾸역 꾸역 들어 선다.
‘얘, 이것 봐라!’ 마치 있을 수 없는 일을 보는 것만 같어서, 이홉은 크나큰 기대와 흥미를 가지고, 그들의 동정을 살치었던 것이나, 그것은 어림도 없는 수작이었다. 맨 앞을 선 장교가 봉당 앞으로 가더니, 입을 열어 하는 소리는 뜻 밖에도,
“송두령 계십니까?” 이었다.
“웨 그러니?” 안에서 말 소리가 들렸다.
“표두령께서 곧 그리로 나오시랍니다.”
“이두령, 장두령은 지금 어데 계시냐?”
“두분께서는 동자원(桐子院)으로 가셨습니다.”
“알었다. 너이들은 그럼, 저리루들 가겠구나?”
“저이들이야 그리 가얍지요.”
“그럼 어서 가거라. 오늘 일은, 너이들이 정신 차려 해야만 낭패가 없다.”
“네. 알겠습니다.”
이상한 복색 한것들이 밖으로 나간 뒤에 이홉은 어이가 없었다. 그야, 가어사까지 나서, 관찰사를 파직도 기키는 놈들이다. 장교 복색은 못할 것이며 사령 군노는 못되어 볼 것이냐?- 이치는 그러 하되, 이렇듯 직접 눈으로 보고나니, 이자들이 너무나 방약무인한데, 이홉은 참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너이놈들이 오늘 밤에 일을 어떻게 꾸미려는지는 내 다 알었다!...’ 하고 한번 코웃음을 쳤다.
이번 경상감사 봉물짐에는, 예방비장 이하로, 마흔여덟명이나 사람이 딸려 있는 것이나, 물론 그들만으로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숙소 참 숙소참에는 그 고을에서 관차를 내어, 이를 경호하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도처에 수족이 깔려 있고, 이목이 박혀 있는 활빈당은 물론, 이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때, 정말 장교와 사령 군노들은, 귀신도 모르게 어데다 잡아 가두어 놓고, 저이들이 그 복색을 빼앗어 입은 것이 틀리지 않을께다. 오늘밤, 봉물짐을 뺏으려는 놈은, 그애 물론 도독놈들이려니와, 이를 경호하여 준답시고 본관이 내어 보낸 군사놈들도 실상은 같은 도독놈이라...안팎이 손이 맞아서 일은 잘 될 것이었다.
‘따는 활빈당들이 꾸밀만한 놀음이다!...’ 이홉이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고 앉었을 때, 안방 문이 열리며, 그자들이 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동안 부산한 다음에, 모두 밖으로 나가 버렸다. ‘오-냐. 이놈들 오늘 밤에 어데 보자!...’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별렀다. 어차피 오늘밤 토기벼루 적굴을 들이치는 것은 틀렸으니, 길동이 잡는 것은 후일로 밀고, 이곳 문경에서 경상감사의 봉물짐이나 무사하도록 지켜 주자-- 이홉은 그렇게 마음에 작정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자면 대체 어떻게 하여야 좋다?...’ 먼저 이곳 현감은 찾어보아야 옳은가 또는 봉물짐이 묵는 숙소로 바로 가서, 예방비장에게 지휘를 내릴 것인가? 그러나 활빈당의 이목이 도처에 --드기고 있으니, 우리 편에서 적당한 조치를 하기 전에, 기밀이 도적에게 먼저 통할 엄--가 있다. 그 중 좋기는 애방비장이나 허감고는 아무 연락 말고, 자기는 자기대로 떨어져 형세를 관망하다가 역시 출기불의로 내닫는 것인데, 그것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말이지 자기 혼자서는 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고?...’ 그가 잠깐 주견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밖에 인기척이 나더니, 누가 안으로 들어와서 주인과 한동안 무엇이라 수근거리는 눈치다. 이홉은 다시 문 틈으로 내어다 보았다. 해가 진지 오래라, 얼굴은 자세 알아볼 수가 없으나, 하여튼 의관을 번듯하게 차려 입은 젊은이었다. 조곰 있더니 주인이 방문 밖에 와서
“나으리.” 하고 부른다.
이홉은 은근히 속으로 놀랐으나, 그러한 내색은 보이지 않고 문을 열고 내어다 보며,
“나, 불렀오?” 하고 물었다.
“네. 나으리.”
“아-니, 갑자기 나으리가 웬 일이오?”
“소인이 다 알고 있습니다. 서울서 토포사로 나려 옴실 이대장 나으리십지오.”
“날더러 이대장이라구?...”
“네... 지금 토끼벼루서 사람이 왔습니다.”
이홉이 어리둥절하여 잠깐 말을 못하고 있을 때, 주인의 뒤에 섰던 젊은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소인 문안 드립니다.” 하고 허리를 굽신 한 다음에.
“토끼벼루서 홍대장 편지를 가지고 온 놈이올시다.” 하고, 품으로서 한봉 서찰을 끄내서 두손으로 바친다.
“홍대장 편지?...”
이홉은 한번 그렇게 뇌었으나, 자기의 본색을 그 이상 감출 것은 그만 단념하지 않을수 없었다. 저이들은 벌서 다 알고서 하는 놀음인데, 자기만 즉시 딴전을 하여 본댓자 결국은 모양만 흉할 듯 싶었기 때문이다. 편지 사연은 다음과 같었다.
활빈당 행수 홍길동은 삼가 글월을 영남 토포사 이대장 휘하에 드리나이다. 그간, 활빈당 종적을 수탐하시느나, 얼마나 신고를 겪으셨나이까, 한번 찾아 뵈옵고 위로 말씀 올리고싶었사오나, 겨를리 없어 뜻 같지 못하였나이다. 이제 풍편에 들으매, 오늘밤 삼경에 두지로 왕림하실 의향이 계씨다 하옵기로, 대강 행차 기구를 마련하여 보내 올리는 바로소이다. 경상감영의 봉물ㅅ조가, 혹 그금하실지도 모르오나, 이곳에 오시면 내일 새벽 안으로 소상히 아실 수 있사오니, 바로 투지로 왕림하옵소서.
읽는 동안에 이홉은 몇 번인가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하였다. 어둑한 방 안에 불빛이 없었기가 다행이다.
읽고 나자 그는 속으로 생각하였다. ‘무서운 놈들이다. 대체, 어떻게 모든 것을 이처럼 알고 있단 말이냐? 예서 내가 안간다 앙탈을 하였다가는, 도리어 무슨 욕을 당할지 모르겠다. 설혹 욕은 안당한다더라도 비웃음은 면할 도리가 없을께다. 오히려 제가 청하는대로 한번 가 보는 것이 마땅하고 떳떳할 것이다.
편지 속에서 이놈이 제법 빈정거리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제가 악의는 없는 것 같다. 저도 비록 도적이라고는 하나, 또한 일대의 인물이다. 나를 욕 보이려 오라는 것은 아닐께다. 제가 만약, 나를 욕 보이고 싶었다면, 이제까지도 기회야 얼마든 있었을 것이 아니냐?...’ 그는 마침내, 마음을 결단하고, 편지 가지고 온 자에게 물었다.
“나, 탈 것을 가지고 왔다고?”
