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찮게 신간을 선물받게 되었는데 너무 두껍길래 아니, 대체 어떤 내용이면 이렇게 두꺼울 수가 있지? (살짝)벌써부터 지루해하면서 책을 들춰보게 되었다. 사실 되게 재미없게 논문 같이 줄줄 쓰여져 있을 줄 알았는데 뭔가 평신도들도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는 성경공부를 혼자서도 나름 재미있게 할 수 있게끔 빈칸 넣기가 되어있었다. 또 이 빈칸넣기가 "그냥 정답을 넣는 형식적인 절차로 결국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 했을 때는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어렵고 성경을 무조건 읽고서야 답을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책을 사서 보면 알겠지만 이게 생각보다 성경을 그동안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 벽을 조금은 허물게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또 성경을 읽을 때 그냥 무작정 읽으면 그게 오래 못 간다는 것을 다..
묵상 : 18절에 후새가 압살롬에게 한 말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하는 얘기에 압살롬이 거부감 없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기분이 좋아지게 하는 말인 것도 있겠지만 하나님을 섬긴 다윗의 가정에 속하는 압살롬이었기에 여호화 하나님의 이름 또한 본인이 알고는 있으며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삼하 15:7-8절에 나오듯이 압살롬이 다윗에게 여호와에서 나를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면 내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한 부분만 보아도 마치 오늘날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떼쓰는,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내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믿는 오늘날에 많은 그리스도인..
묵상 : 다윗이 약해진 때를 틈타 악한 무리들이 들끓고 그 믿음 좋아보였던 다윗도 그런 상황 속에서 가끔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순간에 더 달려드는 악인들이 참 밉다. 꾀를 써서 다윗에게 접근해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었는데 다윗은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제 그것이 무슨 뜻이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다윗의 모습에 이어 오늘은 해설에 나온 것처럼 시므이로 저주하게 허락하신 것이라면 달게 받겠다는 그 모습이 정말 고난과 힘든 상황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악인들에게 각각 취해야할 태도라고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셨다. 특히 오늘날 그런 고난과 나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할 때 다윗처럼 여호와께서..
묵상 : 답답한 다윗이 드디어 움직이는 것인가. 대책도 없고 안타까운 그런 상황 속에서 밧세바 사건 이후 하나님과 교제를 하거나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그런 뚜렷한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던 다윗이었다. 왕으로서 누리는 풍족한 주변 환경 때문인지 일이 바빠서 그런건지. 결국 본인이 힘든 상황이 오니까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고 다윗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주님은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나와 교제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데 때때로 나는 주님이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며 나를 위해 살다가 내가 심적으로 육적으로 힘든 상황이 올때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다. 그리고서는 바로 바뀌지 않고 해결되지 않는 것 같으면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오늘..
묵상 : 8절은 마치 오늘날 교회는 가기 싫은데 용돈은 필요한 자녀가 하는 말투같아서 웃겼다. 오늘 본문에서는 압살롬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긴 하는구나, 하고 조금 의외다?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본문에서는 압살롬이 부지런히 준비하고 계획하고 그것들을 실행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는데 그것들이 압살롬이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한편에서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이 다윗이 젊었을 적과 오버랩 되기도 했는데 결국 그 목적과 의도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하는 것이 다윗의 ‘젊었을 적’과 지금의 압살롬의 모습이 아주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모습은 ‘아버지나 그 아들이나’ 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내가 아무리 스스로 생각할 때 이것이 정의로운 것, 혹은 이것이 옳은 ..
묵상 : 오늘 본문 보면서 다윗이 답답했다. 압살롬을 두고 왜 이렇게 방치를 해두는지. 몇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떤 한 사람의 겉모습은 멀쩡해 보일지 몰라도 가정 안에서의 모습은 형편없는 걸 보게 되었다. 내 죄를 압살롬이 알아채고 지적할까봐 두려워했던 걸끼? 아니면 아들에게 제대로 아버지 노릇을 못해줬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어서? 아니면 자신이 아들에게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하는 것이 수치스러워서? 그 꼴을 신하들에게 보여주면 망신당할 것이라 생각을 했기 떄문에? 결국 명분이 생기고 나서 압살롬을 데려오면서 그 상태로 또 방치를 한다. 대체 부모가 됐으면서 왜 그런걸까. 반대로 압살롬도 마찬가지이다.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을 정도의 나이가 됐으면 부모의 마음을 입장을 생각해볼 법도 한데 압살롬은..
묵상 : 잘 알지도 못하는 자가 충고랍시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보통 나의 반응이 어떤지 돌아보았다. 시큰둥하고 혹은 겉으로만 긍정을 표하고 속으로는 불평하며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고 원망하지는 않았나. 더욱이 한 가정의 일을 가지고 제 3자가 얘기하는 상황이면 더더욱 거부감과 불쾌함이 들것이다. 게다가 저 당시 ‘왕’의 권위는 굉장히 무겁고도 함부로 나설 수 없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단도 오늘 본문의 여인도 다윗에게 열심히 돌려말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런 것 치고 여인은 나중에 후반부로 가면서 누구라도 알아챌 만큼 다윗에게 권유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사람이 얘기하든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보여주시고 깨달았으면 하는 것이..
묵상 : 본문에서는 압살롬이 중점적으로 나왔지만 나는 다윗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예전과 달리 게으르고 나태하고 하나님과 그리 가까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다말과 암논 사건을 알게된 다윗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분노만 하고 끝났다는 부분에서 더욱 그렇게 느꼈다. 게으르고 내 욕망에만 찌들어 있으며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이 내 노력으로 이렇게 되어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합당하며 당연하다고 여기고 가장 중요한 하나님과 멀어져 있을 때. 어떠한 길을 가고자 할 때 그 방법들이 좋고 하나님을 위한 생각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그 생각도 내 중심적인 생각이며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나에게 해주시는 말들을 통해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하나님과 멀어..
묵상 :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하나님이 계시고 날 항상 지켜보고 계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나이가 들고 기억력이 감퇴해서 걸까?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노아나 모세는? 다윗이 허락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설에도 나와있듯이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진 다윗의 모습에서. 나도 나이를 먹어가며 하나님과 그 만남의 기쁨도 습관으로 전락해버리고, 은혜도 당연한 것으로 무감각해지며 그러면서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 이라 말하며 예수님은 나의 친구! 라 떠들면서 내 손익을 따지고, 남보다는 나를 위하는 삶을 살면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이라고 세상에서 외치고 다니지는 않을까 두렵다.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 처지에 따라서 하나님 섬기는 것이 변하는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이 ..
묵상 : 죄를 범했다, 하나님을 업신여겼다는 표현을 보면서 죄를 범한 것을 자꾸 내 기준, 사람의 도덕적인 기준으로 저울질 하면서도 다시 또 죄를 짓는 내 모습을 외면하려고 하지는 않았나 생각하게 되었다. 죄를 범했다는 것은 인간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법을 어긴 것이다. 어제와 엊그제 본문에서 본 사건들 속에 하나님이란 단어는 없었다. 일상생활 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데 어느 순간이라도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면 죄가 그 틈을 타 패망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다윗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런 다윗의 사건은 사람들에게 한편에 많은 위로가 되는 것 같다. 다양한 형태의 죄악들이 어떻게든 우리 인생 속에 들어와 죽음으로 이끌어가려고 할 때 그런 죄악된 성질들을 인간 ..