“네.”
“그럼 가자.”
이리 하여, 토포사 이홉은, 자기가 본래 들이치려고 벼르던 토끼벼루 적굴에를, 이렇듯 적괴(賊魁)의 청찰을 받고 찾어 가게 된 것이다...
14. 토끼벼루에서
토포사 이홉이 토끼벼루 적굴에 들어 와 유한지도 그 사이 어느 틈에 보름이 지났다. 그 동안 그는 편히 먹고, 편히 자고, 또 편히 놀았다. 혹은 길동이와 함께, 사냥질도 다녔다. 혹은 조생원과 더부러 바둑도 두었다. 그리고 눈 나리는 밤은, 그들과 더부러 닭 울 녘까지 담화로 때를 보내기도 하였다. 보기에 지극히 한가로운 그 날 그 날이었다.
그러나, 마음까지 한가로울 수는 없었다. 그의 마음은 편안치 않았다. 편한 것이 다 무엇이냐? 그의 마음은, 지금 지극히 괴로웠다. 그는 장차 어찌 하여야 좋을지를 몰랐던 것이다. 본의는 아니면서도 적굴에서 이렇듯 과셰까지 하고, 그대로 눌러 앉아서 헛되이 날을 보내고 있는 것도 실상은 자기가 앞으로 나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달 말미도 이제 앞으로 나달 밖에 안남었다. 지금쯤은 길동이를 잡아 가지고 서울로 올라가야만 할 노릇인데...’
이홉은 저모르게 가만한 한숨을 토한다. 만약, 그로서 하러만 든다면, 길동이를 사로잡지는 못하더라도, 죽일 수는 있었다. 그가 이곳으로 들어 오면 밤부터, 길동이는 그를 자기 처소로 맞아 들여, 먹기도 가치 먹고, 자기도 가치 잔다. 옆방에 얘녀석 하나이 상직잠을 자는 외에, 이 집에는 달리 사람이라 없는 것이다. 이홉으로서 그러려만 든다면, 가창 손쉬웁게 길동이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다.
이홉은 아무리 생각하여 보아도, 길동이란 인물을 알 수가 없었다. 서로 뜻이 맞으면 일면(一面)이 여구(如舊)라지만 자기와 길동이 사이가 그렇듯 하루 이를에 뜻이 맞을 수도 없는 일이다. 누가 무어라든 길동이는 대당의 괴수요, 자기는 그를 잡으러 나려 온 토포사다. 그 접대가 정중한 것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전연 초면인 자기를 ----- 더구나 토포사로 나려온 자기를 십년지기 같이 대하며, 털끝만치도 경계하는 법이 없이, 한 방에서 자리를 나란히 하여 자기까지 하는데는 역시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대체 제가 무엇을 믿고 그러는 것이냐?...’ 처음으로 길동이와 단둘이 한 방에서 자던 날 밤에, 이홉은 좀처럼 잠 들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잠 들면 길동이가 자기를 어찌하지나 않을까 하는 따위의 염려로 하여서가 아니다. 처음 만난 토포사와 단 둘이 한방에 누어 그렇듯 무심히 잠 들수 있는 그 인물이, 마음에 너무나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야, 이곳이 저의 소굴이기는 하다. 토포사인 자기는 혼잣몸인데, 그에게는 백여명 졸개가 있다. 그러나 깊은 밤, 단둘이만 자는 방 안에 대체 무슨 일이 있을줄을 아느냐? 옆방에서 자는 애녀석은 아직 열대여섯 밖에 안된 어린 아이였고, 딴 채에서들 자는 졸개의 힘은 급한 경우에 빌어본들 도리가 없다. 그러하건만, 길동이는 머리맡 바람 벽에다 한자루 환도까지 걸어 놓고 자는 것이다.
‘죽이러만 들면, 나는 언제고 길동이를 죽일 수 있다!...’
그는 가끔 그러한 생각을 하여 본다. 그러면서도 그는 길동이를 죽이지 못하였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물론, 길동이를 죽이고,, 자기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길동이를 죽이기 위하여는, 자기도 반드시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한다. 그러면, 이홉은, 자기의 목숨이 아깝기 때문에 감히 하수(下手)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만약 길동이를 죽여서 이 나라의 화근을 없이 할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는 한번 죽엄도 사양하지 않겠다.
그러나 길동이를 죽이는 것이 과연 나라의 화근을 없이 할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는 한번 죽엄도 사양하지 않겠다. 그러나 길동이를 죽이는 것이 과연 나라의 화근을 없이 하는 도리일까? 이제 와서, 그에게는 도저히 그렇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일찍이 길동이를 몹시 미워 하였었다. 남에게 뛰어나는 재주를 가지고, 구태어 도적이 되지 않아도 좋은 놈이 이렇듯 나라를 어지러웁게 한다고 심히 괫심하게 생각하였었다.
도대체 활빈당이란 무엇이냐? 그러한 한낱 아름다운 이름으로 천하를 속이고, 저는 저대로 외로웁지 않은 영화를 누린다 하여, 천참만육할 죄인으로만 여겨 왔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들 들어와 보니 모든 것이 자기가 일즉 생각하였던 바와는 너무나 달랐다. 길동이는 결코 의로웁지 않은 재물로 영화를 누리거나 그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방궁일란 다 무엇이냐? 이 토끼벼루 안에는, 한 채의 기와집도 없었다. 길동이가 조생원과 더부러 여러 두령들을 데리고 일을 의론하는 도회청이라는 것도, 집만 좀 클 따름이지, 역시 초가요, 그 밖에는 모두가 일매지게 문자 그대로의 삼간두옥이다.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도 이름 없는 졸개와 똑같은 적은 초가집 속에서 기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입는 것도 지극히 검소하였다. 미녀 수십명이란 대체 어데서 나온 말인지를 모르겠다. 두령과 졸개들은, 대부분이 계집들이 있었으나, 길동이와 조생원은 홀애비 살림이었다. 아 이녀석이 하나씩 그들 앞에 있어 시중을 둘 따름이다. 이제까지 관가를 들이쳐서 빼앗은 재물은 거의 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분명하였다.
전번에 선산·상주·의성 세 고을의 경우를 가지고 보더라도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 때, 활빈당은 마지막 쌀 한섬, 마지막 돈 한꾸러미까지도, 말끔 백성들에게 내어 주고, 올 때에 빈 몸이던 그들은 돌아 갈 때도 가지고 간 것이 없었다.
조생원의 말을 들어 보면, 그것은 이토끼벼루패만이 그러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는 각 처에 있는 활빈당이 모다 한결 같다고 그런다. 그것은 이홉 자기도 잘 알고 있는 일이거니와, 활빈당이 노리고 있는 것은, 오직 탐관오리들이 부정하게 모은 재물에만 한한다. 그들은 이제까지에, 혹은 고을 원님을 잡아 내려다 볼기도 치고, 필요한 경우에는 곳간 속에다 가두어도 놓고, 또는 삼문출도를 하여, 감사삿도의 혼구녕을 빼어 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렇듯 욕을 좀 보일 그뿐이다. 그들은 까닭 없이 인명을 해친 일이 없다. 팔도에서 그 동안, 활빈당 손에 목숨을 잃은 자가 도합 십여명인데, 그것은 물계를 모르고 서뿔리 덤벼 물다가 그런 것이다. 항거하지 않는 사람을 무단히 해친자는, 반드시 제 목숨으로써 갚아야만 한다는 것이, 행수 홍길동이 모든 활빈당원에게 가장 엄숙하게 내인 명령이었다. 활빈당이 생긴 뒤로, 팔도 각읍에 좀도적들은 현저히 줄었다. 전에 좀도적들이 성하였을 때는, 행인은, 으레 보ㅅ다리를 빼앗기고, 장꾼은 번번이 주머니를 털리어, 한 때는 이곳 저곳에 행려가 끊인 일조차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길에서 작경하는 자를 별로 못보겠다. 양민들은 마음 놓고 길에 나설 수 있었고, 또 밤에도 잠자리가 편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좀도적들이 모다 도적의 때를 씻고 양민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대개가 활빈당에 들어 도리어 대적들이 된 것이다. 대적들이 되어 한결같이 부정한 재물만 노렸기 때문에 죄 없는 백성들은 적환에 울지 않아도 좋았던 것이다. 활빈당을 끄리고 두려워 하는 자는 모두가 옳지 않은 짓을 한 관원의 무리들이다. 저이가 어굴하게 빼앗긴 재물을 도루 찾아 주는 까닭에, 백성들은 활빈당을 좋아 하고 또 고마워 하였다.
“활빈당이 사리사욕으로 하여 움지기는 것이 아님은 잘 알았오. 그러나 어떠한 동기로서든지, 남의 재물을 빼앗는 다는 것은 국법을 범하는 것이니, 곧, 나라를 어지러히 하는 일이 아니겠오? 이것은 아모래도 옳은 일이라고는 못하리다.”
이것은 토포사 이홉이, 이곳 토끼벼루에 들어 온지 사흘째 되는 날, 조생원과 단 둘이 앉았을 때 한마디 비난한 말이다. 그 말의 대한 조생원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영감, 그게 무슨 말씀이오? 영감은 우리 활빈당이 나라를 어지럽힌다고 하시지만, 그것은 옳지 않소이다. 영감은 나라의 록(祿)을 자시는 몸이오, 또 직책이 도적을 잡는데 있을 시기 때문에, 혹은 우리와는 세상을 보시는 눈이 다르신지 모르겠오. 그러나, 지금, 만백성의 어버이라는 인군이 전고에 없이 황음무도 하고 지방관원들이 개개이 탐탁하여, 백성들이 천에 하나도 살아 갈 수가 없는 것은, 영감도 아마, 아니라고 고집하지 못하시리다. 도적이, 본래, 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관원과 양반들 등살에 배겨 나다 못하면, 착한 백성들도, 마침내는 흉악한 도적놈이 되고 마는 겝니다. 도적들이 되어 이번에는 양민들을 괴롭게 굴지요. 우리 활빈당은 이러한 가련한 자들에게 같은 도적질을 하여도 옳고 바르게 하는 도리를 가르켜 주었소이다. 얼른 말하자면 우리 활빈당은 나라를 어지럽히기는세례, 도리어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으려 하는 것이외다. 우리가 그간 욕을 보인 것은 모두가 가장 수렴(收斂)의 심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하늘에까지 사모친 무리들 뿐이오. 우리들에게 욕을 본 자들은, 그 뒤에 나라에서 모다 혹은 혁파(革罷)하고, 혹은 체차(遞差)하고 하였오마는, 본래 우리 나라의 정사만 바르고 볼 말이면 어찌 그런 자들을 우리 활빈당에게 욕 볼 때까지 두어 둘 일이겠오? 가진 못된 짓을 다 하는 관원들이 도처에 그대로 있고, 또 백성의 고혈을 긁어서 모은 부정한 재물이 그들 수중에 남아 잇는 동안은 우리 활빈당은, 이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오. 영감은 그래도 우리 활빈당이 부지럾이 나라를 어지러이 한다고 꾸지람 하시겠오?”
지금 인군이 너무나 무도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정사가 한 것 분란하여, 백성이 이루, 그 괴로움에 견듸어 나지 못한다는 것은, 이홉 자기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 그는, ‘이 사람이 하는 말도 또한, 고이치 않은 수작이지...’ 하고 그렇게 생각하였던 까닭에, 그는 구태어 다시 두 번 활빈당을 나물하려도는 안하였다. ‘그러나, 나는 대체 어떻게 하여야 좋으냐?...’ 그것을 생각하면, 이롭은 심히 답답하였다.
길동이와 조생원은 자기더러 함께 있자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 활빈당의 하는 일이 썩 글르지는 앉다고 한다더라도, 역시 적굴에서 몸을 늙힐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렇듯, 이 곳을 나가기는 하여야 한다...’ 마음은 조급하게 그처럼 생각을 하면서도, 좀처럼 나가지를 못하는 그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길동이나 조생원이 그를 붓잡고 못가게 하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만 그러려 든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을 떠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곳을 나가 가지고, 나는 나는 대체 어쩌겠단 말인고?’ 자기가 빈 손으로 서울로 돌아 갈 때, 길동이 못잡은 죄는, 반드시 저의 목숨을 대신 바쳐야만 된다. 요행으로 혹, 목숨이 부지 한다 하더라도, 어제 원악도(遠惡島)에 귀양살이는 도저히 면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진퇴유곡(進退維谷)이란 바로 그를 두고 이른 말이었다. 이리하여, 그가 좀처럼 마음을 결한다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저녁에 길동이는 그를 보고 한마디 하였다.
“영감. 양근 땅에 용문산이라고 있지요. 거기 가 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아직 가 본 일이 없오. 그건 웨 묻소?”
“그럼, 이번이 초행이 되시는군.”
“아-니, 이번 초행이라니?...”
이홉이 무슨 뜻임을 몰라 잠깐 길동이의 얼굴만 치어다 보려니까 그는 심상한 태도로,
“내행(內行)은 어제쯤 그리로 틀어 가셨을 것이외다. 영감도 수일내로, 가 보셔야 않겠오.”
이홉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 흡사 얼 빠진 사람처럼 입을 딱 버린채 잠시는 말이 안나왔다. 그러나 이미 그렇게 된 일을, 이제 어찌 한달 도리가 없다. 그로서 이틀 지나, 토포사 이홉은 활빈당 두령의 한사람이 되어 용문산패를 거느리기 위하여 토끼벼루를 떠났다.
그를 배행하는 졸개가 열명-. 그들은 본래 우포청의 포도군관으로, 대장 이홉을 따라 영남으로 나려 왔다가 문경에서 모이기로 된 날 아침에, 모다 활빈당에게 잡혀서 저이들 대장보다 한 걸음 먼저 토끼벼루에 들어와 있던 무리다.
15. 종루(鐘樓)의 복문(複文)
연산의 황음은 날로 더 하여 갔다. 운평(運平)이라, 계평(繼平)이라, 속홍(續紅)이라, 흥청(興淸)이라, 허다한 창녀들을 모아 놓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채청사(採靑使) 채홍사(採紅使)를 각도로 나려 보내, 넓리 민간에서 처녀들을 뽑아 올린 것은, 앞서도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의 음탕하기 짝이 없는 마음은, 결코 족할 줄을 몰랐다.
그는, 또 때때로 내연을 베풀고, 사대부의 아낙들을 불러 드렸다. 내연에 참예하는 외명부들은, 반드시 그 성명을 옷깃에다 적어 놓기로 마련이다. 연산은 그들 가운데서 남달리 자색 있는 부녀를 택하여, 그윽한 방 안으로 끌어 들여서 욕을 보였다. 부끄럼을 아는 부인은 혹 목을 매어 죽기도 하였으나, 모두가 그리하지는 못하였다.
그 중에는 저의 서방과 자식까지도 잊어 버리고, 언제까지나 궁중에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계집조차 있었다. 연산은 나날이 이렇듯 추잡스러운 소문을 퍼뜨리며 또 한편, 무용(無用)한 토목(土木)을 일으키기에 골몰이었다.
장의동(葬義洞)에다 이궁(離宮). 탕춘대(蕩春臺). 수각(水閣). 석조(石槽). 서교(西郊)에다 연히궁(衍禧宮). 장단 석벽(長湍 石壁)에다 이궁(離宮). 그리고 경복궁에서는 서총대(瑞葱臺)역사...
선왕 성종 때 일이다. 후원에 파 한뿌리가 났다. 땅에서 파가 나는게 고이할 것 조곰도 없는 일이나, 이것은 별나게도 한뿌리에 아홉가지다. 선왕은 이를 서총(瑞葱)-, 상서로운 파라 하여, 돌을 쌓아 가꾸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상서로운 파가 못되었다. 연산은 이 곳에다 대(臺)를 쌓고, 큰 못을 팠다. 물론 술 먹고 놀이 할 곳이다.
높이가 십여척. 넓기는 사람 천명이 함께 앉을만한데, 돌 난간을 누르고, 거기다 용(龍)을 아로새겼다. 이 대의 이름이, 곧 서총대(瑞葱臺)다. 서총대 역사에 하삼도 백성들이 죽어났다. 역사를 위하여 있는 이는 있는대로, 없는 이는 없는대로 부역을 나와야 하고, 무명을 바쳐야 하였다.
그것도 한두 차례 바치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나종에는 바칠 무명이 없다. 백성들은 마침내 옷에 군 솜을 끄내서 다시 짜아 바쳤다. 이 무명은 유난히 빛이 검고, 척이 짧았다. 후세에 품질이 낮은 무명을 서총대무명이라 일컸는 것은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다...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은, 매양, 남의 공론을 두려워 한다.
연산은 관원들이 서로 찾아 다니는 것을 금하였다. 얼마 뒤에, 그는 다시 영을 내려 관원들을 저의 부모와 형제 이외에는 서로 찾지 못하느니라 하였다. 여럿이 만나면 자연 말들이 많다. 흖이 국사(國事)를 비방하는 것도 으레 그러한 자리다. 그것을 디 무도한 인군은 마음에 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내라면 내고 죽으라면 또한 죽을 밖에 없는 백성들도 언제까지나 그대로 벙어리 행세만 할 수는 없었다. 어느 날 서울 한복판 종두 기둥에 한강 방문이 붙었다. 무도한 인군을 죽이는 도리는, 자고로, 그 예가 있는 것이니, 모든 백성은 우리 의병(義兵)을 따르는 거라-하는 것이다. 물론 붙인 사람의 이름은 씨어 있지 않았다. 종루 기둥에 발칙스런 방문이 붙었다는 말을 전하여 듣자, 연산은 펄펄 뛰었다. 그는 속으로, 이는 필시 유생(儒生)이나 집 헐린 자의 한 짓이라 하여 곧, 그들을 잡아 들이라 하여 국문(鞠問)하였다.
그러나 모다를 애매하다고 발명한다. 연산은, 그들을 옥에다 내리고, 다시 상(嘗)을 걸어 범인을 잡아 들이게 하였다. 그는 이제까지 두 번 사화에 많은 선비들을 죽였다. 또 이 나라의 최고학부인 성균관으로부터 학생들을 모조리 내어 쫓고, 그 곳을 음탕한 놀이터로 만들어 버렸다. 그는, 또, 도성 안팎에 자기가 놀러 다닐만한 곳에는 모조리 금표(禁標)를 세웠다. 그리고, 그 안에 든 민가는 이를, 모조리 헐어 버리고, 살던 백성들을 밖으로 몰아 내었다.
연산이 중루에 방이 붙었다고 듣자, 곧 유생과 집 헐린 자에게 혐의를 둔 것은 이 까닭이다. 그러나, 범인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애매한 사람들이, 많이 포교를 손에 걸리어, 악독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아모리 형벌이 독하여도, 사람들은 좀처럼 제가 하였노라! 하고 불지 않았다. 다른 내용과도 달라서 이번 방은, 대역부도(大逆不道)-, 곧, 죽을 죄에 해당하였기 때문이다.
진범은 나오지 않은채, 좌우포청의 남간(南間)·북간(北間)이, 이들 혐의자로 하여 가득 찼을 때 뜻밖에도, 똑같은 내용의 방이 이번에는 종루 기둥에만이 아니라, 사대문에까지 일제이 붙었다. 그리고 이번일에는 뚜렷하게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 서명이 있었다.
“무어? 홍길동이?” 하고, 연산은 펄쩍! 뛰었다.
“이 놈은 벌서 잡아 없앤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대로 두어 두었드란 말이냐? 좌우포장은 무엇을 하며, 팔도 감사는 등신만 남았느냐?”
그는 홍길동이를 잡기 위하여, 마침내 신하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하고, 만조백관을 정전(正殿)으로 불러 들였다. 이것은, 그 사이, 상참(常參) 조참(朝參)을 모다 폐하여 오던 그로서는, 오래 없던 일이다. 이 날, 이들 군신간에 대체, 어떠한 의론이 있었던가? 이 대문은, ‘고본 홍길동전’에도, 사실을 비교적 충실하게 기술하여 놓았기로, 그것을 상이 크게 근심하사, 좌우를 돌아 보시며 물어 가로사대
“이 놈이 아마도 사람은 아니오, 귀신의 작란이니, 조신 중, 누가 그 근본을 짐작하리오?”
한 사람이 나와 아뢰여 가로되,
“홍길동은 전 이조판서 홍모의 서자요, 병조좌랑 홍인형의 서제오니, 이제, 그 부자를 부르사 천문 하옵시면 자연 아르실가 하나이다.”
상이 더욱 진로하사 가로사대, “이런 말을 이제이 하는다?”
하시고, 즉시 홍모를 금부에 잡아 가두고, 먼저 인형을 잡아 들여 친국하실새, 천위 진로 하사, 서안을 쳐 가로사대,
“길동이란 도적이 너의 서제라 하니, 어찌 금단치 아니 하고 그저 두어, 국가의 대환이 되게 하느뇨? 네 만일, 잡아 들이지 아니하면, 너의 부자의 충성을 돌아 보지 아니리니, 빨리 잡아 들여 나의 근심을 덜게 하라.”
하시니, 인형이 황고하여, 갓을 벗고, 머리를 조아 가온로되,
“신의 천한 아우 있어, 일즈기 사람을 죽이고 망명도주 하온지 수년이 지나오되, 그 종적을 아옵지 못하와, 신의 늙은 아비, 일로 인하여 신병이 침중하와, 명재경각이온중, 길동이 무도불칙하오므로 성상께 근심을 끼치오니, 신의 죄 만사무석이오나, 바라옵건대 전하는 하해지택을 드리옵서, 신의 아비 죄를 사하사 집에 돌아 가 조병케 하옵시면, 신이 죽기로 서 길동을 잡아, 신의 부자의 죄를 ----하나이다.”
상이 듣기를 마치시고 천심이 감동하사 즉시 홍모를 사하시고, 인형으로 경상감사를 제수하사 가로사대,
“경이 만일 감사의 기구 없으면 길동을 잡지 못할 것이라. 일년 한을 정하여 주나니, 수이 잡아 들이라.”
하시니, 인형이 백배사은하고, 인하여 하직하며 즉일 발행하여 감영에 도임하고, 각읍에 방을 붙이니, 이는 길동을 달래는 방이라, 그 글에 하였으되,
“사람이 세상에 나매 오륜이 으뜸이오. 오륜이 있으매 인의예지 분명하거능, 이를 아지 못하고 군부의 명을 거역하여 불충불효 되면 어찌 세상에 용납하리오. 우리 아우 길동은 이런 일을 알 것이니, 수사로 형을 찾아와 사로잡히라. 부친이 너로 말미아마 병입골수 하시고, 성상이 크게 근심하시니 네 죄악이 자못 큰지라, 이러므로 나를 특별히 도백을 제수하사 너를 잡아 들이라 하시니, 만일 잡지 못하면, 우리 홍문의 투대 청덕이 일조에 멸하리니, 어찌 슬프지 아니리오. 바라나니, 아우 길동은 이를 생각하여 일즉 자현하면, 너의 죄도 덜릴 것이오. 일문을 보존하리니, 너는 만번 생각하여 자현하라.”
하였더라. 감사 이 방을 각읍에 붙이고 공사를 전폐하여 길동이 자현하기만 기두르드니 일일은 한 소년이 나귀를 타고, 하인 수십명을 거느리고 원문 밖에 와 뵈음을 청한대, 감사 들어오라 하니, 그 소년이 당상에 올라 절하여 보이거늘, 감사 눈을 들어 보니, 때로 기다리던 길동이라. 대경대회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그 손을 잡고, 목이 메여 눈물을 흘려 가로되...
새로 도임한 경상감사가, 길동이를 달래는 방을 써 붙인 것은 좋으나, 그것을 보고, 길동이가 감영으로 형을 찾아 왔다 함은, 사실과 어긋나는 수작이다. 길동이는 종시 감영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또 나타날 까닭도 없는 일이었다...
16. 풀을 뽑자면
당초에 종루 기둥에다 그렇듯 불온하기 짝 없는 방을 붙인 것은, 과연 누구의 짓인지 알 길이 없다. 그것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었다. 그러나 그로서 한달 지나, 종루 기둥과 사대문에다 먼점번ㅅ것과 똑같은 내용의 방을 붙인 것은, 거기도 씨어 있듯이, 정녕, 활빈당이 한 짓이다. 길동이는 한 장 방문으로 하여, 수 많은 사람이 애매하게도 고초를 겪는다 듣고, 그렇듯 사람을 시켜서 자기의 이름을 내세우게 한 것이다.
“참말 --은 여기 있다 애매한 사람들은 다들 내보내 주어라.”
하는 뜻이다. 그러나 이 무도한 인군은, 그들이 애매한줄을 알면서도 결코 놓아 보내려 안하였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은 대개가 유생 아니면 집을 헐리우고 쫓겨난 사람들이다. 연산은 그들을 향하여,
“너이들은, 정녕 내게다 원한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 방문은, 혹은, 너이들이 써다 붙인 것은 아닐지도 모르나, 너이들은, 역시 그러한 대역부도한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나는 너이들을 그냥 두어 둘 수는 없다...”
이렇게 별르는 것이다. 죄 없는 사람들을 그렇듯 잡아 들여, 연해 닦달을 하는 한편으로, 그는 또 연방 쓸데 없는 역사를 하였다. 그는 이번에 경회루 못 가에다 또 산 하나를 만들어 놓았다.
이름이 만세산(萬歲山)- 산 위에다 봉래궁(蓬萊宮)이라, 일궁(日宮)이라, 월궁(月宮)이라, 또 예주궁(蘂珠宮)이다. 각씨 놀음 같은 조고만 궁궐을 지어 놓고, 오색 비단을 오려서 꽃을 만드니, 산중에 백화가 란만(爛漫)이다. 물 위에는 용주를 띄어 놓고, 못 속에다가는 각색 비단으로 연꽃도 만들고 산호(珊瑚) 가지도 만들어 꽂았다.
누대 아래에다는 쑤욱 둘러서 홍금장막 (紅錦帳幕)-. 그 안에다 흥청(興淸) 운평(運平) 삼천여명을 모아 놓으니, 풍악소리 유량(劉喨)히 울리는 가운데, 일시 일비 무일배로 취흥(醉興)이 도도(陶陶)하여, 정말 홍길동이가 팔도의 활빈당을 모조리 거느리고, 당장 이 자리로 쳐 들어 온다더라도, 내 모를 일이다.
물론, 놀이는 결회루 후원만이 장한게 아니다. 저자도 제천정(豬子島 濟川亭)엘 나가면, 천렵(川獵)이 흥겨웠고, 장의문 밖 수각(水閣)에서는 흥청들과 더부러 벌거 벗고 함께 물 속에 드는 것이 재미로웠다. 어허-, 즐겁고 기쁜 내 세상이로다... 일년 삼백육심일을 연달아, 줄긋 놀이요, 줄곳 역사였다.
거기 드는 물역과 부비가 참으로 엄청나다. 가렴주구(苛斂誅求)-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마침내 깨여젓다. 사(士) · 농(農) · 공(工) · 상(商)이 없이 왼 백성들은 남부여재(男負女戴)-, 살 곳을 찾아 각처로 헤매 돌았다. 먹을 것을 구하여, 주린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만 백성의 어버이 되는 인군은, 멀리 양주 · 파주 등지까지 나가서 혹은 말을 달리고, 혹은 매를 놓아 사냥질 하기에 날 저무는줄을 모르겠는데 이 복 많은 사람의 자식되는 백성들은, 굶고 주리어 나날이 황천ㅅ길을 떠난다. 서울만 하여도, 남대문서 노돌(鷺梁)까지 이르는 사이에, 굶주리어 쓰러진 송장이 실로 길 위에 질번 하였던 것이다...
길동이는, 근래, 그 마음이 심히 우울하였다. 그는 요사이 활빈당 사업에 대하여, 크나큰 회의를 가졌던 것이다. 자기 하는 일에 대하여, 도무지 자신을 잃었던 것이다. ‘조생원과 더부러 활빈당을 일으킨지도 어언간 일년-, 그 동안에 자기들은 가엾은 동포들을 위하여, 대체 얼마만한 일을 하였단 말이냐? 주소로 노심초사하고, 동분서주하여, 그 동안에 이룬 일이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따는, 그 사이 활빈당은, 많은 탐관오리들을 징계하였고, 그들이 가진 부정한 재물을 적지아니 빼앗었다. 빼앗은 재물은 이들 모다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상말에 이르는 ‘언발에 오줌 누기’다. 그것으로는, 도저히 동포들의 가난을 구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탐관오리들을 몰아내고 또 몰아내어도, 그 대(代)에 오는 놈이 또한 그 놈이 그놈이다. 고을의 정사는 조곰도 나어지지 않았다. ‘대체 어데에 잘못이 있었나?...’
이제 알겠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 안하였던 곳에 크나큰 잘못이 있었던 것이다. 땅 위의 풀잎만 보고, 땅 속에 깊이 박힌 뿌리는 생각을 아니 했다. 뿌리는 버려 두고, 풀잎만 뜯어 본다. 뜯어도 뜯어도 뒤에서 뒤에서 연달아 새 싻이 나온다-. 어제까지의 활빈당사업은, 뿌리는 버려 두고, 오직 풀잎만을 뜯어 온, 슬프고도 헛된 노력이었다. ‘뿌리를 뽑자! 그렇다, 인군을 갈자! 그를 그대로 두어 두고는, 모든 일이 다 헛된 수고다!...’
“무도한 인군을 죽이는 도리는, 자고로, 그 에가 있는 것이니, 모든 백성은 우리 의병을 따르거라.”
길동이 머리에, 전날 종루 기둥에 붙었던 방문이 불현 듯이 떠 올랐다. 그가, 그것과 똑같은 내용의 방을 작시 이름으로 또 내어다 붙이게 하기는 무슨 참말로 그런 뜻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이르러 보니, 그것이 곧 앞으로 자기의 취할 길이었다. ‘인군을 갈자! 자기 한몸을 위하여 만백성이 있기를 요구하는 지금 인군은, 이를 몰아내 치고, 실로 만백성을 위하여 제 한몸이 있어 줄 인군을 바뜰어 모시자, 자칭 나라를 사랑할 줄 아는 인군, 진정 백성들을 긍휼히 여길줄하는 인군-, 이러한 인군이 나와야만 한다...’ 대체, 그러한 인군 아래 탐관오리가 있을 수 있을 까? 있을 수 없었다.
밝고 착한 정사 아해, 백성들은 무엇을 즐겨 굶주려야 하느냐? 우리는 결코 불행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제야 나는 길을 찾었다. 나라를 위하여 동포를 위하여 나는 이 일을 하자!...’ 그러나 생각하여 보면, 그것은 단지 자기 한 사람만이 원하는 바가 아닐 것 같았다. 밝고 어즌 인군이 나와서 하루 바삐 나라를 바루잡아 주었으면- 하는 것은, 어찌면, 모든 백성들이 한결 같이 바라고 있는 바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지금의 어둔 인군에게 붙어서 가진 간악한 몇몇 간신의 무리만 빼어 놓고는 실로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일 것이다. ‘대체, 우리가 마음 놓고 나라를 떠 맡겨도 좋을 이가 누구냐? 우선, 그 유덕한 이를 찾아 보자! 또 우리가 함께 손을 맞잡고 이 크나큰 일을 할 사람들이 누구 누구냐? 그도 얼른 알아 보자!’
17. 신왕만세!
연산의 음학무도(淫虐無道)가, 그 절정에까지 이르른 이제, 남 몰래 폐립(廢立)계획하고 있는 것은, 오직 길동이 한사람만이 아니었다. 거울에서도, 이일을 의론하는 몇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성히안(成希顔) 박원종 · 유순정의 무리들이 그러하다. 전이조참판 성히안은 일찍이 연산의 노여움을 받아 파직 된 사람이다. 정사의 문란함이 날로 심한 것을 보고, 그는 은근히 폐립을 생각하였으나, 다만 서로 일을 꾀할만한이가 없다.
오랜 동안, 이를 근심하던 중에, 그는 한 동이레 사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원종이 그의 누이 되는 원산대군부인의 횡사로 하여 항상 앙앙(怏怏)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하룻날 그를 찾아가서 시사(時事)를 담론하였다. 서로 이야기 하여 보니, 뜻이 맞고 마음이 같다. 두 사람은 그 뒤로 자주 왕래하며, 가장 은밀한 가운데서 계교를 정하였다. 원산대군부인의 횡사를 말하려면 또 한번 연산의 추행을 들추어 내게 된다.
월산대군의 부인되는 박씨는 자색이 남에게 뒤어난 이었다. 연산은 은근이 그에게 뜻을 두었다. 그는 어느날, 들어와서 세자를 보고 보호하라는 명목 아래, 그를 궁중으로 청하여 들여서 겁탈 하였다. 월산대군은 덕종의 맞아드님으로, 선왕 성종의 형님이니, 연산은 곧 저의 삼촌댁을 욕 보인 패륜의 짓을 한 것이다.
이리 하여, 너무나 분하고 또 부그러운 나머지에 박시는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거니와, 그러지 않아도 나라와 동포를 위하여 은근히 폐립을 생각하던 박원종은, 그 누의의 횡사로 말미아마, 더욱 그 뜻이 굳었다고 하겠다.
그들은, 또 이조판서 유순정이 인망이 있다 하여, 한 동아리에 넣었다. 그러나, 일이 워낙 거창하다. 성사가 되면 이어니와, 자칫 잘못하여 한번 실패하는 날에는 역적의 더러운 이름만 튀어 쓰고, 목숨만 잃어야 한다. 일을 하기에, 그들 서너 사람만으로는 너무나 힘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또한 그렇다 하여 아무에게나 대고, 서뿔리 말을 낼 일이 아니다. 이에 이르러 그들은 홍문교리 이장곤을 생각해 내었다. 이교리는 일찍이 일에 걸리어 거제도로 유배 되었다가 섬을 다시 나간채 오늘까지 종적이 묘연한 사람이다. 그러지 않아도, 연산은 그가 저를 바반할 뜻을 품었다 하여 의심하여 오던 터이다. 크게 노하여 각도에 영을 나려서, 그의 종적을 수탐케 하였으나, 아무 보람이 없었다. 그는 남에 뛰어나게 용력(勇力)이 있었다. 손이 부족하니, 자연 그의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계획이 차차로이 익어 가는 어느날 밤 일이다. 박원종과 성희안이 같이 앉아 일을 의론하는 자리에, 신윤무 라는 사람이 찾아 와서, 함께 일을 할만한 이가 있노라 하였다.
이 사나이는, 때에 벼슬이 군자부정(軍資副正)-, 연산의 총임이 두터운 자였다. 그러나, 그도 시세에 아주 어두운 사람은 아니다. 그는 연산이 오래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 하로 아침 힘이 있을 때, 화기 - 몸에까지 미칠 것을 두려워 하였다. 그래, 그는 성과 박, 두 사람이 큰일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처음부터 그 공론에 참례하여 온 것이었다.
“함께 일 할 사람이라니, 대체 누구요?” 성희안이 한마디 묻는다.
“저-, 이포장입니다.”
“이포장이라니?”
“활빈당을 잡으러 토포사로 나려 갔던 이포장 말씀입니다.”
“그래, 그 사람이 지금 어데 있소?”
“양근 용문산에 있다고 합니다.”
“용문산?”
“네. 그가 지금 활빈당 두령으로, 용문산패의 괴수 노릇을 하고 있다 합니다.”
그 말에 성희안은 가장 못마땅한 듯, 눈썹을 찡기고, 곁에 앉은 박원종의 얼굴을 돌아 보았다. 박원종은 수염만 쓰다듬고 앉았다가, 그제야 신윤무를 건너다 보며,
“영감. 이포장을 만나 보셨오?”
“만나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럼?”
“이포장에게서 사람이 왔습니다.”
“그럼 그간에 연신이 있으셨오?”
“아닙니다. 이포장이 토포사로 나간 뒤로,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 이포장이 갑자기 사람은 웨 보냈습띠까?”
“여기-.” 하고, 신윤무는 품에서 일봉 서찰을 내어 놓으며,
“이게 이포장이 보낸 서신입니다.” 받아서 읽어 보니, 그 내용은 대개 아래와 같은 것이다.
영감이 여러 대감으로 더부러 이윤(伊尹), 곽광(藿光)을 본 뜨려 하신다 듣고, 마음에 너무나 감축하여 생도 삼가 견마(犬馬)의 수고를 다하려 하오니, 만약 생을 쓰실 곳이 있으시다면 수화(水火)를 피치 않겠소이다.
읽고 나자 그는 편지를 성희안에게 주고, 자시는 고즈너기 눈을 감았다. 그러나 성희안은 그것을 받아서 미쳐 반도 읽기 전에 얼굴 빛이 홱 변하였다. 편지를 든 그의 손은 가만히 떨리기조차 하였다. 그는 읽고나자, 선윤무의 얼굴을 뚫어질 듯이 바라보며,
“기밀이 대체 어데서 새었단 말이오? 영감이 말씀 하였오?”
“아닙니다. 말씀할 까닭이 있습니따? 이 편지를 받기까지는 이포장이 용문산에 들어 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 일을 안단 말이요? 아무래도 기밀이 새어 나간게 아닌겠오?”
말하는 품이 마치 자기에게 혐의라도 품고 그러는 것 같아서, 신윤무는 적지 아니 당황하였다.
“그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포장은 믿을만한 사람이니까 우리 비밀이 설사 알려졌다 하더라도 낭패는 별로 없을 줄 아는데요.”
“원, 이런 말씀 봤나? 이일이 어떠한 경로로 그 사람 귀에까지 들어 갔는지도 의심스로운 노릇이오. 또 이포장은 영감 말씀 맞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가 지금은 활빈당 두령이라니, 활빈당들이 말끔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오? 그런데 별로 낭패 될게 없다니, 그 무슨 말씀이오?”
“글세-, 기밀이 어데서 어떻게 새었는지는 모르오마는, 우리가 하든 안하든, 그런 것은 상관않고, 활빈당은 이 일을 하고야 말 것이오. 영감들은, 활빈당이 전일 사대문에 내다 붙인 방을 생각해 보셔야 하오.”
그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본 다음에, 신윤무를 향하여, “그래, 영감은 무어라 하셨오?”
“대감 말씀도 듣조아 보지 않고서 자의로 무슨 말씀을 하겠습니까? 그냥 일간, 기별하여 주마고, 그렇게 써서 보냈습니다.”
“잘 하셨오.”
“그런데, 어떠시겠습니까? 생각에는, 어차피 저들에게 이 일이 알려졌다 하면, 도리어 그들의 힘을 빌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일은 퍽 쉬울 것도 같은데요.”
그 말에 성희안이 펄쩍 뛴다.
“아-니, 힘을 빌다니 적당들과 함께 일을 하잔 그 말씀이오?”
“활빈당은 여느 적당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이제까지 저들이 해 온 일로만 보더라도...”
“그래도 적당은 역시 적당이지! 아무리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적당의 힘을 빈다는게 원체 온당치 않은 일이고, 또 그래서 요행 일을 성공한다 하더라도 뒤에 큰 화근을 맨드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는 나종 말은 박원종에게다 대고 하였다. 박원종은 크게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의심을 하자면, 혹은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라는 자가, 딴 뜻을 품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오. 만약 그렇다면 영감 말씀 맞다 큰 화근ㅅ덩어리지오.”
잠깐 말을 끊었다가
“이러고 저러고 우리끼리 일을 빨리 해 치우십시다.”
“네, 그게 상책일 것 같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오는 초이튼날, 위에서 장단석벽으로 나가신담띄다 이날을 기약하여 일제이 나서서 사대문을 닫아 걸고 일을 하기로 하면 좋겠오.”
“오늘이 스무여드레, 내일이 그믐,... 앞으로 사흘 밖에 없으니, 그럼, 너무 촉박하지 않습니까?”
신윤무가 한마디 하는 것을 성희안이 대신 나서서,
“허지만 이번에 못하면, 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를 일 아니오? 한만히 시일을 천연 시켰다가 중도에 무슨 변이라도 있다면 더 큰 일이오.”
박원종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신윤무를 건너다 보며,
“참, 홍첨정은 만나 보셨오?”
“네.”
“그럼 영감은 초이튼날 가만히 무사들을 모아 미시까지 훈련원으로 나오도록 하시오. 시각을 어겼다가는 큰일이오.”
하고 다시 성희안을 돌아 보며,
“우상(右相)대감은 어떻게든 영감이 모셔 내도록 하셔야 하오.”
“네.” 그리고 그들은 밤이 늦도록 의론이 많았다...
연산군 십이년 병인 구월 초하로- 내일은 연산이 서울을 떠나 장단 석벽으로 향하고, 그가 나가기를 기다리어, 박원종, 성희안의 무리는 사대문을 닫아 걸고, 선왕의 둘째 아드님, 진성대군 역을 추대하여 반정의 큰 일을 이루려는 참인데, 일은 공교로웁기도 하여 이날 연산은 사기, 내일의 장단행은 이를 중지하리라 한다.
그러나 연산의 예정은 고칠 수도 있으나, 이편의 계획은 이제 와서 유에할 도리가 없었다. 장사(將士)들의 마음은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이다. 중도에서 졸연히 멈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형세가 이미 그러한 것을 알자, 성희안, 박원종의 무리는 예정을 다가서 이날-, 초하룻날 야반을 기약하여, 마침내 강수와 군사들을 훈련원에다 모았다.
미리 맞추어 놓았던 무리는 이를 것도 없는 일이다. 소문을 들었을 뿐으로, 너도 나도 훈련원으로 훈련원으로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물려 들었다. 군자부정 신윤무, 전수원부사 장정, 군기시청정 박영문, 사복시첨정 홍경주의 무리는 이들 군사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곧 창덕궁을 바라고 나아갔다. 이보다 조금 앞서, 전이조참관 성희안은 우의정 김수동을 그의 집으로 찾고 있었다.
“아-니 영감이 이 밤에 웬 일이시오?”
“우상대감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내게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성희안은 간단히 오늘 밤 일을 이야기 하고,
“대감께서 꼭 나서 주셔야만 하겠습니다.” 간청하였다.
그러나 김수동은 그들이 폐립을 행하려 한다 알자
“이는 실로 국가대사 인데, 내 이일의 수말(首末)을 모르면서 어찌 영감한분의 말만 듣고 뛰어 나가겠오?”
곧 곧, 버개를 베고, 자리우에 번 듯이 누으며, “영감 내 머리를 베어 가시오.”
하고, 그는 눈을 감아 버린다. 성희안은 다시 이번 일을 설명하고, 자기들이 진성대군을 추대하려 한다는 뜻을 일러 주었다. 김수동은 그제야,
“그럼 나도 가겠오. 영감, 어서 먼저 가시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서히 의관을 정제하였다. 그는 처음에 성희안 박원종의 무리들이 딴 뜻을 품은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지중추부사 박원종과, 이조판서 유순정의 무리가 돈화문 앞에 이르렀을 때, 밤은 이미 깊어, 삼경(三更)이다. 우심 윤형로를 진성대군의 사제(私第)로 보내어 이 뜻을 고하고, 이어 운산군 계(雲山君 誡)와 무사 수십인을 보내서 시위하게 하였다.
모다를 돈화문 앞에 결진 하여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데, 궁중에서 숙위하는 장사와 시종의 무리들은, 이를 알자, 경겁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개 구녕으로 기어 나와 도망하여 버렸다. 연산이 이 일을 안 것은, 훠언히 날이 밝을 역이었다. 그는, 그래도, 오히려 믿지 않고 입직승지(入直承旨)를 보고 말한다.
“이런 태평성대에, 무슨 다른 변이 있겠느냐? 아마 흥청의 서방놈들이 도둑질을 하려고 그러는게지.”
일직승지 윤장의 무리는, “신등이 나가서 자세 알아 보오리다.” 하고, 그의 앞을 물러 나와, 그들도 모다 대궐 담 밑에 뚫린 물 나가는 구녕으로 하여 밖으로 도망하여 버렸다.
날이 밝았다. 박원종의 무리는, 내시를 시켜 궁내로 들어 가서 왕에게서 보옥새를 걸우고, 동궁으로 처소를 옮기게 한 다음, 백관을 거느리고, 경복궁으로 가서 자순대비에게 아뢰었다.
“주상이 크게 군도를 잃어 천명과 인심이 이미 진성대군에게 갔기로, 신등이 의지(懿旨)를 바뜰어, 대군을 영립하여 하려 하오니, 성명(成命)을 내리시옵기를 청하나이다.”
하는 것이다. 대비가 마침내 윤종(允從)한다. 이조판서 유순정은, 의지를 바뜰어, 그 길로 진성대군의 사제로 향하였다... 새 인군을 태운 난여가 진성잠저를 나서, 경복궁으로 향한 것은, 이 날로 한 낮이 띄었을 때다. 연로에 늘어 선 백성들의 입에서는 연달아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만세- 만세- 만세- 모두다 헐벗은 백성들이었다. 모두다 굶주린 백성들이었다.
모두다 십년학정(十年虐政)에 죽고 남은 백성들이었다.
만세- 만세- 만세- 그것은 그러나, 그냥 단순한 ‘만세’가 아니다.
부디 당신은 마음을 바로 하여 나라를 위하는 인군이 되소서, 하는 소리였다. 부디 당신은 백성을 사랑하여 착한 정사를 베푸는 인군이 되소서, 하는 소리였다. 풍년에는 물론 배가 부르려니와 흉년에도, 부디 백성들을 굶기지 않는 인군이 되소서. 하는 소리였다.
만세를 부르는 한사람 한사람의 눈이, 모두가 눈물로 어리어 있었다. 그 가운데는, 그대로 목을 놓아 어ㅇ엉 우는 사람조차 있었다.
“전하는 지금 이 모든 백성들의 만세 소리를 들으시오? 전하! 전하는 착하고 어즌 인군이셔야만 하오!...”
광화문 앞 넓으나 넓은 거리-, 양옄 길이 미어지게 늘어 선 군중들 틈에가 젊은 농군이 하나 끼어 서서 마악 자기 앞을 지나는 새 인군의 행렬을 가장 감개무량하게 우러러보며 이렇게 입안 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맨상루 바람의 젊은 농군-, 복색은 다르나 얼굴이 눈에 익다 하여 자세히 보니 그는 곧 다른 사람이 아니라 활빈당 행수 홍길동이가 틀리지 않았다...
그 뒤로 길동이의 소식을 아는 사람이 없다. 활빈당도 다시 두 번 세상을 소란하게는 안하였다.
-丁亥 七月 作-
[책 끝에]
화설 조선 세종대왕 시절에 한재상이 잇스니...
이미 읽으셨으면 다 아시려니와, 나의 홍길동전은 이와는 이야기가 매우 다르다. 나는 우선 시대부터 고처 잡았다. 홍길동과 그의 활빈당이 눈부신 활약을 하고, 그들의 활약이 충분히 뜻 있는 --기 위하여는 아무래도 어두운 시절, 어지러운 세상이어야만 하겠다. 이조(李朝)에 있어, 드물게 보는 영명한 군주로, ‘해동요순(海東堯舜)’의 일커름까지 받는 세종대왕 재위년간에 이러한 일이 있었다 하여서는, 모처럼의 ‘홍길동’이도 한낮 요망스런 작란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리 하여 나는 역사 위에 있서 가장 어둡고 어지러웁고 또 추악하던 인군 연산의 시절을 빌기로 하였다. 연산은 내 자신이 실로 사갈(蛇蝎)처럼, 구수(仇讎)처럼 미워하는 인물이다. 그의 가지 가지의 학정(虐政)과 추행(醜行)을 이 작품 속에서 들추어 내며, 나는 심히 흥분하고 또 분개 하였던 것이다.
원작에는 없는 인물로, 나는 ‘음전’이란 소녀와, ‘조생원’이란 기인을 꾸어 왔다. 그러나, 조생원이 곁에서 그렇듯 충동이지 않고, 또 음전이가 그렇듯 죽는 일이 없었다하더라도 그러한 시절에 있어, 길동이는 결국 ‘활빈당’의 맹주가 되지 않고는 못 배겼으리라.
그러나 나는 이곳에서 솔직히 고백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이 소설을 쓰면서 여러 가지 점으로 나의용의(用意)가 부족하였던 것을 절실히 느꼈다. 허락 받은 맷수 삼백매의 갑설, 육백매를 없앳으면서도 나는 결국 할 말을 못 다 하고말았다. 더구나 결말에 이르러서는 작자자신 크게 불만이다. 모처럼 홍길동이란 인물을 살펴 보자고 붓을 들었던 노릇이, 결말에 이르러 아주 죽이고 말았다. 나는 혼자 생각이거니와 언제고 다시 기회가 있다면 좀 더 만든 ‘홍길동전’을 써볼까 한다.
協同文庫刊行(협동문고간행)의 辭(말씀)
(생략)
'공부 > 국어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훈민정음(訓民正音) (0) | 2019.11.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